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의 제도의 폐해
* 표제의 이 사진은 2016-08-09(화) 독일 베를린 시내에서 S-Bahn을 타고 북쪽으로 1시간가량의 거리에 있는 작센하우젠 유대인 강제수용소(Konzentrationslager Sachsenhausen) 담벼락을 찍은 것입니다.
2016-08-27(토) 김용민 브리핑에 나간 [최동석 칼럼]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9938
[0827토①] "문고리 권력 중 한 명 위태로워 보여"
[페북에다 쓴 글...]
여름휴가를 마치고 와서 첫 칼럼을 냈습니다. 김용민 브리핑의 토요판에 실렸습니다. 아무쪼록 많은 분들이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셔도 좋고요.
자유롭고 풍요로운 공기를 맘껏 마실 수 있는, 한국의 갑갑한 현실을 생각할 필요가 거의 없는 휴가를 마치고.... 다시 한국 사회에 스며들어 오면, 마치 강제수용소에 갇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뉴스나 방송을 들어도, 영화를 봐도, 책을 읽어도, 제자가 찾아와 상담을 해도 우리 사회는 지배와 복종, 명령과 통제, 억압과 착취가 횡행하는 사회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나는 교육학과 경영학을 공부한 사람이라서 늘 인간의 조건과 조직의 생산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생산성과 창의성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지배적 자유를 맘껏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인간과 조직과 세계에 관한 어설픈 지식만 가진 학자들이 떠드는 기만술 때문에 한국사회가 너무 많이 망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칼럼을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오늘은 개인적인 얘기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5년간 근무했습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 하교지도를 하기 위해 교문 밖으로 나갔다가 학교 주변에 있는 여러 상점들에 아이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혹시 비교육적이거나 비위생적인 물건들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려고 학교 주변을 쭉 돌아보았습니다. 하교지도 후에 조금 늦게 교실로 돌아왔습니다. 길어봐야 30분에서 1시간 정도였을 겁니다.
1.1.
그날 학년 주임 선생님은 저를 불러, 하교지도 후에는 곧바로 돌아와야지 학교 밖으로 무단이석을 하면 안 된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그렇게 하려면 사전에 계통을 밟아 교장선생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허락을 받는다는 말은 외출하려면 외출계라는 양식에다 사유를 적은 후 주임교사, 교감, 교장에 이르는 결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970년대 교육계와 한국은행의 상황
2.
70년대 교육계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학급에서 가르치는 것도 사전에 학습지도안을 작성해서 계통을 밟아 일주일 단위로 미리 결재를 받아야 했고, 그대로 가르쳐야 했습니다. 교사는 이렇게 주어진 교재에 맞춰 학습지도안에 따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기계였습니다. 나는 교사로서 교육적 상식에 따라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여 가르칠 수 있는 자율성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물론 동료 교사들과 더 나은 교수학습방법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겠지만, 그것이 지배와 통제 또는 명령과 복종의 형태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이론이었을 뿐, 교육계는 오직 지배와 통제의 방식으로 움직였습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것이 바로 일제 군국주의적인 학교 운영 방식이었습니다. 지금도 학교의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교장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3.
그러다 교직을 떠나 한국은행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행은 어땠을까요? 교직과 비교하면 일하는 내용은 달랐지만, 조직이 운영되는 방식은 똑같았습니다. 내가 하는 일의 모든 것은 계통을 따라 윗사람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야 했습니다. 여기서 계통을 따른다는 말은 상관과 그 상관의 상관, 다시 그 상관의 상관의 상관으로 이어지는 결재라인을 뜻합니다. 다른 개인기업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윗사람의 결재가 떨어지기 전에는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공무원 사회는 더욱 심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렇게 지배와 통제, 명령과 복종, 억압과 착취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1980년대 서독 연방은행에서의 경험
4.
그러다가 한국은행 직원 신분으로 서독 연방은행에 몇 달간 연수를 가게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해외연수라는 것이 그 나라의 문물을 견문하는 것이지요. 그때가 1986년이었으니까 전두환 군사독재가 막바지 기승을 부릴 때였습니다. 남대문과 소공동 일대는 늘 최루가스로 뒤범벅이 됐고 퇴근길에는 부서진 보도블록들이 밟혔습니다. 이런 지옥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 몇 달간, 서독,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같은 유럽 여러 국가들을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천국처럼 보였습니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나라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만큼이나 천연자원의 혜택이 없는 나라들이 이렇게 잘 살게 된 연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5.
