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신들린 점쟁이들에게 사로잡힌 자들
- 그리고 신들린 점쟁이들에게 사로잡힌 자들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지난 칼럼에서는 백선하 교수의 사망진단서 사건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사건의 실체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드러나는 서울대병원의 행태가 너무나 꼴같잖아서 이번 칼럼에도 이 주제를 한 번 더 다루어보겠습니다.
2.
3년 반 전, 그러니까 2013년 봄이었을 겁니다. 시인이자 작가인 김정란 (상지대)교수를 처음 만났을 때, 김 교수는 “숨을 쉴 수가 없다, 숨 좀 쉴 수 있게 해달라.”라는 말을 연신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습니다. 시인처럼 민감하지도 않은 제가 그 말의 뜻을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 청와대에서 쏟아져 나오는 똥물이 온 천지 사방에 퍼져서 이제는 도저히 숨을 쉴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3.
서울대병원 교수들이라면, 이 시대 지식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완전히 똥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는 느낌,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숨이 막히고 어떤 희망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4.
백남기 농민의 치료과정에 나타난 모든 기록은 ‘외인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인을 ‘병사’로 만들기 위해 서울대병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조작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5.
우선 주치의 백선하 교수를 봅시다. 백남기 농민을 수술할 때부터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때까지 의사로서 합리적으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한둘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최초로 진료한 신경외과 조원상 교수는 뇌동맥류 및 뇌출혈 전문가로서 수술을 해도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점, 그러나 등산복 차림의 백선하 교수가 갑자기 나타나서 수술을 감행했다는 점(이때는 백 교수가 신경외과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금년 7월에 과장으로 승진했으니까요. 누군가로부터 정보를 받고 백 교수가 백남기 환자를 맡게 되었을 것입니다), 서울대병원이 외상성 출혈로 11번이나 보험급여를 청구했다는 점, 백 교수가 주치의로서 3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환자를 돌보기 위해 중환자실에 단 두 번밖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 백 교수가 정치적 사건이라서 의사소견서를 써줄 수 없다고 했다는 점, 사망 직후 퇴원 기록에도 외상성이라는 진단명을 쓰고 백선하가 직접 서명까지 했다는 점 등 수많은 증거들은 ‘외인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6.
백선하 교수의 행동을 종합해보면, 누군가로부터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와 수술한 후 사실상 연명치료를 해온 것뿐입니다. ‘외인사’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증거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망진단서에는 그의 소신에 따라 ‘병사’로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소신이란 권력에 굴종하면서 출세하려는 소신으로 보입니다. 말도 안 되는 행태였지만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러나 백선하 교수가 사망원인을 ‘병사’로 판단한 이유를 설명하는데서 이 사람의 정신세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7.
백선하는 가족들이 원하지 않아서 적극적인 치료를 못했기 때문에 사망원인을 ‘병사’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최선의 치료를 시행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했다면 사망원인을 “외인사”로 표기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이런 설명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것인지 생각해봅시다.
7.1.
사망원인이 ‘병사’인 이유는 가족의 반대로 자신이 충분히 치료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이 말의 의미는, 백선하가 시키는 대로 치료만 제대로 했으면 언젠가는 살아났을 텐데, 가족들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 백남기 농민이 스스로 ‘자연사’ 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되는 것입니다.
7.2.
다른 말로 해봅시다. 백선하는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실력이 있는 사람이므로 자신의 치료를 충분히 받았음에도 사망했다면, 자신이 모르는 어떤 심한 외상으로 사망했을 것이므로 ‘외인사’가 된다는 주장입니다. 백선하는 자신의 의술을 반신반인의 경지로 올려놓고 있는 셈입니다. 백선하는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지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7.3.
백선하 교수의 이런 주장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저는 영화배우 황정민이 무속인으로 나오는 『곡성』이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늘 그렇듯이, 무당은 반신반인의 상태가 되어 의뢰인에게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리고는 돈을 뜯어냅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둘러댑니다.
8.
