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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Jan 01. 2017

왜 권력이 문제란 말인가?

조직론이 없는 사회의 비참함을 넘어서려면

2016-12-31(토) 김용민 브리핑 토요판에 실린 [최동석 칼럼]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1231토① | 황교안 임명한 차관은 블랙리스트 총책


왜 권력이 문제란 말인가?

조직론이 없는 사회의 비참함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벌써 2016년 병신년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금년은 박근혜와 그 일당의 권력남용과 난동으로 국정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습니다.      


2.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력 현상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연구대상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이 권력 현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권력의 생성과정이 우리에게 투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권력에 대해 한 마디씩 하지 않은 학자가 없을 정도입니다. 권력 현상은 철학자와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사회학자와 심리학자들에게는 단골 메뉴였습니다. 명성 깨나 있는 학자들은 대개 한 마디씩 했습니다. 이들은 권력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과 언어로 표현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타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이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그 무엇을 권력이라고 이해했습니다.      


3.

그래서 저는 오늘 권력 현상을 경영학에서, 특히 인사조직론에서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간단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권력에 대해 말하지 않고 권력을 행사할 뿐입니다. 권력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권력이 없는 사람들이죠.      


4.

19세기 영국의 액튼 경은,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고 말했습니다. 권력은 왜 그렇게 부패하는 경향이 있는지, 그리고 그런 현상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5.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패의 문제는 곧 권력문제를 해결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나아가 권력문제는 기업 조직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합니다.      


6.

우선, 우리는 권력이 어떻게 생기는지 알아야 합니다. 권력은 어떤 사람이 어떤 특정한 직무를 담당할 때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그 직무담당자가 수행해야 할 업무권한이 크면 클수록 그에 따른 권력도 커집니다. 장관 직무의 권한보다는 대통령 직무의 권한이 더 크기 때문에 권력도 커집니다.      


7.

이렇게 공식적인 직무권한의 크기에 비례하여 권력이 들러붙어 있습니다. 공식적인 직무권한은 없더라도 권한이 있는 자와의 친소관계 따라 권력의 크기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또한 직무권한의 범위가 불분명할수록 권력이 확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공식적인 직무권한에 권력이 기생하는 셈입니다.     


8.

그러므로 권력이란 그 직무에 부여된 합법적인 권한에 기생하는 영향력을 말합니다. 그 직무에 부여된 공식적인 권한의 행사를 권력의 행사라고 보는 것은 올바른 관찰이 아닙니다. 공식적인 권한의 행사는 그 직무에 주어진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를 완수하기 위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이란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서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힘을 말합니다그러므로 권한과 권력은 동의어가 될 수 없습니다.      


9.

권한은 다시 공식적 권한과 비공식적 권한으로 구분됩니다. 공식적 권한이란 직무의 존재 목적인 어카운터빌리티, 즉 성과를 창출할 책임을 완수하기 위한 업무수행권한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범위를 넘어서는 권한 행사는 비공식적 권한 행사입니다. 비공식적인 권한 행사가 곧 권력이 되며, 이것이 불법적인 경우에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10.

그러므로 누군가가 권력을 행사했다는 말은 조직설계에 실패했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 헌법과 정부조직법에는 대통령 직무를 포함한 고위공직자들이 맡고 있는 직무에 공식적인 권한과 직무수행방법이 자세히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직자들의 권력행사가 늘 문제가 됩니다. 이것이 부정부패의 원인이 됩니다. 우리 법률체계에는 조직론적 사고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론에서 권력은 권한에 기생하는 암세포라고 가정한다. 권력을 제거해야 건강한 권한이 살아난다.


11.

독일 헌법과 비교해보겠습니다. 독일의 기본법 65조에는 총리의 권한과 일하는 방식에 대해 네 개의 문장으로 아주 명쾌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첫째, 총리 직무에는 국정운영과 관련하여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이것을 국정운영의 방향 설정 권한즉 Richtlinienkompetenz der Politik이라고 합니다.      


둘째, 이 국정운영방향에 따라 각 장관은 소관업무를 수행하되 총리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직접 명령·통제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소관업무의 원칙즉 Ressortprinzip이라고 합니다.      


셋째, 국정에 관한 사안들은 국무회의에서는 장관들이 합의에 의해 결정해야 하며, 총리는 자신의 견해가 다르더라고 장관들의 합의안에 굴복해야 합니다. 이것을 합의의 원칙즉 Kollegialprinzip이라고 합니다.      


