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죄송하실 필요는 전혀 없.다.구.요!
며칠 전 브런치특강에 누군가 등록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등록생은 단 한 명.
"강좌 진행하시겠습니까?"
매니저님이 민망해하시면서 물어보셨다. 안 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하겠다고 대답했다. 사실, 내가 진행하고자 하는 커리큘럼은 다수의 많은 수강생을 상대로 하는 강연보다는 컨설팅에 더 부합하다. 그런데 일정이 조금 촉박했다.
"내일 모레라구요?"
내일은 다른 문화센터에서 특강이 있는 날. 뭔가 나답지 않게 바쁜 며칠이 될 것 같다. 이래저래 동호회에서의 모임과 행사로 정신이 없는 시기였다. 언제 어디서나 완벽하게 강좌를 진행할 수 있는 강사가 아닌 나로서는 약간의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필요하고, 강좌 자료를 한 번 더 손 볼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도대체 누구이시길래? 유명하지도 않고 출간작가도 아닌 내 특강에 수강을 신청한 걸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보겠습니다!"
비장하게 통화를 끊고 틈틈이 강좌를 준비했다. 단 하루의 강좌에는 단기 특강보다 더 신경이 쓰인다. 짧은 시간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자료를 통해서 보충할 수 있게 자료도 꼼꼼하게 준비하는 편이다. 이번에는 욕심을 부려서 PPT 자료를 좀 더 멋지게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로 시간이 너무 없었다. 결국 멋진 PPT 말고 급하게 만든 졸속의 PPT가 만들어졌다.
하필 오늘 아이의 견학 날이라 새벽부터 도시락을 만들고 부랴부랴 자료와 노트북을 챙겨서 차에 올라탔다. 그래도 어제 다른 지점에서 특강을 해서인지 긴장은 좀 덜되었다. 라디오의 클래식음악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쇼팽을 들으며 내비게이션을 설정했다. 핸들을 쥐는 손에 식은땀이 나는 것이 느껴졌다.
아파트 주차장 입구를 출발한 순간 전화가 울렸다. 오늘 가기로 한 문화센터였다.
"갑자기 수강하시기로 한 분이 전화를 주셨는데요. 오늘 참석이 어려우시다네요."
"우와, 아직 출발 전인데 신속하게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를 돌려서 다시 집으로 갈까 하다가 집 근처 카페로 와서 노트북을 열었다. 긴장이 풀린 탓에 피곤이 몰려왔지만 모처럼 차려입었는데 이대로 집에 돌아가는 것도 아쉬웠다. 내 특강을 더 보완할 시간이 생겼다는 안도감도 몰려왔다. '브런치 한 번에 합격하기'가 오늘 내가 하려던 특강의 주제였다.
꼭 특강 당일이 되면 내가 준비한 모든 자료가 미흡하고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어 초조해지고 만다. 무슨 급한 사정으로, 혹은 무슨 심경의 변화로 내 강좌를 취소하셨던지 상관없다. 오히려 감사하다. 지난달에는 세 분의 수강생이 아무 통보도 없이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은 적이 있었다. 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단기 특강의 특성상 보통은 수강생의 인원수만 통보받는다. 수강생의 동의를 받고 미리 전화를 드릴 수 있지만 매니저님의 업무가 과중해지는 부분이 있어서 고민하다 먼저 요구하지는 않았었다.
한 시간 정도 빈 강의실을 지키다가 세팅했던 노트북과 자료를 챙기고 철수했다. 이제와 안 오시는 분들에게 연락을 드리는 것도 의미가 없고 더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는 문화센터의 담당님에게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강생들과 함께 먹으려고 챙겨간 과자와 커피를 혼자서 신나게 먹고 돌아왔다. 그날도 약간의 감기 증상이 있어서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오래간만에 쓴 마스크가 조금 불편하기도 했고 코가 꽉 막혀 있어서 말할 때마다 골이 울리기도 했다. 모처럼 휴가 나와 집에 와 있는 남편을 굶긴 게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민망해하시는 매니저님에게 글감 하나 더 생겼다고 했더니 씩씩하다고 칭찬해 주셨다. 실제로 나는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더더군다나 오늘은 미리 불참 통보도 해주시고, 친절한 분이시다.
사실 글쓰기 강좌는 뭔가 재미있는 것 같지도 않고 글쓰기를 마구마구 시킬지도 모르는 어마무시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강좌의 등록비용도 고작 커피 한 잔 가격 정도라서 당일 환불처리가 안된다고 해도 취소하는데 부담이 없다. 갑자기 변덕이 나서 가고 싶지 않아 질 수도 있고, 강좌 자체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글쓰기는 굳이 문화센터까지 가서 배워야 할 정도의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어서 혹은 단수한 호기심으로 특강에 신청해 주시는 분들이, 나는 못 견디게 궁금하고 만나보고 싶다.
아마 내가 더 유명한 작가였다면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았겠지라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 만날 내 수강생들을 위해 더 나은 내가 되자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