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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콩 Oct 10. 2023

문방구

어린시절 문방구 사장님이 꿈이었는데




“삐삐빅-삐삐삑-”

유리로 된 미닫이문을 열자 기계음이 들렸다. 가게에 연결된 안쪽 살림집까지 들릴 만큼 큰 소리였다. 문을 닫고 들어서니 그제야 찬바람이 밴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난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내부는 따뜻했고, 어디선가 달짝지근한 냄새가 났다.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언제나 생각나던 그 냄새였다. 누군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도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주말인데도 어디선가 학교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들어선 채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오른쪽으로 돌리면 작은 음료수 냉장고가 있다. 하지만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쌓여있는 과자 가판대다. 그 아래 까맣게 반들거리는 시멘트 바닥의 통로 반대편 선반 너머로는, 실내화며 공기공 같은 것들이 걸려 커튼을 대신하고 있었다. 선반의 아래 칸부터는 줄줄이 공책들이, 그 위로는 차곡차곡 지우개나 연필들이 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유리창에서 들어온 정오의 겨울 햇살이 문방구 안에 스며들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 오랜 친구가 집에 왔다. 친구는 성인이 되자마자 제주도에 터를 잡았다. 각자 사회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동안 소원했던 친구가, 모처럼 일이 있어 광주에 왔다가 우리 집에 들른 것이다. 서로 ‘하나도 안 변했다’고 킥킥대다가 문득 고향 마을에서 함께 다닌 초등학교 이야기가 나왔다. 담양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를 함께 다녔다. 마침 나도, 친구도 시간에 여유가 있어 초등학교에 가보기로 했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아이 손을 잡고 친구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


막상 길을 나서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사는 곳에서 시골 학교까지는 차로 2~30분, 못갈 거리도 아닌데 여태 가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운동장에서 산책도 하고 아이를 뛰어 놀게 해줄 기대감에 부풀어 학교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뿔싸! 학교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담벼락 너머로나마 학교를 구경하는데 갑자기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니 괜히 더 추운 기분이 들었다. 아쉬운 마음에 돌아서는 순간, 길 건너 문방구에 불이 켜진 것이 보였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도 신기한데 주말에도 불이 켜져 있어서 더 놀라웠다.


학교 앞에는 두 개의 문방구가 있었다. 정문 바로 옆에는 ‘제리점’이, 그 건너편에는 ‘서점’이 있었다. ‘제리점’에 들어서면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진열대 건너편에 할머니가 눈을 부릅뜨고 계셨다. 물건을 고르면서 조금이라도 어물쩍거리면 호통이 날아왔다. 게다가 ‘제리점’에서는 직접 보고 고를 수 있는 물건이 별로 없었다. 진열대가 좁아서 밖에 내놓지 못하고, 안쪽에서 꺼내다 주셨기 때문이다. 가끔은 여러 번 설명해도 원하던 것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한편 ‘서점’은 길을 건너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물건도 훨씬 더 많고, 넓었다. 당연히 나는 ‘서점’을 더 자주 가는 꼬마손님이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면 아이 걸음으로는 한 시간이 걸렸다. 집에 가는 길은 언제나 멀고 지루했다. 당시 문방구에서 팔던 것 중 신호등 사탕이 있었다. 신호등처럼 알록달록한 색의 사탕이 여러 개 들어있었다. 오돌토돌한 사탕을 하나하나 아껴 먹다 보면 집에 가는 길이 훨씬 가까웠다. 반면에 주머니에 한 푼도 없어서 터덜터덜 집에 가는 길은 지루하기만 했다. 아무리 걸어도 집은 멀어지고 등에 맨 책가방은 세상의 짐을 다 짊어진 듯 했다.  


문방구에서 사고 싶은 것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부모님에게 따로 용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준비물을 사고 잔돈이 남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어쩌다가 동전 몇 개가 생기면 하교 후 문방구로 달려갔다. 소시지나 젤리, 쥐포나 과자를 들었다 놓았다 고민 하는 시간은, 그 시절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새로 나온 게임기나 편지지 같은 것을 구경하는 재미는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구경해도, ‘서점’의 아주머니는 화내지 않으셨다.  


언젠가는 문방구에서 파는 크레파스가 너무 가지고 싶었다. 일반적인 크레파스보다 좀 더 얇고 손에 묻지 않는 신제품이었다. 그것이 가지고 싶어서 며칠을 앓았다. 빠듯한 집안 사정에 졸라봤자 소용없을 것이 뻔해서 결국 엄마의 돈을 훔쳐 크레파스를 샀다. 그것을 언니에게 들키는 바람에 나의 완전범죄는 엄마의 대성통곡으로 끝이 났다. ‘딸이 아니라 도둑을 키웠노라’고 가슴을 치셨던 엄마가 아직도 기억난다. 철없는 막내딸은 그 이후로도 문방구에서 마음을 뺏길 때가 많았다.


그 많은 추억이 서린 문방구에 들어섰지만 나와 친구는 어색하게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변한 것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어른 두 명이 들어서니 통로가 꽉 찼다. 어른이 되어 방문한 문방구는 좁고 어두웠다. 단정한 가판대와 밝은 조명 같은 건 없었다. 무릎까지도 오지 않는 과자 진열대를 보기 위해서는 허리를 한참 숙여야 했다. 한가하게 둘러보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아이가 떼를 쓰기 시작했다. 놀이터에 가는 줄 알았는데 차만 타서 화가 난 것이다. 아이를 달래기 위해 서둘러 사탕과 비눗방울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계산 해주세요.”

안쪽을 향해 소리치자 그제야 누군가 나오는 기척이 들렸다. 방에서 나온 할머니는 분명히 예전에 계시던 그 주인 아주머니였다. 물건을 하나하나 들쳐보며 가격을 확인하고 계산하는 모습도 그대로였다. 어릴 때 다녔던 학생들이라고 말하니 주름진 얼굴이 환해졌다. 그제야 과일이라도 사올 걸, 빈손이 민망해졌다. 할머니는 찾아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하시며 두 손을 꼭 잡아주셨다. 검버섯이 피고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이 따뜻했다. 부디 건강하시라고 당부하며 서점을 나오는 마음은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훈훈해졌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는 문방구에서 사온 사탕을 맛있게 먹었다. 부루퉁 나온 입이 열 개 정도 되는 사탕을 한 번에 다 먹고 나서는 쏙 들어갔다. 그날 오후 친구를 보내고 아이와 함께 놀이터로 나왔다. 비눗방울의 뚜껑 손잡이는 햇빛에 색이 바랜데다 매직으로 2000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집어들 때는 먼지가 잔뜩 끼어 있어서 멈칫했지만, 불어보니 비눗방울은 잘 날아갔다. 하늘 높이 날아가는 비눗방울을 향해 팔을 뻗으며 아이는 폴짝폴짝 신나게 뛰어다녔다. 어른이 되어서 간 문방구는 어린 시절 만큼 눈부시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주는 기쁨은 여전했다.


빠르게 움직이고 적응하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때로는 변하지 않아서, 한결 같아서 좋은 것도 있다. 오늘도 아이가 옷을 입거나 밥을 먹을 때 ‘빨리’를 외치면서, 몇 번이나 다그쳤는지 모르다. 아무리 오래 서성거려도, 세상이 몇 번이나 변하도록 그대로인, 고향의 문방구를 생각해본다.


부디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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