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2(토) 김용민 브리핑 토요판에 실린 [최동석 칼럼]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1112토①] 박근혜 7시간, 집무실이 아닌 자기 방에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지난 6월 영국의 브렉시트에 이어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바람에 세계인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2.
투표 전까지만 해도 힐러리 클린턴의 압승을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개표가 진행되면서 트럼프가 예상외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점차 절망 상태에 빠졌습니다. 최종 개표 결과가 나오자 언론은 트럼프에 대한 온갖 조롱과 비난을 쏟아내며 어떻게 이런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는지 보도했습니다.
3.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사건에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언론인들과 여론조사기관들이 민중의 상식과 너무나 동떨어진 정보를 수집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요? 영국과 미국의 지배층은 자신들의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
이 충격적인 사태를 분석하는 언론의 보도는 또다시 문제의 핵심과 본질을 비껴가고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백인 하층민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언론사와 정치분석가들의 결론입니다. 그리고는 트럼트는 개또라이다, 이제 미국은 큰일 났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미국의 종말이다, 라는 얘기를 합니다. 트럼프가 어떤 정책을 쓸 것인지 걱정하면서 이런저런 예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상위 1%의 입맛에 맞게 떠들고 있습니다.
5.
이 모든 분석은 지금 드러난 현상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전에 알지 못했던 어떤 원인을 찾아낸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이런 호들갑은 그동안 그들이 저질러 잘못된 행태와 잘못된 여론조작에 대한 알리바이일 뿐입니다.
6.
오늘은 이런 현상을 국가 조직론 차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이념으로서 철학 체계입니다. 시장경제를 이용하여 자본축적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철학이죠. 이 자본주의 철학을 실현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모형과 사민주의 모형입니다.
7.
우선 신자유주의 모형을 보겠습니다. 신자유주의란 기본적으로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원리를 추구하는 경쟁 패러다임입니다. 권력을 가진 강한 자들이 약자의 피를 빨아먹는 구조를 용인합니다. 영국과 미국이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영미식 자본주의 또는 앵글로색슨 모형이라고도 부릅니다.
8.
이런 나라들의 특징은 지난 30여 년 동안 중산층에 속했던 사람들 중에 상당 부분이 하층민으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이렇게 하층민으로 떨어지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지 못하고 있고,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이 불안한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어떤 처방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들은 그저 이렇게 된 상황에 분노할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또는 더 노력했어야 하는데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부끄럽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들은 이 분노와 부끄러움의 감정을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형편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속 시원한 사람에게 투표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미국판 이명박이라고 할 수 있는 트럼프에게 투표한 것입니다.
9.
브렉시트를 경험한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 1980년대 대처 총리가 추진했던 신자유주의 정책 이후, 중산층에 속해 있던 민중의 상당 부분이 하층민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이 점점 팍팍해지자 외국인 노동자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유럽연합에서 탈퇴하여 외국인 노동자들이 더 이상 영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투표한 것입니다. 문제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죠.
10.
브렉시트 결과에 따라 집권당인 보수당 정부가 유럽연합과 탈퇴 협상을 벌이려고 하자, 이번에는 고등법원에서 의회의 승인을 거치도록 판결했습니다. 가난한 민중들은 법원을 비난했습니다. 행정부는 이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는 당연히 법률적 판단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럽연합 탈퇴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영국인들은 브렉시트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오리무중에 빠졌습니다. 영국은 이렇게 엉망진창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영국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영국의 지배층은, 민중이 무엇을 불편해하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11.
왜 지배층이 민중의 마음을 읽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계급사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엘리트 계층으로 태어나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민중의 삶과는 괴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사회는 점점 견고한 피라미드형 계층구조를 만들었고, 계급 간의 이동도 점점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계급질서에 의해 국가조직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12.
브렉시트 책임을 지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사임했습니다. 그 후임으로 테레사 메이가 총리로 취임했습니다. 총리가 바뀌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옥스퍼드대학을 나와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정치인들입니다. 민중의 애환을 알 턱이 없습니다. 이렇게 계급적 질서에 의해 움직이는 영국은 결국 민중의 삶과는 동떨어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제 영국은 그저 과거의 영광으로 먹고사는 초라한 나라로 변해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13.
