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동석 Mar 27. 2017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독립된 자율적 주체로 살아간다는 것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 독립된 자율적 주체로 살아간다는 것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지난 시간에는 박근혜의 탄핵과 관련해서 언급했습니다만, 오늘은 예고했던 대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표출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1.

인간의 존엄성을 도덕적 자율성으로부터 유추해낸 사람은 칸트였습니다. 칸트 이전에는 인간의 이성 작용에 의한 자율성의 개념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칸트 이후 우리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존엄성은 도덕적 자율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

도덕적 자율성이라는 개념에서 ‘도덕적’이라는 말은 사회적 관계에서만 발생하는 개념이죠.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도덕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덕성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는 타인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도덕성은 인간의 이성적 사유 작용의 결과인 자율성으로부터 도출된다고 칸트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인간의 자율성에서 나온다니 말입니다. 칸트의 이런 사유 세계를 접하면서 철학이 이렇게 아름다운 학문이라는 것을 제가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3.

인간 존엄성의 근거인 자율성이란 무엇인가? 자기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에게는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놀라운 능력입니다. 타인의 명령과 통제, 지시와 억압이 없이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은 정말로 놀라운 능력입니다. 자기 스스로 법률을 만들고 자기 자신을 그 법률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입법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기입법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가장 좋은 조건은 독립성입니다. 어떤 제약도 구속도 없는 자유로운 환경조건을 만들어 줌으로써 자립하는 것이 독립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반드시 모든 개인이 ‘독립된 자율적 주체’가 되도록 환경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4.

‘독립된 자율적 주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 잠시 저의 경험을 소개하겠습니다. 독일 학생들은 18세가 되면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합니다. 그들은 부모의 집을 떠나 독립하여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지시하거나 명령하거나 제약을 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한창 성적으로 민감한 나이에 부모를 떠나 남녀가 서로 어울리면서 청년시절을 보냅니다.     


5.

80년대 독일 대학에서 경험한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아주 단순한 가이드라인만 있었습니다. 몇 개의 세미나 이수증과 졸업논문을 교수에게 제출하여 통과되면, 미리 정한 5개 과목의 졸업시험을 칠 수 있습니다. 이 졸업시험은 아주 엄격해서 과목당 논술시험은 다섯 시간씩 치러야 하고 구두시험도 보통 45분간 치러야 합니다. 이 시험은 보통 일 년 이상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이 과정을 모두 성공적으로 통과해야만 학위증이 나온다는 규정만 있을 뿐입니다.      


5.1.

이 모든 과정은 학생들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합니다. 대학에는 축제기간도 없고, 동아리에서 MT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입학식도 없고 졸업식도 없습니다. 어느 교수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 학점이수 규정도 없습니다. 강의를 듣든지 말든지 그것은 철저하게 학생 자율에 맡겨져 있었습니다. 박사과정에서도 논문이 심사교수들에게 통과되고 구두시험에 합격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절차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공부에 관한 한 거의 무한한 자유가 허락되고 있었습니다.      


6.

이렇게 되어 있었음에도 80년대에 경영학을 공부하여 졸업하는 학생들은 입학생의 50%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경영학 전공 학생들은 어느 대학이나 비슷하게 50% 정도는 중도에 탈락했습니다. 탈락했다고 해서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런 공부는 나에게 적합하지 않는가보다 생각할 뿐입니다. 탈락한 학생들은 물론 다른 직업을 찾아가거나 직업학교로 전학하기도 합니다. 아무도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독일 젊은이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정신적으로 독립된 자율적 주체로 살아가는 법을 철저하게 익히고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에게도 Bafög이라는 연구장려금을 주어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독립되도록 정부가 지원했습니다.                         


7.

