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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Apr 29. 2020

바다 위의 신혼

2019. 광양 방선과 남해여행.


 택시가 광천터미널에 도착했다. 캐리어를 끌고 버스를 타러 간다. 마음은 급한데 가방끈은 자꾸 흘러내리고 캐리어는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간다. 광양으로 가는 버스에 간신히 올라 한숨을 돌렸다. 출발 4분 전이다. 오늘은 남편을 만나러 가는 날. 남편은 석탄을 싣고 다니는 상선의 일등항해사인데, 배가 정박하는 날이면 방선하는 것이 항해사 부인들의 평생의 과제이다. 방선은 정박하는 3~5일 동안 남편의 배에서 함께 지내다 돌아오는 일정이다.

보통 일항사들은 정박 해도 잠깐 외출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 외박 허가를 받아 남해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몇 달 만에 만난 남편을 반가워할 틈도 없이 광양 터미널에서 렌트한 차를 받아 남해로 출발했다. 밤늦게 숙소에 도착해서야 남편의 얼굴이 제대로 보인다. 그간 살이 조금 빠진 듯하고, 까맣게 그을렸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라는 생각에 가슴이 찡해온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이렇게 우리의 남해 여행이 시작되었다.     


 다음날 펜션을 나와 점심을 먹고 예술촌으로 향했다. 비에 젖은 계단을 따라 올라서자 비밀스러운 초록 정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폐교를 전시공간으로 구성한 해오름 예술촌 안에는 그림과 공예품, 옛날 물건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2층에 올라서자마자 모형 범선이 눈앞에 펼쳐진다. 다양한 크기와 종류별로 전시가 되어 있었다. 항해사라는 남편의 직업 때문인지 모형 배가 반가웠다.  

 예술촌을 뒤로하고 독일마을로 차를 돌렸다. 파독전시관에서는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에 대한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었다. 가족들을 위해서 기꺼이 머나먼 나라에서 고생했던 사람들의 모습에서 남편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길지 않은 관람시간이었지만 오히려 생각이 많아졌다. 가족들을 굶기지 않으려고 독일로 향했던 그들과 항해사인 남편의 입장이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남편이 일하는 배는 거대한 상선이지만 언제라도 침몰할 수 있다. 한참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몇 년 전의 스텔라데이지 호 침몰 사건이 떠오른다. 그때 당시 실종된 일항사는 남편의 또래였다. 남의 일처럼 느낄 수 없었던 그 사고는 여전히 가슴속에 서늘하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다음 목적지는 다랭이 마을. 굽이굽이 커브 길을 돌아서 남해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달렸다. 바다를 바라보며 논밭 사이를 산책하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목을 축이기로 했다. 먼바다에서 앵커리지에서 상선들이 앵커를 내리고 대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곳에서 며칠간 둥둥 떠 있다가 부두에 입항할 것이다. 항상 직접 타거나 아니면 항구에 정박해 있는 모습만 보다가 육지에서 앵커링 중인 배들의 모습은 어딘가 쓸쓸하게 느껴졌다. 남편은 돈을 받는 앵커리지와 무료 앵커리지를 팔로 가리킨다. 저곳에서 육지에 닿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지 말하는 남편의 얼굴이 유난히 고단해 보였다.


 다랭이 마을까지 둘러 보고 나니 아쉽지만 떠나야 할 시간이다. 아름다운 남해를 뒤로하고 남편이 일하는 배에 함께 올랐다. 정박하는 동안 항해사들은 싣고 온 석탄을 퍼내느라 부산하게 움직여야 한다. 남편이 일하는 동안 나는 휴양이라도 온 듯 느긋하게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하고는 한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밥을 먹다 핸드폰을 확인한 남편의 얼굴이 갑자기 흐려진다. 올해의 진급자 명단에도 남편의 이름은 없다는 갈매기 소식통이 날아온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진급이 될 것이라 믿은 지 벌써 이삼 년째의 기다림. 남편은 퍽 실망한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망연자실한 남편의 약한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라 당황스러웠다.

 

 결혼한 지 삼 년이면 보통의 부부들은 서로에게 닿고 닿을 시간이다. 하지만 일 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서로 떨어져서 보내는 우리는 아직도 서로의 많은 부분을 모르고 있었다. 맥없이 주저앉은 남편에게 서툴게나마 위로를 건넸지만 어두워진 남편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특히 배우자를 위로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남편의 심정과는 상관없이 배는 다시 떠나는 날이 되었고, 나도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남해 파독전시관의 입구에는 글릭 아우프라는 말이 크게 붙어있다. 파독 광부들은 ‘글릭아우프’라는 인사말로 아침을 시작했다고 한다. 살아서 돌아 돌아오라는 뜻으로 그리운 고향과 가족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는 항해사 역시 바다라는 거대한 지구적 변수를 마주하며 일하는 직업이다. 태평양에서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계절, 남편은 또다시 호주를 향해 떠난다. 평소와 다르게 이번 출항은 유난히 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떠나는 남편을 향해 입속으로 되뇌어 본다. ‘‘글릭아우프’, 진급은 늦어도 되니 건강하게, 살아서 돌아오세요.’

 우리의 신혼은 평범하지는 않다. 항상 잠깐 만에 끝나버리지만 또 언제든 시작하는 신혼이다. 다음번에 새로 맞이할 신혼을 그리며 나는 일상으로, 남편은 다시 일등항해사로 돌아간다. 우리의 신혼은 바다 위의 신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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