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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Oct 22. 2016

철학적 에너지와 조직론적 사고에 대하여

철학이 없는 사회엔 박근혜, 최순실 같은 인간들이 설친다

2016-10-22(토) 김용민 브리핑에 나간 [최동석 칼럼]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9938
[1022토①]  朴 뒤늦게 미르·K 언급한데는 숨은 꼼수있다



철학적 에너지와 조직론적 사고에 대하여

2016-10-22(토)_철학이 없는 사회엔 박근혜, 최순실 같은 인간들이 설친다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백남기 농민은 누가 봐도 강력한 물대포에 의해 사망한 것이 명백합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은 조직적으로 사망진단서를 허위로 발부했습니다. 저 청와대라는 권력의 뒷배를 믿는 공직자들과 그 비선에 끈을 대고 있는 자들은 안하무인의 비양심적이고도 불법적인 행동을 저렇게 버젓이 벌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두 차례의 칼럼을 실었습니다.     


2.

최근 매우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청와대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은 대기업으로부터 순식간에 수백억 원을 뜯어내 재단을 세웠습니다. 그녀는 개인회사를 세워 그 재단의 수익을 빼내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최순실의 딸은 이화여대의 입학에서부터 학점 취득까지 온갖 특혜를 받았습니다. 학생들과 교수들이 저항하자 최경희 총장은 일단 물러났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학생들과 교수들이 연대하여 저항하면 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승리가 이 나라 곳곳에서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3.

박정희는 과거 여자들을 끼고 술판을 벌이다 결국은 총에 맞아 죽었는데, 박근혜는 지금 점쟁이들을 끼고 굿판을 벌이다 나라를 이 지경까지 만든 것 같습니다. 이 칼럼은 저 불의한 권력과 지배층의 억압적 행태에 분연히 맞섰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4.

유럽의 19세기는 제국주의 시대였습니다. 프로이센의 군참모장이었던 헬무트 폰 몰트케 장군은 군대의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하위 단위조직과 개인에게 자율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역할과 책임을 부여했습니다. 군대에서조차 피라미드의 정점에 몰려 있던 권력을 해체하여 모든 구성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율적 주체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4.1.

말하자면 “분권화된 자율적인 조직”의 기초를 만들었고 불합리한 명령과 지시에 대해 반대할 수 있는 의무를 부여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독립된 개인으로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5.

이렇게 군대조직을 개혁했을 뿐 아니라 제후들이 소유했던 농노를 해방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자, 프로이센은 점차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유럽 제국들 간의 땅뺏기 전쟁의 우여곡절을 수없이 겪었지만, 결국은 계급적 질서를 무력화시키고 오늘날과 같이 평등한 사회, 합리적이고 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혁명적인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6.

19세기의 프로이센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제국의 지배층은 커다란 압력을 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변화를 택했습니다. 그 사회의 불합리성을 내려치는 도끼와 같은 사상과 철학에 큰 영향을 받은 민중의 충만한 에너지 때문이었습니다.      


7.

가장 위력적인 사상과 철학은 루터와 칼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전통을 이어받은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의 사유에 영향을 받은 민중은 시민적 교양을 쌓았고 그 에너지를 축적시켜 시민혁명을 반복적으로 일으켰습니다. 평등한 사회구조와 효율적인 조직이 되도록 혁명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8.

이렇게 되기까지 유럽인들은 아주 오랫동안, 그러니까 구약성서에 나온 이야기에 따라 조직을 매우 원시적인 방식으로 설계하고 운영해왔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알 수 없으나,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대략 기원전 15세기경에 있었던 얘기라고 합니다.     


8.1.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해서 홍해를 건너 시나이 반도에 도착합니다.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어린아이와 여자들까지 포함하면 대략 2백만 명쯤 된다고 합니다. 시나이 반도 황량한 땅에 도착해서 보니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모세는 하루 종일 그걸 심판해 주느라 지쳐있었습니다. 이때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찾아와서 자신의 사위인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합니다.      


9.

“능력 있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을 만하며 탐욕스럽지 않은 사람들을 뽑아서 백성 위에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우고 그들이 백성을 위해 항상 재판하도록 하라.” (출애굽기 18장) 이렇게 자문해주었습니다. 쉽고 가벼운 문제들은 그들이 스스로 처리하되 중요한 문제만 모세가 감당하도록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10.

성서에 보면, 모세는 이드로의 충고대로 실행했다고 나옵니다. 피라미드의 정점에 모세가 있고 그 아래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이라는 다섯 개의 계급으로 된 피라미드형 조직을 운영했습니다. 조직론 입장에서 보면 유럽 문명은 수천 년을 이런 식으로 신분구조와 계급질서에 의해 조직을 운영해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원시적인 모델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11.

