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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Nov 30. 2021

[에세이]장조림 _동산문단

지난 추석 명절 이야기

     

“아이고, 이게 무슨 냄새야!”

 엄마가 눈을 찌푸린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둘째 언니도 코를 틀어막는다. 식탁 위에 놓인 백숙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데, 엄마가 뜬금없이 장조림 냄비를 들고 오셨다. 이미 백숙이 있는데도 식사하는 김에 장조림도 내놓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뚜껑을 열자마자 상한 냄새가 확 올라온 것이다. 엄마는 ‘아까워서 어쩌냐’며 혀를 찼다. 그저께 하셨다는데 왜 벌써 상했을까.       


 명절이 오면 엄마는 자주 장조림을 하신다. 아버지의 병원에서 생활하는 엄마는 집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다. 그래도 멀리서 온 자식들 굶지 말라고 장조림과 미역국은 꼭 끓여두신다. 이번에도 명절이라고 장조림을 하셨다. 그런데 장조림 냄비를 냉장고에 넣는 것을 깜빡하고 병원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추석인데도 유난히 날이 더워 장조림은 결국 상하고 만 것이다.


 한 냄비 가득 끓인 장조림이 아까워 다시 끓여서라도 먹겠다는 엄마와, 버리라는 둘째 언니의 날 선 목소리가 식탁 위를 오갔다. 엄마는 몇 년 전 장염으로 일주일이나 입원한 적이 있어서 조심하셔야 하는데도 음식 버리는 꼴을 못 보신다. 나도 버려야 한다고 조용히 말을 보탰지만 엄마는 기어코 혼자서라도 드신다고 하셨다. 엄마의 고집에 둘째 언니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다시 식탁에 앉은 엄마도 왠지 말이 없으셨다. 상한 것은 장조림뿐인데 잘 삶아진 백숙조차 오늘따라 맛이 안 났다.       


 언니나 나에게는 그저 맛이 없으면 쉽게 내다 버려도 되는 장조림 일지 모른다. 하지만 병원에서 잠깐 짬을 내기도 어려운 엄마는 급하게 장조림을 하셨을 것이다. 얼마나 바쁘셨으면 냉장고에 넣는 것을 깜빡하셨을까. 상했으니 버리자고 그렇게 쉽게 할 말이 아니었다고, 식어가는 백숙을 먹으며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수선했던 식사가 끝나고 엄마는 장조림 아래 부분만 들어내 다시 간장을 넣고 끓이셨다. 먹어보니 엄청 맛있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언니는 더 이상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끓인 장조림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남동생과 나는 일부러 더 맛있다고 장조림에 밥을 더 먹고, 집에도 싸가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제야 엄마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아빠가 아프기 전까지 우리 집도 명절에는 부산을 떨었다. 제사가 없어 식구들 먹일 음식만 장만하는 데도 손이 많이 갔다. 그나마도 아빠가 전신마비 환자로 병원에 들어간 이후로는 명절은 더욱 간소해졌다. 차린 건 없어도 명절에 오 남매가 모이면 방바닥 장판이 들뜨도록 시끌시끌했다. 고기를 굽거나 치킨을 시켰고, 자매들이 각자의 시댁에서 얻어온 명절 음식으로 기분을 냈다. 재작년 추석에는 엄마의 계란 장조림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냄비 하나가 완전히 동난 적이 있었다. 그때 엄마는 얼마나 흐뭇하셨을까.     


 온 가족이 모여서 시끌벅적하게 고기를 굽고, 엄마의 장조림도 멋지게 동나는 명절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본다. 엄마가 싸준 장조림은 집에 돌아와 부지런히 먹어 보았지만 결국 버렸다. 엄마에게는 영원히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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