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0(토) 김용민 브리핑 토요판에 실린 [최동석 칼럼]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1210토①] "헌재, 1월말 '朴 아웃' 확정한다"… 그러면 4월 …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결국은 민중이 승리합니다. 역사는 늘 그렇게 발전해 왔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박근혜의 탄핵안을 가결했지만, 이 고삐를 늦추면 안 됩니다. 혁명은 이제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혁명에는 반드시 반혁명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박근혜와 그 일당은 혁명의 물결이 느슨해질 때, 반혁명의 기회를 노릴 것입니다.
2.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절대로 국회의원들 때문이 아닙니다. 6번의 촛불집회가 그들을 떨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국회의원들을 지켜보았지만, 그들에게 맡기면 안 된다는 사실만 확실해졌습니다.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나쁜 정치구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시스템과 그 구조입니다.
3.
우리는 현대사에서 항쟁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1960년 4·19의거, 80년 광주 5·18항쟁, 87년 6·10항쟁, 이 의거와 항쟁은 시민들의 작은 승리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혁명이라는 말을 붙이지 못하고 의거 또는 항쟁이라고 부릅니다. 혁명에 실패했다는 말이죠.
4.
왜 작은 승리로 끝나고 말았느냐?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저는 이렇게 봅니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시민들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소수에게만 정보가 전달되었을 뿐입니다. 이메일도,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었습니다. 정보를 가지고 있는 소수의 민중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보도블록을 뜯어서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화염병을 들고 싸워야 했습니다. 최루가스 때문에 물먹은 마스크를 쓰고 전투경찰과 대치해야 했습니다. 퇴근길에는 회사원들이 합세해서 길거리 전투를 벌이곤 했습니다. 거리는 험악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그 상황을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5.
촛불로 대항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이명박 시대부터 서서히 SNS를 통해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와 사정기관들의 민간인 사찰에 관한 정보가 거의 실시간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위 행동은 보도블록과 화염병에서 평화적인 촛불과 팻말로 대체되었습니다. 촛불과 팻말을 든 수많은 평화적인 민중이 화염병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저항운동이 되었습니다.
6.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시대가 되었습니다. IT혁명이 가져온 쾌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백만 명이 넘는 집회 후에도 오히려 거리는 더 깨끗해졌습니다. 시민의식은 지금의 구태 정치인들보다 훨씬 더 성숙했음이 분명합니다. 사실 언제나 시민들이 정치인들보다 더 성숙했습니다. 과거에는 일부 계층에서만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든 정보가 삽시간에 전국으로 공유되는 시대입니다. 정보만 투명하게 공유된다면, 우리 사회는 이렇게 합리적인 집단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시민의 집단지성이 발현되도록 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의 본질입니다. 주말마다 촛불을 들지 않아도 민중의 의사가 국가정책결정에 그대로 반영될 수 있는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조선일보와 TV조선에 밤낮 떠들어봐야 믿질 않습니다. 이 언론사들의 행태를 보십시오. 이들은 박근혜-최순실 사태의 공범들입니다. 박근혜를 대통령 시키기 위해 그렇게 싸고돌던 사람들이죠. 팟캐스트의 정보공유는 구독료를 내고 보는 구태 언론사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김용민 브리핑 하나만 보더라도 매일 적게는 120만, 많게는 200만 다운로드가 된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유료 구독자 129만 명 수준과 맞먹습니다. 상위 10개의 팟캐스트를 보면, 구태 언론사들과는 게임이 안 됩니다. 정보공유는 팟캐스트와 SNS가 압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조선일보와 TV조선은 야당 유력 대선후보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난하고 까댈 것입니다. 가장 세게 까이는 후보가 바로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은 언론으로서의 기본 사명을 잃어버린 이익집단에 불과합니다. 이들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옹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들의 농간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7.
그래서 이번 촛불집회로 시작된 혁명이 완성될 때까지 추호도 흐트러짐이 없어야 합니다. 반혁명 세력이 틈새를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의 탄핵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8.
