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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Aug 02. 2019

아빠가 엉덩이를 긁었다.

밀알 복지재단 생활수기_ 가작

아빠가 엉덩이를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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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목수였다.

 무엇이든 못 고치는 것이 없었고, 못 만드는 것이 없었다.

녹내장 수술 때문에 한쪽 눈 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포클레인을 몰고 다니며 공사현장을 호령하던 기술자였다. 그런데 그런 아빠가 어느 날 누군가 거대한 딱풀로 붙여버리기라도 한 듯 침대에 딱 붙어버리고 말았다. 아빠의 병은 뇌의 운동과 언어를 담당하는 부분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마비되는 병인데, 간이식 수술 후 복용하는 면역억제제의 부작용으로 희귀하게 오는 병이라고 했다. 그렇게도 고통스러웠던 간이식 수술을 견뎌냈던 아빠였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불안정한 호흡 때문에 숨쉬기도 힘들었지만, 이미 삶의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아빠는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았고,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고래처럼 하염없이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를 간병하던 언젠가 보조침대 위에서 자다가 온 몸이 가려워서 등과 팔을 한참 긁어댄 적이 있었다. 몸부림을 치면서 긁어대도 그날따라 쉬이 시원해지지가 않았는데, 문득 ‘아빠는 간지러울 때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쩡한 사람도 잠들어있는 몇 시간 동안 계속 뒤척이고 어딘가를 긁적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빠는 당장 머리나 코가 간지러워도 긁을 수가 없다. 고문 방법 중에 사람을 꼼짝 못 하게 묶어놓고 개미를 풀어놓는 고문이 있다고 하는데, 엉덩이가 아파도, 소변을 지려도, 꼼짝없이 견뎌야 하는 아빠 모습은 개미 고문을 당하고 있는 그것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차라리 의식이 없었더라면 덜 고통스러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빠는 무기력해 보였다.      



 아빠의 병실은 일명 ‘똥방’이라고 부른다.

누워서 대소변을 보는 환자들은 일반 환자 병실에 입원할 수 없다. 냄새 때문이다.

똥냄새, 병마의 냄새, 절망의 냄새. 아무리 열심히 청소해도 지워지지 똥방 만의 냄새가 있다.

처음에는 똥방에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병실에서는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고, 병실 안에서 앉아만 있어도 하루 종일 일한 것처럼 피곤했다. 병실의 보조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다가도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익숙하지 않은 병원 생활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간병이 아니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질’거라는 기대가 없다는 것이 초보 간병인인 우리 가족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의 손이 엉덩이를 긁었다.

욕창을 막기 위해 몸을 돌려 뉘인 순간 오른손이 쑤욱 올라와서 살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이 납작해진 엉덩이를 벅벅 긁었다. 먹지도, 말하지도, 움직일 수도 없는 괴로움을 긁어내기라도 하듯 아빠의 투박한 손가락이 움직였다.


한평생 가장의 책임감으로 무거웠을 아빠의 팔이 가볍게 날아와서 내 마음까지도 시원하게 긁어주는 기분이었다. 내 몸이 간지러워 긁을 때마다 죄스러웠던 마음을 생각하면 아빠가 스스로 긁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아빠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좌절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남은 힘을 끌어 모으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뿐이었다. 아무도 도움을 손길을 줄 수 없는 곳에서 아빠는 치열하게 아빠만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

불안정한 호흡과 싸우고, 폐렴과 싸우고, 당뇨와 싸우고, 신장기능 저하와도 싸웠다. 아빠는 날마다 혼자서 당신만의 승리를 만들어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어릴 때 무엇이든 척척 만들고, 고쳐내던 요술방망이 같았던 아빠의 오른손은 이제 아빠의 이마와 콧잔등으로 달려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개미들을 무찌른다.        


처음 병원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언제까지나 병원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 더욱 답답하고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나는 똥방에도 똥방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되었다.


똥방은 가끔 울 일이 생기지만 웃을 일도 생기는, 밖에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자의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인데 병원에서의 삶은 비정상적인 것 이라고만 생각해서 괴로웠던 것이 아닐까. 이 사실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문득 천상병 시인의 나무라는 시의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아빠는 가라앉고 있는 고래가 아니었다.

언젠가 태양이 빛나고 파도가 물결치는 푸른 바다로 뛰어오를 고래다. 아빠의 잠영을 언제까지나 곁에서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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