넷째, 각 장관들의 업무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총리는 장관들이 연방정부의 직무수행규정을 지키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12.

이렇게 총리의 직무권한과 일하는 방식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총리 직무가 권력이 별로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총리 직무에는 총리의 원칙즉 Kanzlerprinzip이라는 게 별도로 있습니다. 이것은 국무회의에서 합의된 정책을 국민 앞에 직접 브리핑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이것은 정치인으로서 매우 소중한 특권입니다. 총리의 브리핑은 모든 언론과 시민들이 주목하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영향력을 더욱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10월 29일(토) 이 칼럼에서 한번 다루었습니다.)     


13.

이렇게 다시 한번, 독일 법률 사례를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는 것은, 우리나라에는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의 직무설계는 말할 것도 없고 직무 배분과 관련된 조직설계 개념 자체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 법률에는 조직론적 사고가 결핍되어 있습니다.      


14.

그래서 지금 정치인들이 논의하고 있는 개헌 이슈는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조직론적 개념이 없이는 대통령 중임제를 하든, 일본식 내각제나 독일식 내각제를 하든 크게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이전 헌법에 비해서 87년 체제로 헌법이 크게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박근혜의 행태는 박정희의 행태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15.

박근혜의 언행을 생각하면 너무나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입니다. 국가조직의 운영방식이 전근대적인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바다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얼굴에다 미용시술을 하고, 마약성분의 주사를 맞는 등 청와대에서 지속적으로 지랄발광을 했다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여대생과 연예인을 불러놓고 양주판을 벌이다 총 맞아 죽었습니다. 박근혜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16.

문제의 핵심은 누구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공직자의 직무권한, 즉 어카운터빌리티와 그 직무수행방식에 관하여 조직론적으로 명확한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것을 법률로 정비해야 합니다. 사람만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습니다.      


17.

국가조직의 운영이든 기업 조직의 운영이든 모든 조직운영에는 반드시 조직설계가 가장 밑바탕에 튼튼하게 깔려 있어야 합니다. 요즘 언론의 보도를 보면 절망합니다. 문재인, 이재명, 반기문, 박원순 등 특정인에 관심을 가지고 누가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에 에너지를 쏟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박근혜-최순실 사태에도 온통 범죄자 색출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물론 범죄자를 색출하여 처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가 정말 걱정해야 하는 것은 그들을 처벌하면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온전한 국가조직운영 시스템을 우리 스스로 설계하는 길입니다.      


18.

헌법도 여러 차례 바꾸고 사람도 수없이 바뀌었지만, 박정희의 행태와 똑같은 행태가 박근혜에게서 반복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또다시 사람을 바꿔봐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19.

그래서 저는 직무권한에 권력이 들어붙지 않는 방식으로, 직무와 조직을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인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권력은 쉽게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하기 때문입니다.      


0

독일의 공직자들은 우리 공직자들에 비해 부정부패를 덜 저지릅니다. 독일인들이 우리보다 더 도덕적이어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권한에 권력이 들러붙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부패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조직론을 배우는 것입니다.     


21.

독일인들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직무권한과 그 권한에 들러붙어 있는 권력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론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논쟁을 거쳤고 공직자들이 부패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직설계 방법을 마련해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철저하게 실천해왔습니다.      


22.

지금은 독일인들이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부합하는 새로운 조직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직무와 직무담당자조차 제대로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조직론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에 있습니다.      


23.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청와대 소위 문고리 3인방의 예가 아주 적절합니다. 그들은 대통령을 돕는 직무를 맡은 사람입니다. 대통령을 더 잘 돕기 위해 그리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친구들이나 지인에게 자문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공식적인 권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법은 아니니까요.     


24.

그러나 이들이 대통령과 가까운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장관을 포함한 행정부의 공직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불분명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김기춘, 우병우도 문고리 3인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이것이 조직설계가 잘못되었다는 증거입니다.     


25.

문고리 3인방이 공식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권한이 아니라 권력이 검찰 조직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이런 못된 관행이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조직론의 소중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6.

이제 2016년 혁명의 한 해가 끝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광화문 광장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혁명의 촛불행사가 있습니다. 오늘도 광화문에서 뵙겠습니다. 아무쪼록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다음 시간에는, 독일인들은 어떻게 해서 공직자들이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고 공식적인 권한 행사만 하게 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나아가 독일은 어떻게 그런 직무설계와 조직설계 방법론을 발전시켜 왔는지 저간의 사정을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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