21세기 개명한 세상에서 서울대병원뿐만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서 마치 영화 『곡성』의 무당들이 해괴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9.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과 그의 측근들은 입학과 학점에 관한 학칙과 규정들을 바꾸었는데, 오비이락 격으로 최순실의 딸이 혜택을 보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전경련 부회장 이승철이라는 자는, 대기업들이 문화융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순식간에 수백억 원을 모아 재단을 세웠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이들은 신들린 사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정상적인 합리적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신들린 말들을 지껄이고 있습니다.
이제, 서울대병원 부원장인 내과 전문의 신찬수 교수의 경우를 봅시다. 신찬수는 주치의가 아님에도 백남기 농민의 사망 직전에 승압제를 처방했습니다. 어떻게든지 연명치료를 계속하려고 그렇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공의들은 자신의 의무기록에다 신찬수 부원장에게 보고하고 지시받았음을 여러 차례 기록해 두었습니다. 전공의들도 이 사건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공의들이 바보가 아니죠. 서울대병원이라는 조직이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10.
자 이제, 서울대병원 원장인 서창석 교수를 봅시다. 그는 산부인과 전문의입니다. 국회의 국정감사장(2016-10-11)에서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원인은, 자신의 지시로 만들어진 특별조사위원회의 견해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윤성 위원장의 견해인 '외인사'와 같다는 것입니다. 서창석 교수는 사망진단서 작성지침을 어긴 백선하 교수의 ‘병사’ 기록이 틀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주치의 백선하 교수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뭔 얘깁니까? ‘병사’라는 기록은 틀렸지만, ‘병사’라는 의견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해괴한 논리는 영화 『곡성』에서 무당들이 서로 힘겨루기를 할 때 나오는 논리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1961년생인 서창석은 금년 2월 대통령 주치의를 사퇴하고 지난 5월에 서울대병원 원장으로 취임했습니다. 1962년생인 신찬수는 지난 6월에 부원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초고속 승진이라고 합니다. 1963년생인 백선하는 지난 7월에 신경외과 과장으로 승진했습니다. 모두 다 서울대 의대 동창들입니다. 이 세 사람은 서로 아주 친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냥 그렇다는 얘깁니다.
11.
백남기 농민은, 의사가 아니어도, 누가 봐도 외인사임이 분명합니다. 부검을 해야 알 수 있는 사안도 아닙니다. 강력한 물대포를 맞고 통나무 쓰러지듯이 쓰러져 뇌출혈로 사망한 것이 분명함에도 의학지식과 소신을 내세워 속이려드는 인간들을 볼 때, 어쩌다 지식인 집단이 이렇게까지 망가졌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잘못된 것을 시스템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을 텐데도, 이렇게 불의한 일에 지식인들이 침묵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 이 얘기를 잠시 하려고 합니다.
12.
18세기 프로이센이 낳은 위대한 철학자 칸트는, 인간에게 순수한 이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순수한 이성이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 무엇이 아름답고 추한지를 분별할 수 있는 판단능력입니다. 이것을 아 프리오리(a priori)한 능력이라고 합니다. 아 프리오리는 경험 이전의, 경험과 독립적인, 또는 경험을 넘어선, 초월적인 또는 선험적인...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경험하지 않아도 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경험하지 않아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냥 알 수 있는 종합판단능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오늘날 실증 과학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에는 선험적으로 어떤 사태의 진선미를 파악할 수 있는 순수한 이성이 본래부터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13.
칸트의 관념론을 상식 수준에서 아주 쉽게 설명해봅시다. 인간은 양심이라는 게 있어서 이것이 순수이성을 자극하면 어떤 사태의 옳고 그름을 곧바로 판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백선하의 사망진단서 사건은 의학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의 양심이 작동하느냐 작동하지 않느냐의 아 프리오리한 사건입니다. 사망진단서를 ‘병사’로 만든 인간들은 양심을 버린 자들입니다.
14.
