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지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세상을 보며 걷는 것이다
어디를 걸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였다. 우리는 다시 시내로 나갔다. 채링크로스(Charing Cross) 역에서 내려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으로 갔다. 아내는 어디를 가나 늘 미술관을 좋아한다. 나는 까막눈이라 그림을 봐도 잘 모른다.
아내는 그림을 볼 때, 가까이서 보다가는 멀리 떨어져서 보고 그러다 다시 가까이 간다. 내가 묻는다. 뭘 그렇게 보느냐고. 대답은 간단하다. 그냥 보는 거야. 나는 뭔가 심오한 답변을 기대하고 물어보지만,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대답이 반복될 뿐이다. 아내는 그림이 그냥 좋은가 보다. 나는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그림에 크게 감동한 적도 없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도 모른다. 저런 그림을 그리느라 화가가 애썼을 것이라는 점을 높이 살뿐이다.
아내를 졸졸 따라다니다 의자가 있으면 어김없이 주저 앉는다. 재미없으니까 다리가 아픈 것이다.
아내는 내셔널 갤러리의 특별전시관을 시작으로 본관을 거의 전부 훑었다. 이번에는 그 옆에 붙어있는 국립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으로 가서 다시 훑는다. 내가 아는 사람들의 초상화가 꽤 있어 그나마 덜 지루하다.
미술관을 벗어나 복잡한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의 생김새와 표정을 관찰하면 재미있다. 특히 런던의 거리는 똑같은 사람을 볼 수 없다. 아니, 비슷한 사람도 없다. 제각각이다. 옷매무새까지 더하면 이렇게 다양할 수가 없다. 한 여름에 바바리 코트를 걸친 사람도 있고, 젖꼭지가 반쯤 보일 정도로 가슴팍을 드러내고 활보하는 여인들도 있고, 눈만 내놓고 온몸을 까만 천으로 가린 채 런던의 먼지를 휩쓸고 다니는 여인들도 보인다. 사람의 생김새와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곤 한다. 한국 TV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 특히 걸그룹 멤버들을 내 눈으로는 거의 구분하기 힘들다.
영국인들이 이 다양성을 즐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빌어먹을 브렉시트(Brexit)를 하는 바람에 이런 다양성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무튼 나는 건물과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풍광을 보면 좋다. 그 속에서 사람들의 역동적 움직임을 보는 것은 더 좋다. 500년의 역사가 있다나 어쨌다나, 그런 펍에 들어가서 맥주를 마셔보는 것도 나그네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맛은 기대했던 것보다는 그저 그런 수준이다. 물론 한국 맥주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런던에 도착한 이후, 가장 많이 걸었다. 2만보 가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