저는 경영학 과목들을 들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사조직 전공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심리학과의 사회심리학과 조직심리학을 2년간 꼬박 들었습니다. 물론 세미나에서도 발표를 하고 이수증을 받았는데, 이 심리학 세미나가 대학을 졸업하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시간이 될 때마다 관심이 있는 철학과 신학강의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인사조직에서 철학이 그렇게 중요한지도 그때 알았습니다. 이렇게 독립된 자율적 주체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저도 점차 알게 되었죠.


8.

제가 10여 년 전 처음으로 국내 대학의 MBA 과정에서 가르칠 때 출석을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조교가 출석을 체크하긴 하지만, 대학에서 출석을 부른다? 이것은 매우 이상한 관행이었습니다. 강의를 듣든 말든 그런 것은 학생의 자율에 맡길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존엄성, 즉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강의 출석과 불출석이 타인에게 어떤 손해를 끼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해코지하지 않는 행위를 왜 통제하는지 의아했습니다. 왜냐하면, 대학에서 졸업에 필요한 학습 수준과 그 성취의 조건을 정해서 그것을 교수가 평가하면 될 일이지, 수업 출석 등과 같은 행동을 통제하는 것은 매우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9.

여기서 우리는 칸트의 자율성 개념을 생각해봅시다. 칸트의 자율성 개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아주 중요한 언명이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것인데요. “너는 해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독일어로, Du kannst, denn du sollst.라고 합니다. 이 말을 박근혜에게 적용하면 아주 명확해집니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 했고, 헌법을 수호하고 자신의 공약을 지키겠다고 국민과 약속했고, 그래서 대통령 직무를 맡았죠. 칸트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박근혜는 그것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았거든요. 인간의 이성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자기입법의 상태, 즉 자율성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의 존엄성을 스스로 파괴한 것입니다. '독립된 자율적 주체'로 살지 못한 것이죠.     


10.

칸트는 이렇게 인간 존엄성의 근거는 자기입법의 상태인 자율성으로 표출된다고 보았는데, 저는 이것이야말로 영원한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입법의 상태인 자율성이 표출되지 않는 인간은 스스로 존엄성을 파괴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1.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박근혜가 스스로 자율성을 파괴한 것에 상응하는 마땅한 처벌을 내린 것입니다. 자율이 멈추는 곳에서 타율이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렇게 타율이 필요합니다. 독일 사회를 생각할 때, 무한한 자율을 주고 있지만, 그 자율이 멈추는 곳에서 엄격한 타율이 시작되는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11.1.

박근혜는 이런 직무태만에 더하여 적극적인 뇌물수수라는 범죄행각을 벌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에 따른 무거운 처벌이 어떻게 내려지는지 앞으로 검찰과 사법부의 판단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합니다.      


12.

이렇게 인간에게 본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이성의 기능인 자율성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내려짐으로써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독일 대학의 운영방식도 기본적으로 자율성에 기반한 경영방식입니다. 학생들에게 거의 무한한 자유를 허용하면서 미리 정해준 성취기준을 통과하는 학생에게만 졸업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12.1.

우리 기업들도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직무가 어떤 성과를 창출해야 하는지 설계하고 그 직무들의 관계를 독립적인 수평적 네트워크로 설계함으로써 모든 구성원들이 독립된 자율적 주체로서 일하도록 해야 합니다. 


13.

이런 관점을 가지고 독일과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시면, 분권화된 자율적인 조직운영방식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각자가 독립된 자율적 주체로서 존중되지만, 그 자율성이 지켜지지 않을 때, 다시 말해 자기입법의 상태에서 벗어났을 때,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내려지는 사회라는 사실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14.

그러면, 인간 이성의 기능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세 가지 주요한 기능이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이성은 합리적인 사고를 가능케 합니다. 합리적이라는 말은 언행이 이치에 맞는다는 뜻인데, 이치에 맞는다는 말은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킨다는 뜻입니다. 사실부합성의 조건과 인간부합성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박근혜의 언행을 봅시다.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고 인간에도 부합하지 않는 언행을 해왔습니다. 


15.