이들은 왜 양심을 버렸을까요? 이토록 사회적 여파가 큰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 역사적 환경적 심층적 원인이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 원인을 일제강점기와 조선시대까지 끌고 갈 수 있겠지만, 거기까진 역사학자들의 몫이라 치고, 우리가 얼마 전에 겪었던 주요 사건만 연상해 봐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15.
이명박과 박근혜의 행적만 봐도 됩니다. 이명박이 국가를 수익모델로 이용해먹었다는 사실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저 비리와 불법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기자들도 이명박의 비리와 불법의 꼬투리를 찾아내고 있는 데, 검찰은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특별조사위원회가 발족되었지만, 고위 관료들이 조직적으로 훼방하는 바람에 제대로 활동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6.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전두환과 박정희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두환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은 반란수괴죄, 내란수괴죄, 내란목적살인죄 등 12가지의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지른 자입니다. 그의 죄는 문민정부 시절 대법원 전원일치 판결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지 못했습니다. 전두환은 아직도 숨겨놓은 비자금으로 떵떵거리며 버젓이 살고 있습니다.
17.
박정희는 어떻습니까? 박정희는 1961년 쿠데타를 일으킨 후, 논두렁에서 농민들과 막걸리를 마시는 소탈한 지도자 이미지로 군림해왔습니다. 국민을 완전히 속인 것입니다. 1979년 10월 26일 금요일 저녁, 박정희는 늘 그랬던 것처럼 그날도 여대생과 연예인을 불러놓고 시바스 리갈이라는 양주로 판을 벌이다가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청와대 금고에는 얼마가 남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전두환은 6억 원을 박근혜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당시 그 돈은 강남의 은마아파트 30채를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고 합니다.
18.
그 후, 기업체 임원들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룸살롱에서 여자들을 끼고 시바스 리갈을 마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룸살롱의 부흥시대가 그렇게 열렸습니다. 가진 자들과 공직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청와대를 보고 배웠습니다. 이렇게 양심을 버렸습니다.
19.
그런데, 그의 딸 박근혜는 또다시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오전, 세월호가 뒤집어져 수백 명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하루 종일 7시간 동안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비서들도 모르고 심지어 비서실장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를 휘감고 있는 정신적 풍토입니다.
20.
우주의 기운을 받고 있는 청와대와 신들린 점쟁이들이 똥물을 쏟아붓고 있는데 서울대병원이라고 어찌 샘물처럼 맑은 상태이겠습니까? 직무유기와 직무태만, 위증과 증거조작, 생떼 쓰기와 같은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21.
이들은 박근혜와 박정희를 보고, 이명박과 전두환을 보고 배운 것입니다.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와 같은 인간들의 불법, 부정부패, 비리와 반인륜적인 행위에 대해 발본색원하여 처벌하지 않은 우리가 지금 그 죗값을 이렇게 치르고 있습니다.
22.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그 죗값을 물을 수 있을까요? 지나간 잘못에 대해 죗값을 톡톡히 물어온 유럽인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했을까요? 그것은 조직론적 사고였습니다. 조직론적 사고는, 지난 칼럼에서 잠시 언급했던 각 직무의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 즉 그 직무가 완수해야 하는 성과책임 또는 그 과정을 투명하게 문서화하여 드러내는 설명책임을 각 직무담당자에게 알려줍니다. 조직론적 사고는 범죄행위에 대하여 죗값을 치르게 하는 사회를 만듭니다. 유럽인들은 끊임없이 어떻게 조직을 설계해야 인간에게 내재된 순수한 이성이 작동하는지를 고민해왔습니다. 우리는 이런 고민을 거의 하지 않은 채 권력을 가진 자의 일방적인 지배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습니다. 이 차이가 오늘날과 같은 ‘헬조선’을 만들었습니다.
조직론에 관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칼럼의 흐름에 따라 프로이센의 몰트케 장군에게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상적 배경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후기)
이 칼럼을 내고 나서 그 후에 정봉주 전 의원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전국구)105.백남기농민, 그들의 다섯가지 거짓말!가 팟빵에 게시되었습니다. 아래 링크를 들으시면 전 과정을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70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