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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Sep 06. 2023

엊그제 같아요 나의 추억

지잉 -

턴테이블이 돌아갔다. 남편과 나의 눈이 커졌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턴테이블 위에서 화면 속에서나 보던  새까만 레코드판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핀이 저절로 움직여 레코드판의 가장자리에 닿았다. 가장자리부터 돌기 시작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우와! 돌아간다!'


우리의 탄성과 함께 남편이 컴퓨터에서 뽑아와 턴테이블에 연결한 스피커에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풍성한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5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앞에 도착한 시어머님의 목소리를 감상하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남편이 아는 어머님의 목소리도, 내가 알던 어머님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가끔 방송에 나오는 흘러간 옛날 노래 바로 그 자체였다.

가느다란 미성의 목소리에서 어머님의 모습을 찾아보려 했지만, 아무리 들어도 우리 어머님이 그려지지 않았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뭐야 우리 엄마 목소리랑 완전 다른데?"

남편은 턴테이블을 원하는 스피커에 연결할 수 있는 케이블을 찾으며 부산을 떨면서도 짧은 감상을 뱉었다. 반주 사이에 색소폰연주가 흘러나왔다.

"당시에 노래에 이 정도 음악을 넣는 것도 다 돈이었대"

남편은 중얼거리면서 원하는 스피커에 연결할 케이블이 없다며 컴퓨터 검색창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급하게 틀어보느라 바닥에 놓아둔 턴테이블 옆에 주저앉은 나는 장롱에 기대에 턴테이블 커버를 다시 들었다. 성한 모서리가 한 구석도 없는 종이 케이스였다. 빛에 바래고 낡아서 흐물거리는 테두리가 흘러간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커버 앞에는 사진이 있었다. 20대의 앳된 처자가 당시 한창 유행하던 파마머리를 하고 아련하게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늘씬한 몸에 겨울인지 따뜻해 보이는 니트소재의 스웨터와 치마를 입고 어딘가에 기대서 있었다. 남편을 낳아주신 김미옥 여사님 되시겠다.  커버 뒷면에는 목차와 가사가 적혀 있었다. 가사를 읽으며 노래를 들으니 어머님이 보이다가도 사라졌다.

 처음 인사 갔을 때 만났던 어머님이 떠올랐다. 액세서리 하나도 없이 옅은 화장을 하고 원피스를 두른 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치장이었다. 어머님은 퍼베스트를 두른 가죽재킷에 가죽부츠를 신고 오셨다. 양손에는 큼지막한 은반지가 두세 개씩 끼워져 있었고, 치렁치렁한 귀걸이와 목걸이는 생각나지 않지만 어머님의 트레이드마크였으니 그때도 안 하고 계셨을 리가 없다. 거기에 머리에 얹어진 페도라까지.


 표정과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자격지심인지 나는 어머님의 알이 굵은 그 반지에 한 대 얻어맞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감히 하나뿐인 내 아들을 꼬신 계집애가 너니?' 하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님은 처음 만나는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최고의 격식을 차린 것이었다. 어머님만의 예절이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님은 보통의 시어머니는 절대 아니셨다. 평범하고 고루한 것을 싫어하는 나는 그게 좋으면서도 어쩐지 편하게 대해드릴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자고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어려워하는 것이 강호의 도리 아니던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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