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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Jan 07. 2017

직접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 분권화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설계를 위하여

2017-01-07(토) 김용민 브리핑 토요판에 실린 [최동석 칼럼]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0107토① | "특검, 삼성 이재용 반드시 구속한다"


직접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분권화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설계를 위하여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지난 시간에는 권력과 권한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권력관계가 아니라 직무에 부여된 합법적인 권한의 범위 내에서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조직설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것이 직접민주주의 제도입니다.     


2.

87년 체제의 헌법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권력과 권한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헌법 제1조 2항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권력이라는 용어가 헌법에는 단 한번 나오는데, 바로 이곳입니다. 권한에 들러붙어 있는 권력을 사용하는 것은 국민에게만 허용됩니다. 다른 그 누구도 권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권력이란 시민의사를 표출하는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가장 강력한 영향력입니다. 그러니까 권력은 시민에게만 주어지는 유일한 힘입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헌법정신의 가장 큰 문제점은, 헌법 제40조에 있습니다.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로 명시함으로써 시민의사를 오로지 국회의원이라는 대리인을 통해서만 행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표시를 의회민주주의의 테두리 안에 가두어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수백만 명이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입니다.      


4.

시민들이 가장 강력한 주권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에 명시해놓고도, 실제로는 그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막아놓았기 때문입니다.     


5.

“권한”이라는 용어는 헌법에 부칙을 포함하여 11번이 언급되지만, 그것은 모든 국가운영에 필요한 주요 직무 수행자들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하는 합법적 권리를 표현할 때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6.

이처럼 헌법에도 권력과 권한의 용어 사용이 명확히 구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공직자들은 권력과 권한의 개념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한심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그 권한에 들러붙어 있는 권력을 사유화함으로써 국가가 온통 부정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7.

저는 입법권을 국회로 제한한 헌법 조문 자체가 스스로 주권재민의 헌법정신을 거부하는 잘못된 조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민주주의를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8.

이전 칼럼에서 여러 차례 예를 들었습니다만, 스위스는 이 지구 상에서 가장 풍요롭고 안전하고 인간적인 삶을 향유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생산성과 창의성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합니다. 스위스는 의회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병행하는 나라입니다. 정치인들이 의회에서 시민의사에 반하는 입법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5만 명이 청원하면, 그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야 하며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 의회를 통과한 법률도 즉시 폐기됩니다. 이렇게 시민의사에 부합하지 않은 입법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9.

또한 정치인들이 시민의사에 부합하는 입법을 하지 않고 있을 경우에는,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 국민청원안을 정부에 제출할 수 있고, 정부는 이에 대해 가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정부가 국민청원안을 거절하는 경우에는 그 이유를 명시하여 시민들에게 공지해야 합니다. 지금도 연방정부 홈페이지에 가면 누구라도 그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10.

정부로부터 거부된 국민청원안은 다시 의회로 넘어가서 표결에 부쳐지고 의회에서도 부결되면 최종적으로 국민투표에 부쳐야 합니다. 여기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으면 정부는 무조건 그 청원안을 시행해야 합니다.      


11.

이렇듯 직접민주주의를 실행하면 정치인들이 시민의사를 무시하는 입법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국정운영과정에서 정치인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게 되고, 자유, 평등, 연대의 인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게 됩니다. 그러니 아무런 자원도 없는 스위스가 이 지구 상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12.

의회민주주의는 교통과 통신이 불편하던 19세기의 산물입니다. 21세기는 이미 모바일 시대가 되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연결되어 있는 시대입니다. 직접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모든 환경조건이 거의 완벽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주장이 대선주자들의 입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13.

저는 그동안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정치학자와 법률가들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의회민주주의 정치를 공부한 사람들이라서 안타깝게도 직접민주주의의 중요성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3.1.

집단지성은 소수 엘리트들의 의사보다 언제나 더 탁월한 지혜를 발휘합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집단지성이 발현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운영조직의 시스템적 설계가 중요해졌습니다.      


14.

그러면 유럽인들은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해왔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독일에서도 조직론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있어왔습니다. 이 조직 논쟁이 왜 벌어졌느냐 하면, 인간에 대한 관점이 근본적으로 엇갈렸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 선한 속성도 가지고 있지만 악한 속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교육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 이 때문에 논쟁을 많이 벌여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5.

어느 하나의 관점만이 옳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과학적 연구결과를 보아도 역시 어느 하나의 관점이 완벽하게 인간의 속성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자들마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모든 관점을 포괄하는 보편적인 조직설계이론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16.

인간에 대한 현대적 관점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인간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가르친다고 해서 본성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죠.

둘째, 인간에게는 선한 기질과 악한 기질이 공존한다는 사실입니다. 순전히 선한 사람도 없고 순전히 악한 사람도 없으며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어느 정도의 선과 악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죠. 

셋째, 처한 환경에 따라 선악의 기질은 조금씩 달리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환경조건을 정비함으로써 얼마든지 인간의 선악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죠.     


17.

인간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조직론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인간이 처한 환경조건을 정비함으로써 선한 본성은 드러나게 하고, 악한 본성은 억제될 수 있도록 조직을 설계하는 수많은 방법론을 개발해왔습니다. 유럽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조직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켜 왔는지 잠시 알아보겠습니다.     


