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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Apr 15. 2017

대선 후보들을 제대로 검증하려면

- 평가에는 반드시 타당성과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2017-04-10()_대선 후보들을 제대로 검증하려면

평가에는 반드시 타당성과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안녕하십니까, 최동석입니다.     


1.

요즘 대선 후보들에 대한 검증 얘기가 한창입니다. 아들 취업에 압력을 넣었다느니, 부인의 교수 임용과정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느니 하는 의혹들을 검증하느라 온통 난리법석을 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혹들이 도대체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런 의혹들에 대해 팩트체크를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검증일까요?      


2.

이런 식의 검증이 정말 타당한 걸까요? 물론 이런 의혹을 눈감아 주자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공직자가 되려면 이렇게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은 검증의 목적이나 본질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3.

대선 후보를 검증하는 목적은 그가 대통령이라는 직무를 맡았을 때, 과연 그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대통령이라는 직무는 어떤 성과를 창출하는 직무인지를 사전에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4.

우리 헌법 제66조에서부터 제85조까지 대통령 직무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은 할 수 있으며, 무엇은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약간 포괄적이긴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5.

현행 헌법 제69조에 대통령의 직무를 아주 명쾌하게 네 가지로 정리해놓았습니다.      


첫째,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할 것

둘째,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도록 할 것

셋째,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시킬 것

넷째, 민족문화를 창달할 것     


6.

대통령 취임 때 이렇게 선서하도록 규정해놓았으니까요. 이보다 더 명쾌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경영학에서는 이런 네 가지 책무를 직무의 성과책임이라고 부릅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대통령 직무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이라는 성과책임을 완수해야 하는 직무입니다.      


7.

현행 헌법체제에서 대통령 직무를 맡았을 때, 누가 과연 이 네 가지 성과책임을 잘 완수해낼 수 있을지를 검증하면 됩니다.     


8.

경영학에서는 사람의 역량을 진단하는 철학과 그 방법론을 개발해왔습니다. 이것을 저는 ‘성취예측모형’이라고 부르는데, 이 모형의 이론적 배경에는 인간의 역량을 검증하는 세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9.

역량을 검증하는 첫 번째 전제는 어떤 사람이 현재 말하는 것은 신뢰할 수 없는 정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표방하는 이론과 실제 행동할 때 사용하는 이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과거에 실제로 했던 행동입니다. 과거의 행동이 미래의 행동을 훨씬 더 잘 예측한다는 말입니다.      


10.

이명박이 했던 말을 기억하시나요? BBK 실제 주인이 이명박이라는 주장에 대해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박근혜가 했던 말을 기억하시나요? 정윤회 최순실의 비선행태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자신은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고 말했죠. 좋은 말이야 누가 못 하겠습니까? 그들은 자신이 말한 대로 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거꾸로 행동했습니다.     


11.

지금과 같은 선거기간에 하는 말은 더구나 믿을 수 없는 정보들입니다. 대선 주자들이 지금 무슨 말은 못 하겠습니까? 전혀 신뢰할 수 없는 말이죠. 정책이나 공약 같은 것도 믿을 만하지 못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는 정부나 정당을 본 적 있습니까?     


12.

역량을 검증하는 두 번째 전제는 어떤 사람이 과거의 여러 중대한 사건들에서 어떤 행동과 노력을 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믿을만한 정보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임무를 맡아서 어떤 행동을 했으며, 그 행동의 의도는 무엇이었으며, 어떤 결과를 낳았으며, 그래서 어떤 새로운 상황으로 변모시켰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중대한 사건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은 아주 믿을 만한 정보가 됩니다. 이 정보를 모아서 역량사전에 근거하여 진단하면 됩니다. 역량사전이란 높은 성취를 보여주는 내적 속성들, 즉 역량요소들을 과학적으로 검증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목록(inventory)입니다.      


13.

어떤 사람의 과거 행동을 기록하여 역량사전에 근거해서 평가한 결과는 미래의 성취수준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미래의 유사한 상황에서도 그는 다시 과거와 같은 행동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과거의 행동을 미래에도 재현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14.