이런 해외연수기회를 통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의문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독일 사람들의 의사결정방식은 우리가 하는 품의서(稟議書)를 써서 계통을 따라 일일이 보고하거나 결재를 받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에게 가능하다면 해외여행을 권합니다. 여행을 하면,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와 문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합의제 민주주의의 중요성
6.
독일어에는 품의서나 결재라는 용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독일인들은 중요한 사항일수록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모여서 회의와 토론을 통해 합의함으로써 결정합니다. 아랫사람이 검토하여 대안까지 제시해서 계통을 밟아 윗사람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독일인들은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그래서 늘 결정이 늦어집니다. 그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빨리빨리’가 생활화된 우리에게는 정말 울화통이 터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일단 합의가 되면 그 합의안은 강력한 실행력을 갖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7.
우리는 대부분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거치지 않고 결재라인을 따라 일방적으로 결정합니다. 만약 이해관계자들의 저항에 부딪치면 그런 결정은 실행력을 갖지 못합니다. 최근의 사드 배치 사태를 보십시오. 박근혜, 김종인, 안철수. 주요 정당을 책임지고 있는 이 사람들의 그동안 행태를 보십시오. 조직 내에서 권력의 정점에 앉은 사람들은 자기 맘대로 결정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꼼짝도 못 하게 권력으로 윽박지릅니다. 민주주의가 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라의 중요한 정책을 마구 결정하는 자리에 앉아 있으니, 이것이 우리 현대사의 불행이자 비극입니다.
7.1.
이렇게 독일인들이 조직을 운영하는 방식과 한국인의 조직운영방식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차이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한국식 의사결정 메커니즘은 계급구조에 의해 철저한 지배와 통제로 이루어지며 아랫사람이 일한 것을 윗사람이 가로채는 방식인데 반해, 독일식은 경영이 민주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합의하여 결정하며 각자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품의 제도의 기원과 본질, 그리고 그 폐해
8.
몇 달간의 서독 연방은행 연수를 마치고 한국은행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곧바로 품의 제도(稟議制度)에 의한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문제를 연구한 논문이나 문헌은 없었습니다. 행정학 교과서에 품의 제도에 관한 내용을 기술해 놓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내용은 현실에서는 별로 쓸모가 없는 것이었고, 품의 제도의 유래에 대해서도 제대로 밝혀 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품의 제도에 의한 의사결정방식이 우리 민족에게 고유한 것이었는지, 아니라면 이렇게 불합리한 지배와 통제, 억압과 착취의 의사결정 메커니즘이 도대체 언제 어떻게 우리 사회에 굳어지게 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9.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품의 제도에 의한 의사결정방식은, 즉 조직의 맨 아랫사람이 기안문서라는 품의서를 작성하여 계통에 따라 윗사람에게 의사결정을 계속 떠넘기는 방식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가 근대적 행정시스템을 확립해 나아갈 때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9.1.
지금 우리가 행정업무에서 쓰는 품의 제도는 일제의 잔재입니다. 조선시대 의사결정방식은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는 국왕과 대신들의 합의에 의해 의사결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우리가 다 아는 얘깁니다.
10.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어떻게 해서 이런 품의 제도를 만들어냈을까요? 그것은 일본 학자들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19세기에 '품의서'라는 문서가 최초로 등장하지만, 이런 관행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에도막부시대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가 일본 전역을 통일하고 지금의 동경에 막부를 세웠습니다. 당시 권위주의적인 막부시대의 엄중한 계급질서가 일본식 의사결정제도에 반영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11.
품의서라는 기안문서를 작성하여 그것을 윗사람에게 ‘어찌하오리까’하고 물어서 윗사람의 의중에 부합하도록 문서를 꾸며 결재를 받아야 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지배와 통제의 계급적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데 큰 공헌을 해왔습니다. 말하자면 일본식 군국주의 체제에 잘 들어맞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조직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데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품의서를 써서 윗사람에게 결재를 받는 의사결정방식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품의 제도를 일본어를 그대로 발음하여 영어로 Ringi-Seido라고 하기도 하고, 뜻으로 풀어서 upward referral system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자기책임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윗사람에게 떠넘기는 시스템이라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품의서라는 기안문서와 그것을 검토하여 결재하는 행위가 따로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에 대응되는 용어가 없습니다. 혹시 서양 언어를 아주 잘하는 분 중에서 품의서나 기안문서를 서양 언어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혹시 결재라는 용어의 서양 언어가 뭔지 아십니까?
