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의 삶이 불행해지거나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세 가지 오해 때문입니다. 이번에 4차에 걸친 강의 시리즈는 이 세 가지 오해를 풀어가는 것이 중요한 목표입니다.
첫째, 인간(인간관)에 대한 오해
둘째, 조직(구조와 시스템)에 대한 오해
셋째, 세계(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오해
1차 강의는 인트로였고, 앞으로 이 세 가지 오해를 2차, 3차, 4차 강의시간에 차례대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우선 2차 강의에서는 인간에 대한 오해를 다루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인간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해왔습니다. 아주 결정적인 오해는 심리학자들에 의해 밝혀졌습니다. 인간이 과연 어떤 상황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며, 생산적이 되고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첫째,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자율적인 느낌이 들 때,
둘째, 자신이 새로운 뭔가를 학습하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셋째, 자신이 사회에 공헌하는 어떤 것을 성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여기서 자율, 성장, 성취가 핵심 단어입니다. 이 세 가지 개념이 동시에 인간에게 닥칠 때, 그 일에 깊이 몰입하고 헌신하게 됩니다. 이때 아주 높은 창의성과 생산성을 나타내며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과학적 연구결과가 아니더라도 실제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서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지저분한 방을 청소하려고 빗자루를 들었는데, 엄마가 청소하지 않는다고 야단을 치면 청소할 맛이 딱 떨어집니다. 자율성이라는 것은 그렇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동기 요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노동현실을 보면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타율적으로 목표치를 부여하고 구성원들을 쥐어짜고 있으니까요. 우리의 생산성이 유럽의 복지국가들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로버트 오웬(Robert Owen, 1771~1858)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 뉴라나크(New Lanark)에서 방직공장을 경영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당시는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이 팽배하여 어른들도 15시간씩 노동을 시키고 6살짜리 어린아이들도 12시간 이상 노동을 시키는 시대였습니다. 자본가들은 그야말로 자유롭게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할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당시에는 공장의 안전장치도 매우 부실했기 때문에 일하다가 다치기도 많이 했습니다. 다치는 것도 노동자 자신의 책임이었습니다. 나이 들어 더 일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도 아무런 대책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오웬은 자유주의 사상에 근거한 자본가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오웬은 노동시간을 하루 10시간으로 정했고, 나중에는 8시간 노동, 8시간 재충전, 8시간 휴식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행했습니다. 어린아이들도 12세 이하는 노동을 금지시켰고, 공장에다 학교를 만들어 기초교육을 시켜주었습니다. 나아가 오웬은 의료보험과 연금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가히 혁명적인 조치였고, 위대한 실험이었습니다. 1800년부터 1825까지 25년간 이런 실험은 계속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개별공장 차원에서 이런 복지제도를 실행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놀랍게도 이 실험은 아주 크게 성공했습니다. 이런 성공에 고무된 오웬은 더 큰 이상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1825년 뉴라나크의 공장을 팔아 미국 인디애나 주의 뉴하모니(New Harmony)에다 더 큰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인간과 노동에 관한 미국인들의 오해와 여러 가지 척박한 상황에다 준비 부족 등이 겹쳐 결국은 4년 만인 1829년 미국에서의 실험은 실패를 선언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오웬은 남은 생애를 자신의 성공적인 뉴라나크 실험이 남긴 사상적 배경을 정리하여 강의와 집필을 하면서 남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오웬은 자신의 경영철학과 사상을 사회주의(socialism)라고 명명하고 자신을 사회주의자(socialist)라고 불렀습니다. 이전의 사회주의라는 이론적 개념으로만 알고 있던 것을 오웬은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 시기, 그러니까 19세기 전반 오웬의 사회주의 실험이 성공하고 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하나의 운동으로 전개될 즈음, 덴마크에서는 우울한 철학자 쇠얀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3~1855)가 나타납니다. 그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깊은 사색에 빠집니다. 인간에 대해 이전의 철학자들과 다르게 접근했습니다. 인간의 본질(essence)이 아닌 인간의 존재(existence)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 우주의 삼라만상에다 독특한 가치와 의미와 (존재)목적을 부여하는 유일한 생명체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인간을 다른 존재하는 것(being)과 달리 표현하기 위해 실존하는 것(existence)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실존하는 존재로서, 내가 지금 들고 있는, 물이 담겨 있는 이 컵은 나의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도구라는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은 존재(being)입니다. 내가 그렇게 규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 아내는 이 컵에 작은 화초를 심어 키울 수도 있습니다. 컵은 나의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물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화분이 됩니다. 인간은 이렇게 사물의 본질을 자유롭게 규정합니다. 이렇게 본질을 규정하는 인간의 독특한 능력을 '실존(existence)'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만 실존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지, 볼펜이나 컵이 실존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볼펜이나 컵을 얼마든지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지만, 볼펜이나 컵은 스스로 다른 사물의 본질을 규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존재물들은 '실존하는' 인간의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듯 유독 인간에게만 '실존'이 들러붙어 있습니다.
