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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Apr 14. 2023

[육아에세이] 어디보자

반짝이가 들어있는 투명한 풍선 같은 세상

 “이제 끝!”

읽고 있던 그림책의 책장을 덮으면 아이의 다급한 손이 올라온다.

“아직 남아쪄요!”

벌써 두 번 째 읽었는데도 책을 덮을 생각이 없다. ‘한 번 더 읽을까?’  물으니 아이는 앵무새처럼 ‘네, 고마워요. 엄마!’ 하고 외친다. 그림책을 다시 처음부터 펼치면 아이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어디 보자~”


 그림책을 읽어주려다가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이제 고작 30개월 산 아이가 무슨 할아버지가 말하듯 한다. 내가 가르쳐 준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배워왔을까. 두 돌이 한참 지나도록 도무지 말문이 안 트이던 아이가 요즘은 제법 말을 하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 몇개월 간의 옹알이도 귀여웠지만 말 다운 말을 하니 몇 배나 더 귀엽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양한 말로 어른들을 미소 짓게 하고는 한다.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의 말은 아이가 화장실에서 물을 내릴 때 하는 인사이다. 아이는 자신의 응가가 사라지는 순간, ‘잘 가~’라며 손을 흔든다. 이미 물이 내려갔는데도 아이는 변기에 대고 한 번 더 당부한다.

“조심해~!!”

아이는 똥이 먼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함께 아이 똥의 안녕을 빌어주기도 한다.


 아이의 목소리가 가장 간절해 질 때는 애착인형 머피가 사라질 때 이다. 머피는 갈색 곰인형으로, 아이가 잠을 잘 때 없으면 안 되는 소중한 친구다. 한참 두리번거리던 아이가 마침내 인형을 찾으면 가슴에 꼬옥 끌어안는다.

“많이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

무서웠던 것은 인형 쪽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토닥토닥 인형을 달래는 것이 신기하다.  


 지난 주말 우연히 풍선을 얻었다.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풍선으로 안에는 반짝거리는 비닐조각들이 들어 있었다. 어제는 아이와 풍선으로 공놀이를 하던 중이었다. 신나게 놀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풍선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중얼거리는 아이의 입술이 동그란 풍선 너머로 뭉개지고 있었지만, 두 눈은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아이에게 이 세상은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투명한 풍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보자’는 말에는 아이가 세상을 배워나가는 철학이 담겨있다. 빠르게 대충보고 지나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찬찬히 시간을 들여 관찰하겠다는 의지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아이가 풍선을 터트려 반짝이들이 쏟아질까봐 전전긍긍 했다. 아이의 반짝이는 눈은 보았지만 아이가 보던 반짝이는 풍선 안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에게도 ‘반짝이가 들어있는 투명한 풍선’이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누구보다 ‘어디 보자’를 많이 하던 아이였다. 언제 이렇게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이제야 어제 아이의 풍선을 같이 들여봐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30대 어른이면서 30개월 아이만도 못했다. 아이에게서 ‘어디 보자’를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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