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태관리의 새로운 개념
우리나라에서 근태관리는 일반적으로 직원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왔습니다. 근태관리라는 말만 들어도 직원들은 기분이 나빠집니다. 누군가로부터 통제당하는 느낌 때문입니다. 1980년대 한국은행에서 일할 때였죠. 근무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윗분들의 지시가 있었나 봅니다. 인사부서 직원이 지각 출근하는 직원들의 신원을 파악해서 임원들에게 보고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곤 했었습니다. 정문에서 출근 체크하는 직원은 미국 대학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은 직원이었습니다. 당시 한은 직원들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퇴근시간을 체크하기 위해 정문에 서있을 것이라는 농담도 하곤 했습니다. 이럴 정도로 직원들에 대한 근태관리는 해이해진 근무기강을 바로잡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근태라는 단어는 매우 부정적 의미로 쓰여 왔습니다.
이런 부정적 느낌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회사는 직원들의 안위를 걱정하기 때문에 근태관리를 한다는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회사는 직원들이 혹시 아파서 회사에 늦게 나오는 것은 아닐까, 출근 중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아닐까 걱정할 수도 있습니다. 몸이 안 좋으면 일찍 퇴근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퇴근 중에 혹시 변고를 당한 것은 아닌지, 강남의 유흥가에서 혹시 꽃뱀에 물린 것은 아닌지(15년 전쯤 내가 실무를 할 때 임직원 중에 그런 사례가 있어 인사부서에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음) 등 회사의 인사부서는 늘 직원들을 염려해야 합니다.
회사는 직원 개개인의 인생 전체를 고용한 것이어서 직원들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지원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야 직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맘껏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회사라는 조직의 존재 목적은 구성원들의 삶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조직을 인식해야 하는 이유는 이 우주에서 인간이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칸트의 철학에서 기원합니다. 물론 인간 존엄성에 대한 논의는 중세의 기독교 신학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 주제였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인에게는 통용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소용없는 일입니다. 세속적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속 철학의 입장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물음에 인간의 존엄성으로 대답한 사람은 이성주의 철학자 칸트였습니다. 인간에게 스며들어 있는(embedded) 이성은 옳고 그름, 선함과 악함,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별하여 종합 판단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런 이성을 단순한 지식(독일어로 Verstand, 영어로 knowledge)과는 달리 독일어로는 페어눈프트(Vernunft)라고 하며 영어로는 리즌(reason)으로 번역합니다. 우리말로는 이성(理性)이라고 합니다. 이성의 이런 종합판단능력은 다른 동물들에게는 내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개·돼지와 같은 동물이 인간과 구별되는 이유입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문명은 이런 이성 작용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명은 인간이 세계를 개념화하는 기술의 총체입니다.
우리는 문명을 건설한 이성(理性, reason, Vernunft)을 믿을 수 있고 믿어야만 합니다. 더구나 다중(多衆)의 지혜를 드러내는 집단지성(wisdom of crowds)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경영의 합리화, 민주화를 실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 이성 작용을 전혀 믿지 않는 아주 멍청하기 짝이 없는 사회구조와 시스템을 만들어놓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든 그물에 걸려 고통받고 있습니다. 마치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는 짓을 하고 있는 셈이죠. 그중에 하나가 바로 근태관리입니다. 지금이야 달라졌겠지만, 내가 직장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1980년대에는 당시 꽤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으로 인식되던 한국은행에서조차 출퇴근 체크가 근태관리의 일환으로 쓰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 이성의 작동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이성의 종합판단능력을 신뢰할 수 있으려면, 인간은 누구로부터도 구속받지 아니하는 독립된 자율적 주체(souveränes Individuum)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지식노동의 경우 전통적인 근태관리는 오히려 기업의 생산성과 창의성을 떨어뜨리는 기제로 작용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근태관리 개념이 필요합니다. 출퇴근 과정에서의 안위를 염려하고 근무환경에 대한 불편사항을 파악하여 개선하고 직원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근태관리를 한다는 의미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런 근태관리를 직원들이 싫어할 이유는 없겠죠. 회사가 이렇게 근태관리를 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회사 경영의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 management)을 높이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임직원들은 자신에게 닥친 일과 예정된 일들을 미리미리 회사에 알려서 다른 임직원들이 사전에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협력하는 정신을 학습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회사는 하나의 건강한 공동체(community)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래서 근태관리라는 용어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예측가능성 관리(predictability management)라고 할 수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