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콩 Aug 02. 2019

엄마의 꽃


     

 강변의 산책로 주변 풀밭에는 풀꽃들이 피었다. 반대편 둔덕에 심어진 나무에는 알록달록 연분홍 꽃이 잔뜩 피어있다. 이렇게 예쁘게 핀 꽃의 이름이 무엇일까? 궁금하여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꽃 이름이 적힌 팻말은 없다. 자칭 꽃 애호가인 어머니도 이름을 모르는 꽃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데에 큰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모처럼 함께 운동에 나선 나는, 어머니가 다른 길을 두고 굳이 이 산책로를 선택했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산책은 병원에서 아버지를 간병하고 있는 어머니의 유일한 취미이다. 그나마도 아버지가 상태가 호전되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병원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산책은커녕 드라마를 볼 여유도 없었던 어머니였다. 고작해야 한 시간의 산책이지만 어머니에게는 소중한 여유 시간인 것이다. 작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병원 옆으로 이사 온 나는 가끔 이렇게 어머니와 산책을 나선다.      


 어머니는 옛날부터 꽃을 좋아하셨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화단이나 화분에 꽃을 키우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어렸을 때는 꽃에 어머니가 왜 그렇게 마음을 쏟는지 의문이었다. 잠깐 피었다가 허무하게 시들어버리는 꽃을 정성스럽게 심고 가꾸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꽃 같던 청춘을 다 지나 보낸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도 같은 마음이 든다. 찰나이기 때문에 그 순간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바로 꽃이라는 것을 어머니는 알고 계셨을까.     


 한때 어머니는 김소월 윤동주의 시를 외우며 문학소녀를 꿈꾸었다. 그 조신했던 문학소녀는 자식 다섯을 키워내기 위해서 억척스러운 아지매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어머니의 시집과 일기장들은 빛이 바래고 헤져 끝내 어딘가에 처박히고 말았다. 정갈한 필체로 적혀있던 그 노트들은 이제는 어머니도 찾지 않는다. 연필을 붙들었을 고운 손은 고생에 닳고 닳아 지문이 사라졌다. 여름밤의 별처럼 초롱초롱했을 두 눈에는 노안의 그림자가 들어선 지 오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꽃은 암울하고 막막했던 어머니의 일상을 유일하게 밝혀주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꽃을 보며 감탄하고 즐거워하는 그 순간만큼, 어머니는 시를 읽고 책을 읽던 소녀시절의 그 감수성을 다시 느끼실 수 있었을 것이다.      


 며칠 전, 안경점에 가서 어머니의 돋보기안경을 맞춰드렸다. 요즘 영어공부를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책을 보던 어머니는 새 눈을 얻은 것처럼 좋아하셨다.      

어머니에게는 아직도 시들지 않은 꿈과 목표가 있다.


 장미꽃이 우거진 덤불을 지날 때 잠깐 멈춰서 어머니의 사진을 찍어드렸다. 꽃보다 더 환한 어머니의 미소가 내 마음속에도 오래오래 피어있을 것 같다. 풀꽃은 흔들리면서도 향기와 자태를 잃지 않는다. 어머니의 인생도 바람에 나부끼는 풀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쓰기의 감각-앤 라모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