물론 억지로 번역하자면 있긴 있습니다. 우리의 품의서라는 말에 대당 되는 용어는 아예 없고 기안문서는 그냥 draft 또는 memo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재를 굳이 비슷한 용어로 번역하자면 approval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draft, memo, approval과 같은 용어는 우리의 직장생활에서 사용되는 품의서나 기안문서, 결재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전혀 다른 의미라는 말입니다.
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품의 제도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 불합리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품의 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이 품의 제도라는 의사결정방식을 근본적으로 혁파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조직 내의 계급적 위계질서를 공고히 해주는 품의 제도를 걷어내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비지배적 자율(非支配的 自律)의 세계, 즉 누구로부터도 지배받지 않는 자율성이 가져다주는 생산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13.
품의 제도에 의한 의사결정 사회에서는, 피라미드형 조직구조의 아래에서 위로 승진하는 것이 직장생활의 목표가 됩니다. 학교든 정부든 일반 회사든 모두들 승진하는 일에 목을 맵니다. 우리에겐 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서독 연방은행 연수 중 놀란 것은, 연방은행 직원들은 승진하는 일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서로 승진하기 위해 극심한 경쟁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위로 올라갈수록 더 어렵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더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새로운 대안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굳이 승진에 목을 맬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승진하지 않는다고 해서 윗사람으로부터 지배와 통제, 억압과 착취를 당하지도 않습니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승진하지 않아도 모든 구성원들이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3.1.
그럼에도 그들은 조직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적게 일하면서 많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때때로 예의도 없고 무질서하고 게으른 것 같은데 매우 합리적인 질서가 조직 내면에 정립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매우 신비로운 현상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는지 깊이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적게 일하면서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는 비결을 학습해야...
13.2.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는 독일인들에 비해 1년에 700~800 시간 가량 더 일합니다. 우리가 1년에 대략 4~5개월 정도 더 일한다는 말입니다. 엄청난 양입니다. 잘 살기 위해 그렇게 많이 일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우리 사회를 ‘헬조선’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뭔가 잘못되었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죠. 이런 원인은 더 적게 일하고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서도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이 신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장 자본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을 서로 치열하게 경쟁시켜야 잘 살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인간과 조직과 세계에 대하여 저급하고 편향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제 이 얘기를 조금씩 하려고 합니다.
14.
독일의 민주적인 의사결정방식과는 달리, 한국식 피라미드형 계급구조는 위로 올라갈수록 부하들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으며 더 많은 보상과 특혜와 특권이 주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조직 내에 더 공고한 계급질서를 만듭니다. 조직 피라미드의 정점을 차지하게 되면 절대적인 권력이 주어집니다. 그 아래 있는 사람들은 정점에 있는 한 사람에게만 잘 보이면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서로 출세 경쟁을 하기 위해 다양한 아첨의 기술과 충성심을 드러내는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그 어떤 나라보다도 출세 경쟁, 아첨 경쟁, 충성심 경쟁이 심한 사회로 변질된 데는 품의 제도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하느냐에 의해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이 곧 평가의 최우선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15.
오늘날 청와대를 보십시오. 그 속에는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과 공정한 직무수행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아첨과 충성심 경쟁만 있습니다. 그 충성 경쟁에서 도태되면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어떤 합리성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총리와 장관들을 보십시오.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어쩌면 저렇게도 멍청하고 등신 같은지 의아한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국회에 불려 와 한번 창피를 당하면 자신의 출세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것이 절대 권력자에게 충성심을 보이는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토론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아니 토론 자체를 할 줄 모릅니다. 그들은 그저 아첨과 충성의 기술자들이 되어 출세하는 것을 목표로 살아왔기 때문에 합리적인 토론과 합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입니다.
16.
이런 현상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원인은 아닙니다. 그저 우리 앞에 드러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비참한 조직 현상일 뿐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이런 잘못된 현상을 고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17.
왜 그럴까요? 인간과 조직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총체적 변혁이 일어나지 않으면 어떤 대안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시스템적으로 접근해서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진실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몇 주에 걸쳐서 이런 조직 현상을 시스템적으로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