박근혜는 자신의 범죄행위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혀져야 함에도 특검수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는 사실부합성의 조건을 정면으로 거부한 행동이죠. 동원된 친박세력의 집회에서 세 명이나 죽었음에도 위로와 사과의 말조차 하지 않는 것은 박근혜가 인간부합성의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녀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그랬습니다. 그녀의 언행에는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16.

둘째, 인간의 이성은 비판적 사고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상황과 조건을 합리적인 상황과 조건으로 만들기 위한 대안적 사고를 말합니다. 비판적 사고기능이 마비되면 사회는 발전하지 않습니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라고 충고하면서 자기계발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 특히 긍정의 힘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17.

세상은 항상 긍정의 대상이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하니까요.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늘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해야 하며, 비판적 사고가 인류의 문명을 여기까지 건설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18.

셋째, 인간의 이성은 추론적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추론적 사고란 추상화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상상하는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죠. 박근혜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던 당일 오전, 어디서 뭘 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전후에 찍힌 얼굴 사진을 대조해보면 얼굴에 주삿바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는 그 시간에 얼굴 미용시술을 받았으리라는 합리적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합리적 의심이 일종의 추론적 사고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만든 것도, 수학자들이 설명하는 수학공식들도, 양자역학의 여러 이론들도 이성의 추론적 사고 기능이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19.

이런 합리적 사고, 비판적 사고, 추론적 사고는 이성 작용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인간에게만 고유한 현상입니다. 인류 문명은 바로 이런 이성에 의해 건설되어 왔습니다.     


20.

그러나 이런 인간 이성의 기능은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칸트가 말하는 순수이성의 영역입니다. 진위, 선악, 미추를 분별하여 종합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본래부터 주어져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 무엇인 아름답고 추한지 분별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이 성찰적 기능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을 존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최종 근거입니다.                     


21.

이런 순수이성은 자기 자신과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언행을 반성하고 스스로 깊은 내적 성찰을 통해 사실부합성과 인간부합성이라는 합리적 사고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22.

이제 다시 박근혜의 사례로 돌아가 봅시다. 그녀는 이성이 마비된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진위, 선악, 미추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보입니다. 그녀를 지지하면서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도 비슷한 부류의 사람으로 보입니다.


23.

저는 왜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많아졌을까를 생각해보곤 합니다. 저의 잠정적인 결론은, 박정희 시대부터 모든 것을 돈으로 환원시키는 악랄한 자본주의 체제를 고수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은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자본은 인간의 순수한 이성을 마비시키고 돈의 노예가 되도록 만듭니다. 돈의 노예가 되면 합리적 사고, 비판적 사고, 추론적 사고가 정지됩니다. 돈이 모든 언행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서로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하는 사회로 전락했습니다.


24.

박근혜가 이성적 사고력이 거의 마비되었다는 사실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자기성찰은커녕 독립된 자율적 주체로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었고, 그녀의 언행은 형편없을 정도로 비합리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죠.      


24.1.

그럼에도 그녀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은 인재를 진단하고 평가하는 과학적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어떤 인재가 어느 수준으로 성취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학문적 배경과 이론체계가 정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학습기회를 제공하는 기관이나 전문가가 거의 없습니다.      


25.

그래서 작년 가을에 이어 이번 봄에도 역량개념과 역량진단 방법을 학습할 수 있는 기초과정을 마련했습니다. 4월 8일 토요일 오후부터 매주 5시간씩 4주간 연속으로 20시간짜리 <성취예측모형 워크숍>을 개최합니다.  

    

25.1.

이 워크숍에 참석하면 자신의 역량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고, 함께 일하는 동료나 상사의 역량을 이해할 수 있으며, 자녀양육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대선 주자들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참가비가 있습니다만, 아무쪼록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즐거운 학습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선거의 계절이 왔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우리가 기왕에 <성취예측모형 워크숍>도 마련했으니 어떻게 대선주자들을 진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지 그 개념들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박근혜 파면의 교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