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심시심

비에 젖은 숨꽃

조성범

by 조성범

"비에 젖은 숨꽃"


1.

있음과 없음의 문제가 아니네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네


없는 데 있는 걸 찾느라

머리는 가슴에 닿질 못하네


있는 것은 이미

숨꽃을 부끄럽게 달고

고개를 떨구고

겸손하게 걸어가네


2.

밤새 천둥소리를 입고 나느라

너의 날갯죽지 먹빛 하늘을 흠뻑 적셨구나

장대비를 토하느라 목젖이 부르트네

눈 감은 해를 찾아 어디를 쫓느냐


3.

하늘이 배탈 났네

시절 잊고 폭식한 거지

먹구름 토하느라

밤, 아침 돼서야

땅, 쓰다듬네

바닥에 떨어진 빗방울, 땅을 훔치지 못하고

흙바닥을 헤매더니 개울로 흘러

터진 하늘에 목 놓아 우네


4.

하늘이 부서져 쏟아지네

하느님 곳간이 불타오르네

춘궁기도 지났는데

염천에 하늘 전쟁이 터졌나 보네


먹구름이 장대비를 던지니

비구름이 우레에 불을 붙이고

잿빛 하늘이 난쟁이네


산산조각 난 하늘바다

부연은 온데간데없이

먼지만 낙화하누

천둥번개 신났구나


5.

멍든 하늘

바람이 춤을 추네

바람 났네 보네

땅을 버린 천우

허공에 구멍 뚫었네

소복 입은 하느님

땅에 누워 하늘을 벗고

어디 가시나요?


6.

하늘, 알몸으로 뒹군다

눈을 빼 개울에

귀를 뜯어 천둥소리

입을 발러 바람에 날리네

곧추선 천당

하늘을 파

물을 묻네


7.

눈먼 장님 비

하늘을 이다 땅이 되었네

바람눈 하늘땅에 기대

,을,기웃거려

물이 되어 땅에 누운 하늘님

맨몸으로 꽃대에 서다

물꽃, 물끄러미 바라보시네


8.

하늘이 된 들 뭣하리오

땅이 된 들 무엇하리오

하늘은 하늘이고

땅은 하늘이 핀 천당이거늘

하늘은 땅에 피운

낙원 일진데

여기가 천락이뇨


백지 ㅣ2022 . Vol 061

백지시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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