이제 우리나라를 봅시다. 영미식 앵글로색슨 모형을 모방한 한국도 이런 경쟁 패러다임을 추구해왔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최상위 0.1%가 모든 권력과 부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이 결탁하여 강고한 계급의 최상위층을 형성했습니다. 상위 1%는 최상위층 0.1%를 떠받치면서 그들로부터 부의 일부를 나누어 갖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차상위 10%는 상위 1%를 위한 머슴으로서 그들에게서 떨어지는 떡고물의 부스러기만 받아먹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차상위 10%마저도 이렇게 인간적인 삶을 사는 것이 버겁습니다. 나머지 90%는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생존도 불안한 상태에서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1:99라는 유행어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닙니다.
13.1.
우리나라 재벌 2,3세들을 봅시다. 아니 우병우, 홍만표, 진경준 같은 사람들을 봅시다. 그들이 처한 환경을 보면, 서민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와 국가가 정의롭지 못한 방향으로 구조화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공동체가 파괴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모형의 결정적인 폐해입니다.
14.
영국, 미국, 한국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공통점이 있지만, 다른 점도 있습니다. 공통점은 신자유주의 경쟁 패러다임을 추종한다는 점과 철저한 계층구조와 계급질서에 의해 사회가 운영된다는 점입니다.
15.
다른 점은 영국은 제국주의 시대에 전 세계에 퍼져있는 식민지 경영 때문에 피라미드 구조를 통해 서로 경쟁시키는 방법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16.
미국은 영국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피라미드형 계급구조를 지금까지 유지해왔습니다. 미국에서는, 독립하면서부터 백인이고 앵글로색슨족이면서 개신교도인 남성들이 최초의 헤게모니를 잡았습니다. 그들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계급질서에 따라 운영하는 것이 유리했습니다. 의료보험제도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소득이 많은 백인들이 보험료를 내서 가난한 흑인들을 치료해주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영리 보험회사들만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했고 가난한 민중은 그 혜택을 볼 수 없도록 했습니다. 철저한 계급구조로 사회를 운영했습니다.
17.
최상위 0.1%가 모든 것을 장악한 채, 흑인들이 최하층민을 구성하면서 피부 색깔에 따라 중간계층을 형성하도록 제도화해왔습니다. 미국을 아직도 자유와 평등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완전히 왜곡된 역사를 알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독립 당시부터 철저한 계층구조와 계급질서로 운영되어 온 나라입니다. 역사왜곡을 가장 심하게 하고 있는 나라가 아마도 미국일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이 칼럼의 본지가 아니므로 여기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18.
이제 우리나라를 봅시다. 우리 상황은 어떻습니까? 세계를 지배해본 적이 없고 흑인 노예를 가진 적도 없습니다. 영국이나 미국의 상황과 전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에 형성된 전근대적인 계급질서는 일제강점기에도 여전히 계속되었고, 한국전쟁을 치른 후에도 강고한 기득권층의 지배력은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해방 후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상위 1%에게 지속적으로 이권이 집중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최상위 0.1%와 상위 1%가 거의 모든 권력과 부를 거머쥐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라가 발전한 것이 아니라 마치 중세의 견고한 계급구조로 운영되었던 봉건사회로 퇴화된 모습이 되었습니다.
19.
많은 사람들은 이런 신자유주의식 경쟁 패러다임이 생산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향상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경쟁 패러다임은 2007년 결국 월스트리트의 금융시스템을 완전히 붕괴시켰습니다. 신자유주의 철학에 근거한 시스템이 내부 모순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 사건은 상위 1%에 부가 집중되었고, 중산층을 하층민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어느 한 나라에서만 예외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쟁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모든 나라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영국, 미국, 한국은 물론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미는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식 개혁이라는 폭격을 맞아 초토화된 이후,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빈부격차와 가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20.
이런 현상을 인사조직론의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조직을 피라미드형 계층구조로 설계하면, 그 계층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도록 동기부여하기 위해 당근을 주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성과연봉제입니다. 서로 경쟁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이 성과연봉제가 곧 쥐약이 되어, 구성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공동체 자체를 파괴합니다. 이것이 상위 1%만을 위한 미국식 경영학이었고, 이런 경영학을 우리나라 기업에 전파했습니다.
21.
이제, 사민주의 모형을 봅시다. 시민으로서 누리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바로 사민주의 모형입니다.
22.
