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무봉 옛글

볏가을에 띄우는 편지

조성범

by 조성범


가을바람 시원하게 얼굴을 씻어 내고

한달음에 나뭇가지를 지나

황금 들녘의 고추잠자리 등에 올라타

누렇게 농익은 이삭 위를 비상합니다.


농군이 봄에 뿌린 모가 벼가 되어

고개를 낮추는 만추의 계절입니다.


참새와 입방아 찌며 황금벌판의 벼이삭을 지키는

허수아비의 팔짓에 아랑곳하지 않고

까르르 웃음만 떨구고 유유하고 있습니다.


늦봄의 모내기 이식을 참아내고

바닥에 뿌리내리느라 얼마나 진땀 흘렸을까.

무더운 여름 햇살 가득 이고

이마에 땀방울 송골송골 맺히며

논두렁의 피를 뽑아내려 촌부의 아낙은 얼마나 두렁길을 오고 갔을까.


머리에 참을 이고 나르느라 얼마나 기우뚱거렸을까.

이제 가을의 풍요가 가락이 되어

꽹과리 징징 울려 퍼질 텐데

수확한 볏가마 수매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유년의 슬픔이

이 가을 아침에 쏴하게 달려옵니다.


2012.09.06. 목.


조성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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