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콩 Nov 10. 2019

52 병동 똥방 이야기

기적은 딱 발바닥까지.

   

 입동이 지나고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초겨울, 아빠를 보러 병원에 왔다. 아빠의 병실은 똥방이라고 부르는 중증 환자를 모아 놓은 곳이다. 침대에 누워서 똥오줌을 받아내야 하는 환자들은 일반병실에 들이지 않고 따로 격리한다. 화생방처럼 퍼지는 냄새 때문이다. 냄새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중환자들은 대체로 시끄럽다. 꽁꽁 앓는 소리, 기침 소리, 가래 뽑는 소리 등등. 간혹 병실이 없어서 일반 환자가 똥방에 입원하면 대부분 하루를 견디지 못한다. 가장 지독한 것은 똥냄새도 아니고 가래 끓는 소리도 아니고, 병마가 내뿜는 공기가 아닐까.


 뇌질환 환자들은 대부분 장기간 생존한다. 생존이라고 쓰고 투병이라고 읽는다. 환자 본인에게도 보호자에게도 전투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장기간 병원에서 생활하다 보면 많은 환자를 만나게 된다. 18년째 간병 중인 보호자와 환자를 만난 적도 있다. 올해로 14년 차로 병원의 터줏대감 같던 서울댁의 어머니도 지난달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빠가 똥방에서 지낸지도 벌써 7년째이다. 아빠의 침대 건너편의 할아버지는 숨 쉬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시간은 어제일까 오늘일까.     


 아빠의 이불을 다시 정리하면서 발바닥에 적힌 글씨를 보았다. 마비가 와서 움직이지 못하는 발바닥에는 ‘기적’이라고 적혀 있었다. 엄마의 기적은 발바닥의 잔주름에 썰려있었지만 정갈한 모양이었다. 아빠가 영영 걷지 못했을 때부터 엄마는 기적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마비되었던 발에 조금씩 감각이 돌아오고 있다고 엄마는 기뻐하셨지만 기적은 그만큼이었다. 딱 발바닥까지, 무릎까지도 올라오지 않는 기적. 지난 7년 동안 엄마가 일군 기적은 거기까지였다.

     


 아빠는 의식은 있지만, 움직일 수 없다. 간신히 의사는 표현하지만, 제대로 말할 수 없고, 먹을 수도 없다. 녹내장 때문에 양안이 모두 상실한 것이 작년의 일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엄마는 정성스럽게 음식을 갈아서 튜브로 주입하고 아버지의 용변을 받아낸다. 엄마의 기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의식을 치르듯 매일 기적을 써나가고 있다. 앙상하고 차가운 아버지의 기적을 한참 동안이나 주물러 드렸다. 두 달 후면 또 새해가 시작되지만 엄마는 날마다 당신의 기적을 또박또박 적어나가실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진실을 진실하게 쓰는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