그래서 모세의 조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가나안까지 가는 데 열흘이면 충분한데도 4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모세의 조직이 점점 엉망진창이 되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통해 다스리려고 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그 십계명을 풀어낸 각종 법률들을 만들어 백성들을 규제했지만 그 법률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가능했습니다. 성범죄뿐만 아니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뇌물수수와 같은 부정부패가 심화되었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횡포가 심해졌습니다. 당시에도, 그러니까 기원전 15세기에 소위 김영란법을 제정해서 실행했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11.1.

아시다시피, 이렇게 유럽의 역사는 피라미드 구조 상층부에 있는 권력자들의 욕망을 위해 민중이 희생되어온 역사였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지배하는 계급이 지배받는 계급을 명령하고 통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원시적인 조직운영방식에 대해 수천 년 동안 반성적 성찰은 거의 없었습니다.      


12.

이런 모세의 피라미드형 조직구조가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는 견해는, 20세기의 위대한 경영사상가 로버트 그린리프(Robert Greenleaf, 1904~1990)에 의해 명백해졌습니다. 그는 평생을 대기업에서 일하는 동안 업무수행과정과 조직의 작동원리를 관찰해서 '서번트 리더십'이라는 개념을 창안했고 그 개념은 책으로도 출판되었습니다. 돌아가신 후에도 후학들이 재단을 세워 인간존중의 경영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린리프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피라미드형 조직구조는 지배와 통제체제를 구축하여 명령과 복종을 요구하며 결국에는 억압과 착취가 가능한 조직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조직은 권력자의 욕망 충족의 도구로 전락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렇지 않습니까? 언론보도에 의하면, 박근혜는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쥔 채 점쟁이들에 둘러싸여 있다고 합니다. 이런 샤머니즘에 기초한 정부조직의 의사결정은 국가를 완전히 초토화시켰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범죄행위를 아무도 막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원시적인 조직론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13.

피라미드 구조가 그렇게 효율적인 것이었다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어째서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헤맸냐는 것입니다. 그린리프는 이것이 바로 피라미드형 수직구조의 결정적 폐해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이런 철학을 과감하게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유럽인들은 꾸준히 수직구조와 계급질서의 폐해를 지적해왔기 때문입니다.     


14.

우선 보겠습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는 사상적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직자 계급이 민중을 지배하고 통제하던 세계를 향하여 자신의 도끼로 호되게 내리찍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곧 제사장이므로 속죄를 위해 성직자 계급이 따로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종교혁명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성직자 없이 신과의 일대일 상호작용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혁명적인 루터의 사상과 철학은 조직론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서 동등하며 다만 사회적 역할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계급주의적 조직체계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15.

놀랍지 않습니까? 500년 전에 이미 그런 생각을 해냈습니다. 루터의 위대함은 라틴어를 할 줄 모르는 민중을 위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다는 것입니다. 민중의 혁명적 에너지를 충만케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017년, 내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됩니다. 종교개혁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조직은 수평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류에게 알려주었습니다.      


16.

그리고 한 세대 후,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직설계와 조직운영의 핵심인 보충의 원리를 소개했습니다. 교회 내에는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는데, 부유한 사람이 자립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을 보충해주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17.

그런데 칼뱅은 이 가르침을 교회 조직들 간의 협력체계로 승화시켰습니다. 부자교회와 가난한 교회가 뒤섞여 있을 때 역할이 더 큰 교회 연합체와 같은 조직이 있다면, 그 연합조직은 당연히 자립할 수 없는 교회를 지원해주도록 하는 보충의 원리(subsidiarity principle)를 설파했습니다. 지배의 원리가 아닌 이 보충의 원리는 오늘날 조직설계와 조직운영의 핵심원리이자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공리가 되었습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로 나누어진 경우, 중앙정부는 반드시 보충의 원리에 따라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미국이나 독일과 같은 연방국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연합(EU)과 같은 초국가조직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보충의 원리였습니다.

조직론 입장에서 보면, 이런 피라미드 구조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도록 강력하게 자극한 철학자가 바로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였습니다. 그는 자율적인 주체로서의 개인이 인류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게 했기 때문입니다. 개별적으로 생각하고 개별적으로 의심하는 ‘나’라는 주체적 존재가 없다면 이 세계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이 세계도 의미를 갖게 됩니다. 여기에는 어떤 권력이나 지위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데카르트의 철학적 사유는, 마치 커다란 도끼가 널빤지를 내려찍는 것처럼 이 세상을 내려침으로써 그때까지 모든 것을 신의 계시와 섭리로만 해석하던 중세의 정신세계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 냈습니다.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신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개인적이고 주체적인 이성 작용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했습니다. 세상은 혁명적으로 뒤집어졌습니다. 문예 혁명과 더불어 과학혁명에 부채질을 했기 때문입니다.


