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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Aug 09. 2017

“Are you happy?”와 국가의 존재 목적

아이슬란드 여행기

“Are you happy?”와 국가의 존재 목적에 대하여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2017-07-28~08-08)에서 수시로 들은 말이 “Are you happy?”였다. 이 여행의 일정과 숙소 등 일체의 것을 딸 부부가 기획했다. 결혼 35주년. 아내의 나이도 만으로 계산하면 60이 넘어가는 해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지만, 나는 나이 같은 것에 별 신경을 쓰지 않으며 살았다. 특히 생일, 명절, 몇 주년 기념 같은 것을 평생 무시하면서 살았다. 매일매일의 삶이 중요하지 몇 주년 같은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는 게 내 지론이다.      


이런 지론이 생긴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가난한 집안에서 생일, 명절 등을 제대로 챙기기가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어머니는 아예 그런 쓰잘데기 없는 것에 관심 갖지 않도록 자식들에게 가르쳤다. 생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더 건강하게 사는 것이고, 명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래에 올바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뭐 이런 교훈을 자식들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했다. 미래의 건강하고 올바른 삶을 위해서는 현재의 생일이나 명절 등을 챙기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라는 교훈을 늘 명심해야 했다. 결혼 후 아내가 매년 생일상을 차리는 것에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고, 처갓집의 명절 쇠는 풍습이 아직도 낯설다.     


자식들은 현재의 만족을 유예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교훈에 저항하지 못했다. 옳은 말 아닌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더 열심히 더 성실히 일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아닌가? 나는 지금의 즐거움이나 만족을 희생하는 삶이 옳은 것이라는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했다. 세상은 죄다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거라고 믿었다. 지금도 그렇다. 젊은이들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현재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면, 나는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이다. 한국전쟁 직후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아마도 다들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심지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어처구니 없는 가르침을 받았으니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영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난 영국 청년이 사위가 되고 나서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영국인이라고 해서 다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영국 청년은 아이슬란드를 함께 여행하면서 수시로 우리더러 행복하냐고 묻는다. 전망 좋은 코티지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는 행복하냐고 묻고, 국립공원의 기기묘묘한 용암 위를 하루 종일 걷고 나서도 행복하냐고 묻는다.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면서도 묻고, 바람이 센 검은 모래의 해안가를 걷고 난 후에도 묻는다. 딸도 역시 시어머니나 남편으로부터 “Are you enjoying yourself?” 또는 “Are you happy?”라고 수시로 질문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런 물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나도 “Yes, I am. More than happy!”라고 대답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 서슴없이 말할 수 있으려면 나에겐 어느 정도의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 세상이 이렇게 바뀐 것이다.


나는 행복한 느낌이 어떤 것인지 거의 모르면서 살았다. 일하면서 온갖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은 경험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다. 행복하기 위해서 일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니 하던 일을 그냥 묵묵히 해왔을 뿐이다. 어쩌면 그 일을 내가 좋아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주 가끔은 살아있는 보람을 느낀 적이 있긴 하다. 


돌아보면, 내 취미는 인사조직 분야를 연구해서 우리 조직에 접목시켜 보는 것이다. 조직의 생산성과 창의성이 높아지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내가 어쩌다 이런 취미를 갖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른다. 독일 연수와 유학 중에 독일인들의 삶을 경험하면서 내 관심분야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인사조직 분야라 그냥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여행 중에도 각 나라의 조직운영방식은 어떤지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머릿속에서는 늘 그런 생각들이 떠나질 않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권의 기업 조직에 대한 연구와 우리 조직을 비교해보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강력한 취미가 되었다. 오늘날 독일어권이 제4차 산업혁명(Industrie 4.0)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인사조직 운영방식의 독특성에 있다. 독일어권에서 공통으로 적용되는 인사조직이론과 관행을 나는 게르만 모형이라 하고, 일반적으로는 사민주의(社會民主主義, social democracy) 모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이 사민주의적 게르만 모형의 조직운영방식에 깊이 매료되었다. 이것을 가르치고 현장에서 구현하는 것을 내 평생 업으로 삼게 되었다. 이 업이 나도 모르는 행복감에 젖어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아이슬란드를 일주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라는 점이다. 아마도 이 지구 상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에 속하는데, 가장 먼저 의회를 시작한 나라이기도하다. 기록으로만 보자면, AD 930년에 의회(Althing, 아이슬란드어 Apingi)를 세웠으니까 말이다. 아이슬란드인의 국가운영정책은 가난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부자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아이슬란드에는 실제로 가난한 사람이 없다. 누구나 자신이 타고난 재능을 맘껏 발휘하고 있으니 인간적인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사민주의 정책이 오늘날의 아이슬란드를 만들었다.      


우리가 12일간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돌면서 배운 것은 국가는 국민 개개인이 가난한 삶을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이다. 국가의 존재 목적을 명확히 하면 할수록 그 국가는 잘 사는 국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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