여기서 과거를 어느 정도의 기간으로 볼 것인지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기업의 임원을 선발할 때는 3년 내외를 볼 수 있겠지만, 공직자가 되려는 정치인의 경우에는 조금 더 길게 보는 것이 좋습니다.      


15.

역량을 검증하는 세 번째 전제는 공생활과 사생활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공사를 구분하는 전통이 없었습니다. 조선 성리학 때문인데요. 훌륭한 인품을 가진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삼강오륜식 교육을 시켜왔기 때문에 공생활과 사생활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생활이 곧 공생활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공생활이 훌륭하면 사생활도 훌륭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거꾸로 사생활이 훌륭하면 공생활도 탁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16.

물론, 사생활과 공생활 양면에서 훌륭한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생각해보면, 공생활에서는 뛰어난 업적을 냈지만, 사생활에서는 별로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살지 못한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반대로 사생활에서는 아주 반듯하게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았지만, 공생활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성취한 것이 없는 사람도 있지요. 우리는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아주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훌륭한 가정생활을 영위하고는 생을 마감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죠.      


17.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직무는 공생활에 관한 것입니다. 대선 후보는 사생활이 아니라 공생활에서 과거에 무슨 행동과 성취를 보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 가족의 가장이나 남편 또는 아내가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검증하면 됩니다.      


18.

우리가 잘 알다시피, 독일의 정치인 빌리 브란트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1969년 사민당 정부가 출범하면서 총리에 취임한 후 국내 정치만 보더라도, 그는 독일을 오늘날과 같은 사민주의적 복지국가의 틀을 확고하게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나아가 국제정치에서도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폴란드를 찾아가서 사죄하고 배상하고,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탁월한 외교전략을 펼쳤습니다. 그로 인해 동서냉전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기반으로 20년 후, 1990년에는 극적으로 동서독이 통일할 수 있었습니다.  


19.

그러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태어난 빌리 브란트였기에 수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그의 사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죠. 나치 정부에 저항하기 위해 노르웨이와 스웨덴으로 망명생활을 하면서 노년에는 세 번째 부인과 함께 살았지만, 그에게는 늘 여자 문제가 따라다녔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독일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서베를린 시장 직무를 9년간, 연방외무장관 겸 연방부총리 직무를 3년간, 연방총리 직무를 5년간 맡았습니다. 1974년 총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사민당 대표를 87년까지 15년간이나 너끈히 계속 맡았습니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의장직은 1992년 78세로 사망할 때까지 16년간 계속 맡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존경을 받았습니다. 공생활의 성취와 사생활의 성공 여부는 이렇게 엄격히 구분해서 평가해야 마땅합니다.     


20.

우리나라에서도 검찰총장 직무를 맡았던 채동욱은 혼외자식이 있다는 의혹에 휩싸이는 바람에 그의 공생활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2013년이었죠. 그는 박근혜 대선후보에 유리하도록 조작한 국정원의 대선개입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사생활과 국정원의 대선개입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공생활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었나요? 아무 관계가 없죠. 그러나 어느 찌라시만도 못한 언론사는 채동욱을 제거함으로써 박근혜를 보호하려는 수작을 부렸는데, 그게 먹힌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천박함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만약 채동욱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의 진실을 그대로 파헤쳤다면, 지난 대선은 무효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진작에 해체되었어야 할 운명에 처해졌을 겁니다.     


21.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은 채, 검증한답시고 하는 짓이 그 가족이 어떻다는 얘기를 들춰내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치 중요한 검증방식인양 떠들고 있습니다. 공적 생활에서 어떤 성취를 이룩했느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으면서 말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얘기입니다.     


22.

방금 언급한 성취예측모형의 세 가지 전제, 즉 현재의 말은 신뢰할 수 없지만, 과거의 행동은 신뢰할 수 있으며, 공과 사를 구분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성취예측모형에 따라 대선 후보들을 검증해야 합니다. 과연 누가 헌법에서 정한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직무수행 요건을 잘 갖추고 있는지를 검증해보면 됩니다. 