이러한 키에르케고르의 사유는 그 후의 많은 철학자, 신학자, 예술가, 심리학자와 사회과학자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의 실존주의 철학을 제2차 강의 중에 잠시 살펴봤습니다. 사르트르의 실존철학을 이해하려면 강의를 직접 듣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 내용을 이곳에서 다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며 오히려 오해가 생길 수도 있어, 장황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인간은 이 우주의 삼라만상에 대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실존적 존재로 태어난다는 면에서 평등합니다. 그러나 노동하는 인간의 측면에서 보면 매우 불평등합니다. 으리으리한 사무실 앞에는 아리따운 비서들이 늘 미소 지으며 맞아주고, 전용 응접실과 휴게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기사의 의전을 받으면서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무실 바로 건너편 거리에는 엉덩이 붙일 곳이 없어 하루 종일 서서 노점을 지켜야 하는 상인도 있습니다. 이 노점이 불법적인 것으로 철거당하면 상인의 운명은 지하철 서울역의 노숙자가 되는 선택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실존적으로는 평등하지만, 현실의 기능적 측면에서는 매우 불평등합니다.
이 철학적 사유가 가져다주는, 사회적 역할에서 오는 기능적 불균형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이것이 유럽 지성인들을 괴롭혔습니다. 인간에게 운명처럼 드리워진 실존적 평등과 기능적 불평등 사이의 부조화를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엄청난 불균형을 조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조화시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사회주의자들이었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로버트 오웬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여름휴가 중이던 2009년 8월 16일 오후, 스코틀랜드 뉴라나크에 도착해서 공장의 규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3천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일했고, 수백 명의 아이들이 놀던 장소였으니까요.
로버트 오웬의 강의를 듣고 감동에 휩싸인 영국인이 있었습니다. 조지 홀리요크(George Holyoake, 1817~1906)였습니다. 그는 8살 때부터 방직공장에서 일을 했던 사람이었는데 18세 되던 해 오웬의 강의를 듣고 감명받아 오웬주의자(=사회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그 후 영국의 협동조합 운동에 뛰어들어 맨체스터 인근의 로치데일이라는 조그마한 도시에 세계 최초로 협동조합을 만듭니다. 28명의 조합원으로 시작하여 1844년에 버터, 설탕, 밀가루 등을 준비한 초라한 가게를 엽니다. 그것이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Rochdale Equitable Pioneers Society)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썼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로치데일의 직공들은 자신의 문제 해결을 위하여 ‘협동’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선택의 이유는 ‘이 정도의 일이라면 자신들의 능력 범위 안에 있고, 자신들에게 큰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윤리적 소비’가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 조지 홀리요크, 『공정선구자협동조합 – 역사와 사람들』, 그물코 2013
로치데일에 가면 아직도 그 가게가 남아 았습니다. 우리가 로치데일을 찾아간 것은 2015년 7월27일 오후였습니다. 비가 쏟아지고 있었는데(참고로 영국의 날씨는 이렇게 늘 비가 옵니다), 마침 박물관이 쉬는 날이었습니다. 겉만 보고 돌아왔습니다.
오웬의 사회주의 실험이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나라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이런 오웬의 사상에 근거하여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 이것을 줄여서 '사민주의'라고 함) 사상이 들불처럼 번졌기 때문입니다. 유럽 대륙에서도 사민주의 사상은, 특히 독일에서는 세계 최초로 질병보험(1883년), 상해보험(1884년), 노후보험(1889년) 제도를 실시하는 등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유럽 대륙의 변방에 찌그러져 있던 프로이센이 독일을 통일하고 유럽 대륙의 맹주로 떠오르게 된 것도 보편적 복지국가모델을 국가운영의 기본철학으로 삼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듭니다. 거의 200년 전에 벌써 인간의 본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개별기업 차원에서 실시된 실험에서 성공한 뉴라나크 모델이 있었는데, 왜 오늘날 기업경영에 이런 사상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왜 사민주의 사상에 기초한 사회구조와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을까? 우리는 그동안 인간에 대해 무슨 오해를 하고 있었을까?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민주의 사상과 그 역사적 맥락을 전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르치지 못하도록 억압해왔습니다. 이승만 정부 이후 사민주의 사상을 금기시했습니다. 시민들이 모여서 서로 협력하여 무슨 일을 하는 것을 일체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일반인에게는 사민주의에 대한 정보가 전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훌륭한 사민주의 사상을 왜 가르치지 않았을까요? 이 점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오웬의 실험은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와 같은 게르만 모형으로 불리는 나라들과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과 같은 스칸디나비아 모형으로 불리는 나라들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사민주의 철학에 부합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자조, 자립, 자치의 놀라운 협동정신을 스스로 실천해 나갔습니다. 이런 나라에는 사회 저변에 사민주의 사상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자본가들의 억압과 착취에 대항하여 노동자들 스스로 협력하는 방법을 깨우친 것입니다. 이런 나라들이 오늘날 유럽의 복지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 지구 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되었고,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 그러니까 2016-07-08(금) 제3주 차 강의에서는 이런 복지국가의 조직운영시스템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인간들이 만든 '조직'에 대해 우리가 무슨 오해를 하고 있었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혹시 지금까지 바빠서, 그리고 지난 금요일처럼 폭우가 쏟아져서 참석하지 못한 분들도 이번 주에는 꼭 오셔서 함께 논의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시간도 가졌으면 합니다.
(이 사진은 사진작가 조우혜 선생이 찍어준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강의현장을 스케치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