그렇다고 시장경제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공동체를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만 시장경제를 활용합니다. 사민주의 모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협동조합입니다. 모든 조합원이 평등하면서도 자유롭게 조합의 운영에 참여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그런 의견들이 조합경영에 잘 반영되는 구조입니다. 협동조합은 절대로 계층구조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특권층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결정을 할 때라도, 항상 대화하고 토론하고 합의해 나가는 방식으로 일합니다.
22.1.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내부의 운영이 지배와 통제, 명령과 복종의 계층구조로 되어 있다면 그것은 협동조합이 아닙니다. 협동조합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착취구조일 뿐입니다. 협동조합의 운영원칙은 기본적으로 사민주의 정신과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협동조합이 발전한 나라에서는 국가도 협동조합처럼 운영됩니다. 그런 나라를 사민주의 철학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라고 합니다. 협동조합의 나라라고도 말합니다. 이런 나라들이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에서도 끄떡도 하지 않은 이유는 협동조합의 힘과 풀뿌리 민주주의 때문이었습니다.
23.
지배와 통제의 계층구조를 용납하지 않는 사민주의 모형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게르만 모형이 있고 스칸디나비아 모형이 있습니다. 사회주의 요소가 덜 가미된 게르만 모형은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이고, 사회주의 요소가 크게 가미된 스칸디나비아 모형은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같은 나라들입니다. 이 나라들은 지구 상에서 현재 가장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풍요롭고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24.
그래서 조직구조를 피라미드형 계층구조가 아니라 협동조합처럼 네트워크형 수평구조로 설계해야 합니다. 협동조합 구성원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에 공감하고,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동하도록 조직을 설계합니다. 저는 이러한 조직설계 방법론을 지금까지 가르쳐 왔고, 가는 곳마다 이런 수평조직을 위해 헌신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잘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25.
인간존중의 사상과 그 사상에 기반한 수평적인 조직설계를 시도하면 우리 문화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 문화를 바꾸자고 수평조직으로 설계하는 것이라고 알려주면, 조직문화는 잘 바뀌지 않는다고 하면서 수평구조를 불편해합니다. 수평구조를 시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상위 1%에 해당하는 사람들과는 어떠한 합리적 토론도 불가능합니다.
26.
그들은 또 다른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부당한 기득권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종북, 좌빨이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여론을 조작하여 하층민들이 자신들을 지지하도록 만들어왔습니다. 이들의 전략이 지금까지 먹혔습니다.
27.
상위 1%의 이런 교묘한 전략은 그동안 꾸준히 영국과 미국에서도 먹혔습니다. 그러나 브렉시트와 트럼프에서 보았듯이, 이런 꼼수가 먹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상위 1%가 장악하고 있는 언론이 호들갑을 떨면서 숨어있던 백인 하층민이 투표장 나왔다는 헛소리를 합니다. 왜 그들이 하층민으로 떨어졌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왜 백인 하층민이 분노와 부끄러움의 감정으로 트럼프라는 또라이에게 투표하게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28.
여기서 우리가 왜 혁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분명해졌습니다. 21세기의 혁명은 결코 피를 부르지 않습니다. 쿠데타는 피를 흘릴지 모르지만, 혁명은 그렇지 않습니다. 21세기에는 혁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광화문 네거리에는 단두대가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광화문에는 시민들이 모여서 헌법 정신을 무참히 짓밟은 박근혜를 퇴진시키려는 함성과 촛불이 있을 뿐입니다. 혁명이란, 시민들의 의사를 무시해왔던 권력자들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혁명입니다. 이 혁명을 두려워하는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박근혜와 공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인들은 그런 혁명을 수없이 경험했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허튼수작을 부리면 언제나 혁명으로 그들을 끌어내렸습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오늘날과 같은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29.
우리도 그런 혁명의 경험이 계속 쌓여야 합니다. 1960년 4월 혁명과 1987년 6월 혁명에 이어 2016년 11월 혁명을 다시 민중의 힘으로 해내야 합니다.
1987년에 만든 헌법은, 잘 알다시피, 상위 1%의 불법적인 행태를 막을 수 없었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없는 헌법이었습니다. 저 낡은 헌법을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헌법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이제 혁명의 그날이 밝았습니다. 오늘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과 함께 혁명을 일으킵시다.
다음 시간에는 협동조합과 같은 네트워크형 수평구조로 조직을 설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