18.

유럽의 중세에는, 조직이란 사람들이 모인 집단으로 생각했습니다. 가정과 국가로 형성된 단순한 조직형태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조직 내에 있는 직무와 그 직무를 맡고 있는 직무담당자가 구분되지 않은 미분화된 상태였습니다. 그 직무가 창출해야 할 어카운터빌리티, 즉 성과책임이라는 개념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직무담당자의 개인적 성향과 권력 취향에 따라 조직이 좌우되고, 예측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려웠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욕망에 따라 조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19.

피라미드형 계층구조로 조직이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계급구조에 따라 직무를 개인적 소유물로 여겼습니다. 특히 귀족들의 직무는 세습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직무는 개인적 소유물이 되었습니다. 요즘 재벌 일가의 세습 행태와 그들의 반사회적 행패를 보면 직무와 직무담당자가 구분되지 못한 조선시대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20.

박근혜 최순실 사태는 대통령이라는 직무를 개인적 소유물로 생각하고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박근혜의 사고체계는 직무와 직무담당자를 구분할 정도로 조직인식 수준이 발달해 있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박근혜를 추종하는 일당들의 행태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근대적 조직설계와 법률체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권력을 자신들 마음대로 휘둘러도 된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들 역시 조선시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21.

진실로, 이들은 권력을 가진 자의 개인적 이기심을 최대한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직무를 이해했습니다. 이명박과 그 일당은 아예 국가운영 자체를 개인적인 수익모델로 활용했다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권력의 자리에 올라서면 개인적인 욕망을 맘껏 분출할 수 있도록 엉성하게 법률체계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22.

우리의 법률체계에는 시민들의 집단지성이 정치권에 수렴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본권력이든 정치권력이든, 권력의 자리에 나아간 사람들이 서로 스크럼을 짜고 시민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사태가 지속되어 왔습니다.      


23.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라는 걸출한 철학자가 나타나서 이런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관료제 조직을 생각해 냈습니다. 오늘날 관료제 조직의 폐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당시로서는 조직운영의 지속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위대한 조직이론이었습니다. 직무에 합법적 권한을 부여하고 그 범위 내에서 직무담당자가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조직설계 방법론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신분중심의 조직에서 직무중심의 조직으로 변화되는 시기에 막스 베버의 관료제 개념이 정립되었다. 직무와 직무담당자가 분화되고, 직무담당자는 직무권한의 범위 내에서 일해야 한다.


23.1.

이것은 조직설계에서 매우 획기적인 발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서서히 조직은 단순히 사람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직무의 집합체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조직 밖에 있는 사람들이 조직 내에 있는 여러 직무를 개별적인 계약관계로 맡게 됨으로써 조직이 성립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24.

이것은 매우 중요한 발전이었습니다. 직무와 직무담당자가 명확하게 구분되었고, 직무담당자는 직무에 부여된 권한 범위 내에서만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5.
그러나 구직자는 항상 초과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억압과 착취에 시달려왔습니다. 유럽인들은 이런 상태를 바로잡기 위해 노동시간과 임금 복지 등 노동 관련 법규를 점차 노동자의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하게 보장하도록 엄격하게 규정해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상황으로 나아가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노동현장에는 여전히 불합리한 관행이 자행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26.

이제 21세기가 되어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우리를 덮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직을 어떻게 설계해야 이 파고를 타고 넘을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와 같은 관행과 법률체계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27.

직접민주주의를 실행하는 스위스, 직접민주주의에 버금가는 비례대표식 정당명부제를 시행하는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를 참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도 아니며 우리보다 더 선한 본성을 타고난 사람들도 아닙니다. 우리보다 더 협동심이 큰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직접민주주의 정신을 제도적으로 실현함으로써 우리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룩했을 뿐입니다.      


28.

우리가 후진 사회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제도적 장치들이 우리 민족을 옥죄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을 손아귀에 쥔 사람이 자신의 욕망에 따라 조직을 맘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이런 비참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29.

그래서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은 대통령 중임제 또는 이원집정부제 등과 같은 권력을 분산하도록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 역시 이런 혼란의 기회를 틈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권력분점의 기회를 삼으려고 하는 것이 눈에 뻔히 보입니다.     


30.

모든 문제의 본질은 시민들의 의사가 국정 운영과정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촛불을 들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국회에서의 탄핵은커녕 여전히 최순실 태블릿 PC의 진위여부를 가리면서 사태의 본질이 뒤집어졌을지도 모릅니다.     


31.

시민들의 의사가 직접 국정운영에 반영되도록 해야 합니다. 대선주자들의 공약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청와대를 개혁한다느니, 검찰을 개혁한다느니, 재벌을 개혁한다느니 하는 모든 약속은 불필요합니다. 문제의 원인은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면 이 모든 문제가 해소됩니다.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은 채, 누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개헌을 할 것이고 그러면 또다시 시민들의 의사는 왜곡될 것입니다.      


32.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제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타고 넘을 수 있는 “분권화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Networked Organization)”을 만드는 길입니다. 다음 시간에도 분권화된 자율적인 네트워크 조직에 대해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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