첫째, 누가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가?

둘째, 누가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는가?

셋째, 누가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 역량이 있는가?

넷째, 누가 민족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23.

이 질문을 해놓고 보니, 1970년대 초, 서독 정부가 당면했던 상황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지금 빌리 브란트 같은 인물이 정부를 운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쎄요, 빌리 브란트 수준의 역량을 갖춘 공직자를 갖는다는 게 우리에겐 너무 과분한가요?     


24.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빌리 브란트와 같은 공직자를 가질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 관행과 프로세스를 갖추지 못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비합리적인 방식입니다. 모든 국민은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다양한 인재들이 선택되어 그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합의하여 국정을 운영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까? 국민의 의사가 정치판에 반영될 수 없는 구조야말로 반민주적인 것인데도 정치인들은 아직도 이것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얘기는 나중에 헌법 개정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때 좀 더 자세히 다루어보겠습니다.                         


24.1.
어쨌거나 우리는 그래도 대선 후보들 중에서 한 명을 골라야 합니다. 잘못 고르면 자신의 선택이 무효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정말 비합리적인 선거제도입니다. 보편적인 상식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선거제도를 아직도 고치지 못하고 있는지 답답합니다. 

24.2.
지난달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한다고 해서 초청을 받아 토론을 하러 갔었습니다. 진행자는 토론회 시작 전에 국민의례를 하려고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토론회가 시작되기 전에 거기 참석한 의원들에게 제발 국민의례를 그만하라고 했습니다. 국민이 국기에 대해 맹세하는 것 자체도 웃기는 얘기지만, 그것을 강요하는 전근대적인 의례야말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주의적인 만행에 가까운 행태입니다. 이제는 개선해야 할 때라고 했습니다. 

24.3.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루에도 열두 번씩 했을 의원들 때문에 나라가 이 꼴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지나친 얘기일까요? 국기에 대해 맹세를 그토록 많이 했을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입법 활동을 했다면 나라가 이 꼴이 되었겠습니까? 내가 국민의례를 그만두라고 지적하자 그런 지적을 처음 들었다는 의원은 고쳐야 할 필요를 느낀다고 했습니다. 다음번에 토론회에 가면 또 그 짓을 계속하고 있을 겁니다.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던 “생각 없음”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25.

어쨌든 다시 역량진단으로 돌아와서, ①헌법 수호, ②조국의 평화적 통일, ③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④민족문화창달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인재가 누구인지 진단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가장 적합한 인재가 누구인가를 검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검증도 일종의 역량진단인데, 여기에는 타당성과 신뢰성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26.

타당성 개념은 그 직무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을 검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의 네 가지 책무, 즉 국리민복을 완수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를 진단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의 사생활을 캐는 것은 타당성이 거의 없는 진단입니다. 이것은 마치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쳤는데, 상세히 진단해야 한다면서 위내시경을 하겠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주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이죠.      


27.

쓸데없는 데다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정작 중요하고도 타당한 항목은 검증하지 못하고 맙니다. 이명박이나 박근혜를 보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생활의 여러 중요한 사건들에서 어떤 행동과 성취를 보였는지 살펴야 합니다. 이명박은 현대건설 사장 시절과 정치인 시절에, 박근혜는 영남재단과 육영재단 시절과 정치인 시절에 도대체 어떤 행동과 성취를 보였는지 살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28.

이 두 사람의 공생활에서는 사실상 인테그리티(integrity)라는 정직성실성의 역량요소가 아주 낮은 수준이었죠. 아니 마이너스 수준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혀 엉뚱한 것을 가지고 다투다가 결국은 아무것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나중에서야 밝혀진 것이지만, 둘 다 결국은 사기꾼이나 진배없음이 드러났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29.

우리가 또 사기꾼을 뽑아서는 안 되겠지요.      

다음 시간에는 성취예측모형의 구체적인 역량요소들에 대한 기초개념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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