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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Aug 21. 2019

시래기 같은 글

- 푸근하고 든든한

<동산 문학_2020 문학상>        

시래기 같은 글       


“태백산맥이나 혼불을 쓴 작가의 글과 이 책에 실린 글 중 어떤 글이 더 가치 있을까요?”

수필반 수업 시작 전, 선생님께서 갑자기 회원들에게 질문을 던지셨다. 내가 쓴 글이 동산 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었기에 이제 막 선생님과 회원들에게 돌린 참이었다. 수필반 선생님이 잠깐 책을 살펴보더니 일어나서 말씀하셨다. 내 부끄러운 글과 저 대단한 작가들을 비교하시다니,  갑작스러운 질문에 황망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수필반 회원들 역시 수런수런 당황한 눈치였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매일 같이 글을 쓰는 이분들이 작품을 만들 때와, 우리가 작품을 만들 때 중 누가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까요?”

그제야 질문의 의중을 파악한 회원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여러분들이 글을 쓸 때는 말입니다.
저 유명한 작가들이 글을 쓸 때보다 훨씬 더 많은 힘을 소모합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앞으로도 정진하기 바랍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 내심 유명하지 않은 작가가 쓴 글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쓴 글도 그저 그 정도일 뿐 내 글의 가치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글의 가치는 글을 쓴 사람에 따른 것이 아니라, 글에 담긴 노력과 정성이라는 것을 선생님은 일깨워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동산 문학을 펼쳐 보니 도톰한 책을 빼곡히 채우는 글이 펼쳐졌다. 동산 문학 2019 봄 호에는 이미 등단해서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전문 작가들의 글도 있었고,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글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동요 가사와 아동문학까지 포괄하는 문학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손주를 그리워하는 마음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다소 어려운 인생 이야기까지, 시래기 된장국처럼 구수하고 은근한 향기가 행간에 담겨 있었다. 당선의 기쁨에 취해 책만 받고 여태 책을 펼쳐보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졌다.  

    

 시래기란 무엇인가? 시래기를 만드는 부분은 나물이나 쌈으로 먹기에는 너무 뻣뻣해서 버려지기도 하는 부분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종종 배추나 무청을 다듬어 시래기를 만드셨다. 푹 삶아서 다시 씻어낸 시래기를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었다. 깨끗이 헹구지 않으면 금방 쉬어버리고, 제대로 삶고 말리지 않으면 안 좋은 냄새가 나고 질겨진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식당을 하셨기 때문에 매년 많은 시간을 들여 시래기를 삶고 말리셨다. 삶지 않고 엮어서 말리는 방법도 있지만, 어머니는 시간을 들여서라도 삶아서 만드셨다. 그래야만 더 부드럽고 보관이 용이하며, 조리에도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린 시래기는 쭈글쭈글하고 누르끼끼한 볼품없는 모양이다.


 잘 말린 시래기를 먹기 위해서는 또다시 시간이 필요하다. 시래기를 물에 불려 다시 삶아내야 생기를 되찾아 부드러워진다. 건져낸 시래기를 적당히 썰어서 들깨가루를 치고 식용유에 볶아내면 나물이 된다. 된장국에 넣으면 속을 노곤 노곤하게 달래는 시래기 된장국이 되고, 쌀과 함께 안치면 영양이 풍부한 시래기 밥이 된다. 된장국뿐만 아니라 추어탕 같은 탕 요리에도 널리 쓰이는 팔방미인 같은 식자재가 시래기이다. 시래기는 영양소와 섬유질이 풍부하고 식감이 부드러워 사계절 내내 건강을 지켜준다. 비싸지도 않고 흔하게 먹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정성과 시간을 생각해 보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눈을 돌려보면 시래기 같은 글이 얼마나 많은가. 이후부터는 어떤 글을 읽더라도 보물 찾기를 하는 것처럼 꼼꼼히 읽어본다. 스치듯 지나는 글에도 쓰는 이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를 헤아려보기도 한다. 신문에 기고한 시민들의 사연. 수필반 문우들과 함께 만든 문집, 지역의 문인들 문학지에 실린 글. 신문에 구독자가 보낸 사연들, 남편 회사 사보의 칼럼까지도. 금방 읽히지만, 금방 쓰이지는 않았을 글을 읽다 보면 쓰는 이들의 고심이 문장 사이에 들꽃처럼 피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유명 작가들처럼 유려한 문체가 아니어도 진심이 느껴지는 글을 만나면 시래기 된장국에 깍두기를 얹어 먹은 듯 뱃속이 든든한 기분이 든다. 화려하지 않아도, 채소가 귀한 겨울 식탁 위의 소중한 찬이 되는 시래기 같은 글을 나도 쓸 수 있을까. 어떤 글을 읽고 쓰든 간에 그 글을 쓰기 위해 들었던 노력과 정성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에는 유명하고 위대한 작가들이 너무나 많다. 태백산맥과 혼불을 쓴 조정래· 최명희 같은 대단한 작가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글을 쓰기 위해 쏟는 노력에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진심을 담아 부단히 쓰고자 한다면, 그 노력 자체가 귀하지 않은가. 오늘도 내가 이렇게 쓰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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