그렇다면 우리 민중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정치인들은 헌법에서 정한 일정을 따르면 되지만, 우리 민중은 해야 할 일이 아직도 산적해 있습니다. 국가운영조직을 재설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에게 이것을 맡겨두면 안 됩니다. 그 이유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9.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프로이센의 위대한 철학자 칸트의 이성적 사유의 세계에서부터 헤겔, 니체,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독일의 사상과 철학은 결국 나치 정부의 히틀러와 제2차 세계대전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위대한 소설가 괴테에서부터 헤르만 헤세에 이르는 독일 문학의 정신은 결국 나치 정부의 히틀러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위대한 정신이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 정치인들은 사태를 그르치기 때문입니다. 늘 그래 왔습니다.
10.
그러나 독일인들은 전쟁이 끝난 후, 폐허 속에서 철저히 그리고 냉정하게 반성했습니다. 어떻게 독재정부가 들어서게 되었으며 어떻게 전쟁을 일으켰는지 진실로 성찰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설계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에서 출발한 기본법이었습니다. 이 칼럼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했던 바로 그 인간의 존엄성입니다. 독일의 기본법은 헌법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모든 국가권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습니다. 입법부는 물론, 행정부, 사법부 등 모든 국가권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수단이 되었습니다.
11.
이것은 칸트, 헤겔, 니체, 하이데거의 사유와 철학, 괴테와 헤세의 문학정신이 독일의 새로운 연방공화국에 녹아들어 갔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연방공화국은 과거의 구조나 시스템과는 완전히 그리고 철저하게 단절되었지만, 과거의 위대한 사상을 이어받아 혁명적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독일은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사상과 문학의 나라, 과학과 산업의 나라로 거듭난 것입니다.
12.
박근혜 탄핵국면에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조선 성리학이 그렇게 가르쳤던 선비정신은 결국 나라가 완전히 패망하기까지 고위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인내천과 후천개벽의 위대한 동학사상은 농민전쟁으로 끝났고, 혁명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박정희가 추구해왔던 대통령제의 권력구조와 시스템은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는커녕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데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결국 박정희가 부하의 총에 맞아 죽는 것으로 결말이 났습니다. 그 후, 또다시 전두환의 군부독재를 막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에 힘입어 87년 체제가 출범했습니다.
13.
하지만, 민중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집단지성의 지혜로 받아 낼 수 있는 국가조직을 설계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간접민주주의라는 의회제도는 협잡꾼이나 다를 바 없는 정치꾼들이 드글거리는 국회를 만들었습니다. 민중의 요구는 국회에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최상위 0.1%가 지배계급을 형성하고, 국가운영과 관련된 모든 이권을 장악해버렸습니다. 재벌과 정치인은 완전히 유착되었고, 민중의 삶은 피폐해졌습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노인빈곤율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돈이 너무 많아서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삼시 세 끼를 챙겨 먹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14.
몇 년 전 경험을 말씀드리면, 정부 산하기관인 교육 관련 어느 재단의 초청으로 자문할 때였습니다. 서울 강북지역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 교감선생님과 함께 점심을 먹다가 놀라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학교에서 가장 큰 이슈가 뭔지 물어보았습니다. “아이들 점심식비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 보조금과 자선단체의 기부금을 모금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의 30% 정도는 급식비를 낼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서울 일부 지역에 사는 고등학생들의 30%가 점심을 먹을 수 없단 말입니다. 시골은 어떻겠습니까?
15.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야 할 사람들이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요? 과연 이들이 민중의 아픔이 뭔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선거 때만 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처럼 떠들지만, 거리에는 정당들이 온갖 선전선동의 플래카드와 포스터를 붙이지만, 정치인들은 민중의 아픈 현실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재벌의 눈치만 보면서 그들의 하수인 노릇을 해왔습니다.
이토록 잘못 설계된 국가운영구조를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이 혁명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정치판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명심해야 합니다.
16.
