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성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인간의 존엄성(Menschenwürde, human dignity)에 대하여
오늘(2019-05-26) 오후 내내 《교사들에게 또는 교사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교하이)의 두 번째 강의를 한다. <인간과 역사: 인간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켜 왔는가?>라는 주제다. 물론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서양사상사나 서양철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다. 독일 경영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독일 기업의 인사조직을 연구하다 보면, 도대체 독일인들은 왜 이런 조직운영방식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지는데, 이를 추적하다 보면 독일의 역사와 철학,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의 삶의 방식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파악할 수 있다. 명령과 통제, 억압과 착취가 없는 조직운영방식으로 기업의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는 독일 기업의 직장인들과 독일인들의 사유세계를 찾아가는 것은 나에게 아주 즐거운 여행과 같다.
인간의 존엄성(Würde des Menschen, human dignity)의 근거
독일인과 한국인에게 차이점이 있다면 인간의 존엄성(Würde des Menschen, human dignity)에 대한 이해다. 한국인은 대개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을 인권(human right) 개념으로 축소시켜 생각하면서 그것이 자연으로부터, 즉 천부적으로 주어진 어떤 것쯤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마치 인간의 정체성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유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밖에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근거를 찾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플라톤의 이원론적 사유세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자연은 그냥 자연인 것이지, 그 자연이 인간에게 무언가를 부여했다는 것은 근거가 매우 미약하다.
그러나 독일인의 사유세계는 다르다. 인간의 존엄성은 외부의 어떤 것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을 벗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전통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것은 칸트의 철학적 사유에 근거한다. 모든 인간은 순수한 사변이성(思辨理性), 순수한 실천이성(實踐理性), 순수한 판단이성(判斷理性)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서 순수이성이란 reine Vernunft를 말한다. 독일어에는 이성이 두 종류가 있다. Verstand와 Vernunft인데, 전자는 이해하는 수준의 지식을 의미하고, 후자는 사고력을 말한다. 이렇게 독일어에서만 이성의 기능을 둘로 나눈다. 칸트가 언급한 이성이란 이해 수준의 지식이 아니라 사유하는 능력, 즉 합리적 사고력, 비판적 사고력, 추론적 사고력으로서의 이성(Vernunft)을 말한다. 사변이성, 실천이성, 판단이성이 칸트의 3 비판서의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인간에게 디폴트(default)로 주어진 경험 이전(a priori)의 순수한 이성이란 옳고 그름,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별하여 종합·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진선미(眞善美)를 분별하여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순수한 이성이 잘 작동하도록 하여 모든 인간이 독립된 자율적 주체로서 행동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칸트의 도덕철학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의 실존 그 자체를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칸트로부터 시작되는 인간 이해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의 이성은 자연적 본능을 훨씬 능가하며, 자신의 모든 힘을 사용하는 규칙과 의도를 확장시키는 능력이며, 그 기획력은 한계를 모른다."라는 칸트의 인간이해에 기초해야 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칸트의 언명이 나온다. “네가 해야 하기 때문에 너는 할 수 있다.”(Du kannst, denn du sollst.)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정언명령이 가능해진다. “너의 행위준칙이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동하라.”(Handle nur nach derjenigen Maxime, durch die du zugleich wollen kannst, dass sie ein allgemeines Gesetz werde.) 복잡하게 말했지만, 의미는 이렇다. 다른 사람이 너에게 어떤 행동을 해도 괜찮을 그런 행동을 네가 함으로써 너의 행동이 보편적인 법률이 되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는 이렇게 간명하다. 예수도 이렇게 가르친 적이 있다. 네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이다.
이성(Vernunft)의 기능에 대하여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이성(Vernunft)의 기능이 작동하여 자율적으로 자신만의 행동규범을 정할 수 있으며 그 규범에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자율적으로 복종시킬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명령과 통제와 억압이 없는 상태의 독립된 개별적인 인간이 자율적으로 정한 규범은 곧 보편적인 입법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이성에 근거한 자율성과 독립성. 이것이 인간 존엄성의 근거다. 다시 말하면, 명령과 통제, 억압과 착취가 있는 상태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 존엄성이 훼손된 상태에서 어떻게 이성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겠는가?
명령과 통제, 억압과 착취가 없는 조직은 가능한가?
독일 기업들이 이런 인간관, 즉 칸트의 철학적 사유에 따라 인간 존엄성의 근거를 마련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조직운영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독일 기업에서 명령과 통제, 억압과 착취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명령과 통제, 억압과 착취 없이도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독일 경영학계가 발전시켜 온 인사조직론을 우리나라 학계는 전혀 모르고 있다. 여전히 사람을 자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구성원들을 교묘하게 착취하는 이론들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니 직장인들의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이것은 단순히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과 같은 개별적인 인권의 이슈가 아니다. 인간에게 내재된 이성의 기능에 의해 작동하는 자율성과 독립성에 관한 매우 포괄적인 인간 존엄성의 이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