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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Sep 29. 2021

[에세이]운전

빨리 가는게 능사는 아니죠.

며칠 전 엄마의 심부름으로 담양의 시골집에 가야 했다. 가을장마가 개고 난 후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푸르렀다. 맑게 갠 가을 하늘을 보니 마음 같아서는 속도를 내고 맘껏 달리고 싶었다. 아니, 그런데 앞에 가고 있는 차가 너무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속도계를 보니 시속 40킬로. 해도해도 너무 느리다. 초보운전 딱지도 붙어 있지 않은데 도대체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을 정도의 느린 속도였다. 급한 일도 없는데 괜히 가슴이 조급증으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추월해서 앞질러갈까 고민하는 데 옆 차선에는 차가 너무 많이 왔다.


 문득 2년 전 남편에게 운전연수를 받던 때가 떠올랐다. 뒤에서 욕한다고 제발 속도 좀 내라고 애타게 읊조리던 남편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직도 선명하다. 나에게도 차마 속도를 내지 못하고 거북이처럼 운전하던 때가 있었다. 성질 급한 운전자들은 빵빵대기도 했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 못 한다고 하더니 내가 바로 그 꼴이다. 지금도 운전을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남의 차 속도에 답답해하다니. 시건방지기 짝이 없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나도 느긋하게 운전하기로 했다.


 마음을 비우니 오늘따라 하늘도 더 파랗고, 멀리 보이는 산에 가을 단풍이 내리는 것도 보였다. 자주 다니는 길인데도 멀리 보이는 풍경이 어쩐지 낯설다. 성격이 급해서 빨리 갈 생각만 하니 길가의 나무 한 그루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앞차 덕분에 나도 모처럼 여유롭게 가을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아마 앞차의 운전자도 가을 풍경을 감상하느라 여유를 부린게 아닐까. 하늘을 보자 앞차의 느린 속도가 더 이상 화가 나지도. 답답하지도 않았다.      


  시골길에 접어들자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운전해서 달리던 길을 지금은 내가 운전하고 있다. 시골집은 학교까지 꽤 먼 거리인데다가 버스도 안 다니는 외진 곳이다. 아침마다 차로 우리 오남매를 등교시키는 것은 아버지의 매일 숙제였다. 지각하는 때도 있었는데 내가 꾸물댄 것은 생각도 안 하고, 아버지가 왜 속도를 더 안 내셨나 야속하기만 했다. 고등학생 때에도 하교하면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해서 아버지를 불렀다. 추운 겨울밤에는 발이 시려 동동거리다가 저만치서 아버지 차의 불빛이 나타나면 얼마나 반갑던지.     


 토목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종종 술 냄새를 풍기셨다. 피곤함에 지쳐 더러는 저녁도 못 드시고 주무셨다. 아무리 술에 취하거나 지쳐도 우리 오 남매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일은 평생동안 거르신 적이 없었다. 산아래 마을이라 겨울이 되면 차에 덮인 눈과 얼음을 치우는 것도 일이었다. 장갑도 안 낀 맨손으로 살얼음을 치우던 아버지의 손은 커다랬지만 거칠었다. 자상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차를 탈 때마다 아버지는 운전할 때 절대 자만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던 잔소리가 내가 직접 운전을 하니 이제야 이해가 간다. 승합차며 포클레인이나 화물차까지, 몰지 못하는 차가 없었던 아버지. 그렇게 운전이 능숙하고 조심조심을 외치는 아버지도 이따금 차 사고를 내셨다. 그래서 아직 운전도 못 하는 우리에게 더 강조하셨을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아버지 차에 탈 수만 있다면 아버지 모습을 좀 더 눈에 담았을 텐데, 지각하는 데만 신경을 쓰느라 신호등과 시계만 쳐다봤다.


 느긋하게 달리던 앞차는 어느 순간 다른 차선을 타고 가버렸다.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며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안녕히 가세요. 덕분에 가을 구경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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