첫째, 의회민주주의와 함께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해야 합니다. 민중의 의사가 정치판에 그대로 투영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의회가 민중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 의회의 결정에 대해 민중이 제동을 걸고 수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땅히 민중의 의사로 법률을 제정하고 개정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직접민주주의입니다. 지금은 SNS가 발달했기 때문에 직접민주주의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17.
의회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가 서로 균형을 잡아가는 민주주의가 효율적인 민주주의입니다. 국회의원들은 직접민주주의를 매우 싫어합니다. 나아가 두려워하기까지 합니다. 의원들이 결정 권한을 독점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국회의원들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지구 상에서 가장 풍요롭고, 가장 안전하며, 가장 창의적인 나라가 바로 스위스입니다. 스위스는 의회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가 공존하는 나라로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18.
둘째, 계급적 차별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민주주의 이념의 기본원리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강고한 계급질서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빈부 차이에 따른 계급질서는 그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암 덩어리입니다. 구성원들의 건전한 정신상태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계급구조와 계급질서가 강고하게 형성될 경우, 사회적 역동성이 줄어들고 국가의 경쟁력도 점차 상실하게 됩니다. 조선이 그래서 망한 것입니다. 오늘날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와 미국의 트럼프 사례를 보아도 분명해집니다. 이 두 나라는 계급질서로 사회가 운영되는 전형적인 나라들입니다. 새로운 민주공화국은 경제적 계급구조와 사회적 계급을 타파할 수 있도록 헌법과 법률을 만들어야 합니다.
19.
셋째, 다수제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합의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을 보십시오. 이 지구 상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들이 가장 풍요롭고 안정되어 있으며 경쟁력이 높습니다. 다수제 민주주의는 다수가 소수를 폭력적으로 억압하고 착취하는 행태를 반복할 뿐입니다. 합의되지 않으면 결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20.
넷째,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전환해야 합니다. 지방정부의 입법, 행정, 사법업무를 중앙정부로부터 어느 정도는 독립적으로 실행하는 준국가단위로 업무를 재조정해야 합니다. 지방정부는 독립된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소규모 정부단위로서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기에도 직접민주주의를 실행해야 합니다.
이 칼럼에서 계속 강조해온 것처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는 조직설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보충의 원리(principle of subsidiarity)가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보충의 원리란, 모든 일을 자율적으로 처리하되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천재지변과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에만 더 큰 단위인 중앙정부가 보충해주는 원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위아래의 계급관계가 아니라 서로 역할과 책임이 다른 수평관계일 뿐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조세제도의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중앙정부 관료들은 극도로 싫어합니다. 지방정부를 통제하는 것이 자신들의 기득권이기 때문입니다. 자율이 없는 곳에는 생산성도 창의성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21.
이런 개념들이 어째서 조직설계의 기본원리인지는 나중에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네 가지가 실천될 수 있어야 비로소 대한민국은 국가다운 국가로 변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조직설계의 원리들을 실현하려면 기득권 세력의 엄청난 반발과 저항에 부딪힐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시작한 탄핵이라는 작은 승리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의 만 분의 일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일제 부역자들, 독재 부역자들, 박근혜 부역자들은 일맥상통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옳고 그름이나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기득권과 이익만을 계산하여 행동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22.
탄핵이라는 작은 승리에 취하여 고삐를 늦추지 맙시다. 끝까지 정치인들을 감시해야 합니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허튼수작을 부리면 곧바로 응징하도록 합시다. 안철수, 박지원, 추미애, 우상호. 이런 자들은 박근혜 탄핵과정에서 촛불집회에 모인 숫자에 따라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얼마나 시민들을 헷갈리게 했는지 우리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의지하거나 믿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에게 찾아온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이 혁명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23.
경영학에서는 전략이 처음으로 먹혔을 때를, 말하자면 박근혜의 탄핵안 가결과 같은 것을 작은 승리(Quick Win 또는 Small Win)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오늘 광화문 광장에서 작은 승리를 자축할 수 있습니다. 더 큰 승리를 위해서 말입니다.
이 네 가지 원칙들이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설계할 때 반드시 지켜질 수 있도록 다음 시간에도 분권화된 자율적인 조직, 즉 DAO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