18.

이런 조직론의 기본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시어머니처럼 지방정부에게 시시콜콜 이래라 저래자 간섭하고 통제하고 위협합니다. 지방정부가 스스로 알아서 자율적으로 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렇게 한 것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조직론의 원칙입니다. 현재 우리 헌법도 그런 원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19.

지방정부가 혼자 알아서 할 수 없는 국방, 외교, 환경, 교통 같은 업무를 중앙정부가 맡아서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중앙에서 모든 것을 틀어쥐고 통제하려는 저 원시적인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정리해보겠습니다. 마틴 루터에 의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인데, 그중에도 부족한 사람을 서로 돕도록 했습니다. 장 칼뱅에 의해 그런 인간들이 모인 조직들 간에도 동일한 보충의 원리가 작동해야 하며, 이것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공리로 정립되었습니다. 이러한 합리적인 조직이론에 기대어 칸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인간에게는 순수한 종합판단능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치밀한 논리로 검토했습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순수한 사변 이성, 순수한 실천이성, 순수한 판단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인간은 외부의 어떤 지배와 통제, 명령과 억압이 없이도 스스로 이 세계에 대한 종합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스스로 자신의 사유와 행동에 대해 책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류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은 또다시 커다란 도끼가 되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든 이들을 내려쳤습니다. 억압과 착취를 일삼던 이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고 그런 세력들에게는 커다란 균열이 생겼습니다. 그 후, 이런 균열에 쐐기를 박은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칸트와 헤겔의 사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칼 마르크스에게, 니체에게, 그리고 장폴 사르트르에게, 마틴 하이데거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들의 철학적 사유는 그 사회에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폭압적인 자들을 마치 도끼로 내려치듯이 찍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유럽 사회는 이렇게 인간과 조직에 관해 점차 개명한 상태로 나아갔습니다. 이런 사상과 철학이 어떻게 현대 조직론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차차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9세기 프로이센의 몰트케 장군은 군대를 분권화된 자율조직의 개념으로 개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몰트케가 앞선 철학자들의 사유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사상적 기조와 정신문화를 몰트케 자신도 어느 정도 체감하고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그래서 군대에서도 현장지휘관과 병사들에게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행동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과감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미 19세기 중반에 군대 개혁을 위해 이런 혁명적인 생각을 했었던 것입니다.


20.

지금 21세기, 이 개명한 세상에서 아직도 품의제도로 상명하복의 굳건한 쇠사슬에 사람들을 묶어 놓았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정신문화를 썩어빠진 상태로 떨어뜨렸지만, 어찌해야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서양사상을 공부하고 이것을 우리 사회에 무수히 주입해왔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 사상은 우리 자신의 정직한 반성적 성찰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그런 반성적 성찰로 나아가게 하는 위대한 사상이 전혀 없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라시대 원효 사상, 조선시대의 성리학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탁월한 사상과 철학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배층은 그것을 가지고 오히려 백성들을 더욱 억압하고 착취하는데 악용해왔습니다. 그런 사상과 철학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직론적 성찰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전통이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동학사상은 어떻습니까? 후천개벽과 인내천 사상,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이 탁월한 사상이야말로 조선 말기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 위대함 그 자체였습니다. 서학에 대항하여 동학이라고 불렀지만, 동학농민운동은 지배층의 압제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혁명을 일으킬만한 에너지를 충분히 응축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도 결국은 조직론적 사고의 결핍 때문이었습니다.


21.

우리 사회에 서양사상과 철학을 앵무새처럼 떠드는 철학 교수들은 수두룩하게 많지만 진정한 의미의 철학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의 말처럼) 우리 사회의 철학교수들은 대부분 비겁하고 옹졸한 자들입니다. 그저 직업이 철학교수인 사람들이죠. 이제 우리에겐 이 썩은 사회를 거대한 도끼로 내려찍을 수 있는 철학자가 필요합니다. 그런 철학이 있어야 저 부패한 사슬을 끊어내고 우리 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22.1.

유럽인들은 인간존중의 사상과 철학을 민중의 에너지로 응축시키고 조직론적 성찰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인간존중의 사상은 있었지만,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응축된 에너지도 만들어내지 못했고, 구체화된 조직론도 부족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인간존중의 사상과 철학에 근거한 에너지를 어떻게 축적하며 그것을 어떻게 조직론적으로 풀어가야 할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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