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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Jul 23. 2017

여름휴가

젊은이들에게 해외여행의 기회를


1.

어김없이 여름휴가를 떠납니다. 대략 한 달 간입니다. 이런 관행은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와의 약속이었습니다. 신(神)의 직장이라고 불리던 한국은행을 떠나 풍찬노숙(風餐露宿)을 각오하고 컨설팅회사로 옮기던 해, 그러니까 2001년부터 여름방학에는 해외여행을 하기로 결정하고 첫 번째 여행지로 아일랜드를 택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짐꾼, 여행플래너와 가이드, 운전기사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더블린, 킬케니, 워터포드, 코크, 링 오브 케리 등을 돌아다녔습니다.      


아일랜드는 환상적이었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푸른색의 들판은 정갈했습니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식물들이라 그럴 거라고 생각했죠. 사람들은 친절했고 소박했습니다. 오랜 세월 영국의 지배를 받아온 켈트족이 자신들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아일랜드는 우리나라보다 더 슬픈 역사를 가진 나라입니다. 북아일랜드의 분쟁도 사실은 영국인들이 원인을 제공한 것이지요. 세계의 모든 분쟁지역은 영국과 미국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내가 앵글로색슨 모형에 기반한 경영이론들을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경쟁과 분쟁을 조장함으로써 이득을 얻는 방식으로 세계를 운영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외면해왔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그다음 해 또다시 슬픈 아일랜드에서 여름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여름휴가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캐나다와 미국 서부를 여행했던 두 해의 여름을 빼고는 거의 매년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습니다. 유럽 문명에 대한 나의 이해는 이런 여행을 통해 얻은 게 아주 많습니다. 여행을 하면 그 나라의 개략적인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올해는 아이슬란드를 택했습니다. 아내가 작년부터 부쩍 아이슬란드를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죠.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쓰나미를 가장 먼저 경험한 나라였습니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위기의 해결 방식을 앵글로색슨 모형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협력과 연대의 정신을 살리는 사회민주주의적 방식으로 금융위기를 거뜬히 벗어났습니다.     


2.

돌이켜 보면 내 생애에 가장 큰 행운은 아내를 만난 것입니다. 나는 삼시 세 끼도 챙겨 먹기 어려운 강원도 산골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불알 두 쪽밖에 가진 것이 없는 청년이 서울에 올라와 주경야독으로 야간대학을 다닐 때, 한 여인을 보자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명륜동에서 시작해서 삼청동으로 넘어오는 데이트 코스를 택하곤 했습니다. 그때가 1978년이었습니다. 4년 후 결혼했으니까 35년간 함께 살아왔습니다. 올해는 아내가 환갑을 지나는 해지만, 요즘도 여행가방을 꾸릴 때 나를 설레게 합니다.


아내는 25살에 결혼해서 딸과 아들을 낳았습니다. 딸이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던 2007년 여름, 취직과 함께 런던에 눌러앉는 바람에 우리는 런던을 베이스캠프 삼아 더 쉽게 유럽여행을 계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영국 청년과 결혼을 했으니 한국에 자주 오기도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방학이 되면 딸을 보러 런던엘 꼭 가야 합니다. 덕분에 1980년대 가난하던 시절, 독일 유학 중에는 엄두도 낼 수 없던 나라들(스페인, 포르투갈, 동구권의 여러 나라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도 가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꾀가 나서 여행 계획도 가이드도 운전도 하지 않습니다. 딸과 사위가 대신해주니까 편해졌지만, 일단 런던까지 날아가야 하는 내 육신은 날이 갈수록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내는 젊었을 때 여행을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을 늘 했지만, 나는 그럴 돈도 시간도 없다면서 책상머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아내의 말이 맞았습니다. 요즘은 부산 출장 1박 2일을 다녀와도 파김치가 되는 마당이니 말입니다.      


3.

가능하다면 세계를 여행을 하라고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나이 들면 후회합니다. 세계인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그들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이제 우리의 삶도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Blockchain Operating System(BOS)을 만들어 세계인들이 활용하도록 하려는 우리 회사도 직원들에게 더 많은 해외여행의 기회를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 있을 개발자들을 옆에 두고 여름휴가를 떠나는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습니다. 8월 말이나 9월 초 토큰이 나오는 일정을 맞추려면 휴가는커녕 퇴근도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압니다. 늘 강조해왔듯이, 명확한 성과책임(Accountability)와 명확한 QCD를 가지고 있다면 적은 시간 일해도 높은 생산성이 나온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개념을 하루 아침에 터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많은 학습과 훈련, 그리고 높은 수준의 개념적 사고력(conceptual thinking)이 필요하죠. 지금 개발팀은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토큰이 잘 나오면 우선 고생한 직원들이 코타키나발루 같은 데서 자축하면서 우리가 앞으로 실천해야 할 전략과 리더십에 관한 워크숍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사회에 제안도 해볼까 합니다. 여러분의 수고가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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