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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Sep 17. 2015

타인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

인간의 실존성은 Human Resource라는 용어를 거부한다

타인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

인간의 실존성은 Human Resource라는 용어를 거부한다



2015-09-16(수) 


하루 종일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제조그룹장들과 "리더십 에센스" 워크숍을 했다. 언제나처럼 내 메시지는 명확하다. 인간은 자원이 아니다. 인간은 영혼의 능력을 발휘하는 실존적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진선미(眞善美)를 분별함으로써 모든 인간에게 고유한 실존의 힘을 드러내는 존재다. 이 우주에서 자신의 언어로 세계를 마음껏 상징하며, 대상물에 대해 자유롭게 의미, 가치, 목적을 부여는 유일한 생명체가 바로 인간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동물적 본능을 뚫고 미지의 세계, 이상적 세계, 초월적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실존적으로 평등하다. 


이것은 내가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서유럽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사유해온 결과다. 워크숍 참석자들에게, 이런 내용을 키에르케고르에서부터 사르트르를 거쳐 하이데거와 가다머에 이르기까지 일맥상통하게 전달해주면, 그 내용을 잘 이해한다.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를 적어도 고등학교에서는 배웠어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전혀 가르치지 않고 있으니, 내가 나서서 가르치는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내용의 핵심은,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자원(resource)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나 자원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쉽게 풀어주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그동안 어려운 개념을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한 덕분이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서강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의 MBA과정에서 리더십개발론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서유럽의 지성인들이 추구해왔던 기본적인 사상과 철학을 학생들이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유를 알았다. 철학과를 졸업한 학생도 철학적 사유물들이 현실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철학 따로 현실 따로 놀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론과 실제의 따로국밥 현상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라는 것도 알았다. 


사상과 철학은 우리 현실과 괴리된 어떤 고담준론이나 탁상이론이 아니다. 사상과 철학은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집요한 사유의 결과물이다. 사상과 철학이야말로 우리 현실을 직접적으로 구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만 하면 내 강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사상과 철학의 차이가 현실에서 어떤 차이로 나타나는지 보여주면 쉽게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워크숍에서는 오전 내내 이 사실을 흥미진진하게 토의한다.  오전 세션을 통해 리더십이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타인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오후에는 그런 사상과 철학이 현실세계의 조직운영에서 어떻게 시스템화(systematization)되는지 알려주면 아주 쉽게 이해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얼마나 천박한 사상과 철학에 기초하여 구조화되었는지도 함께 이해하게 된다.


오전 세션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키에르케고르의 이 선언을 이해하면 워크숍의 반은 이해한 것이다. "인간은 관계가 자기 자신에게 관계함으로써 거기서 타자와 관계하는 관계다."
사르트르에게서 실존이란, 모든 존재의 근거가 되는 무(無, nothingness)다. "무는 어떠한 제약도 명령도 없는 절대 자유를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실존은 곧 무다"
위대한 해석학자 가다머는 우리에게 놀이의 관계가 무엇인지 명확히 말해준다. "놀이는 모든 계급적 질서를 배격해야 성립한다. 수평관계에서만 관계(놀이)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신인데, 그 정신의 핵심은 자기(self)라는 것이다. 그 자기가 곧 실존이요. 영혼이요, 생명이다. 그 자기는 관계를 통해서만 실현된다. 


그러나 오늘날 주류경영학에서는 인사를 Human Resource라고 부른다. 20세기에 생겨난 것 중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최악의 용어가 바로 Human Resource다. 미국인들도 20세기 전반에는 인사(人事, personnel)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가 80년대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면서 인사(人事, personnel)가 Human Resource라는 용어로 대체되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인사 관련 단체인 ASPA(American Society for Personnel Administration)가 1989년 자신들의 이름을 아예 SHRM(Society for Human Resource Management)으로 바꿨다. 인간을 자원으로 부려먹겠다는 신념은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그래서 이제는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이 자원(resource)라고 천연덕스럽게 부른다.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오래전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인적자원개발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강연한 적이 있다. 강연 시간의 반을 할애해서 인적자원이라는 용어의 비인간성에 대해 설명했다. 아울러 사범대학은 교사들을 양성하는 기관인데 부설연구소에 인적자원이라는 용어를 붙인 교육학 교수들이 과연 제정신인가에 대해 심각한 어조로 비판했다. 나를 초청한 교수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이름을 바꿨는지 그 연구소 이름은 사라졌다.


* Institute of Human Resource Development, 정식 명칭은 확실치 않으나 Human Resource(인적자원)가 중간에 들어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갤러리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의 정진 과장이 찍어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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