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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Aug 24. 2020

“허가받은 범죄집단”과 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1.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을 요 며칠 읽었다. 나도 모르게 이 사건에 적극 참여했던 사람이라 전체적인 줄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에 근거한 문장 하나하나를 이렇게 꼼꼼히 써 내려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여러 필진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개인적으로 전 국민의 필독서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작년 여름, 그러니까 윤석열과 그 심복들이 조국 교수가 장관 취임을 못하도록 광란을 일으킬 때부터 검찰조직을 “허가받은 범죄집단”이라고 규정해왔다. 왜 그런지 이 책에서 소상히 그 역사를 밝히고 있다.     


나는 그때부터 언론사 기자라고 부르지 않고, 언론사 종업원들이라고 불렀다. 이들이 “허가받은 범죄집단”과 공모하여 적극적으로 국민을 속여 왔기 때문이다. 나쁜 놈들이다.     


그 사실 또한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서초동과 여의도에서 밝힌 촛불은 조국 장관이나 정경심 교수와 그 자녀들이 당하는 고통에 공감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군대와 국정원 등 공권력을 가진 집단이 범죄의 소굴이었던 독재시대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한편으로 검찰조직이 무서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검찰조직이 저지르는 저 광란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남은 무소불위의 공권력을 가진 검찰조직을 해체하는 수준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 시민들은 깨달았다.      


2.

2019년 10월 14일 조국 장관이 사임했다. 나 또한 그동안 쌓인 피로 때문에 휴식이 필요했다. 부산의 어느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조 장관의 사임소식을 들었다. 곧바로 페북에다 이렇게 내 심경을 썼다.    

 

— "'허가받은 범죄집단'의 엄청난 죄과를 씻기 위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는 “희생제물”을 필요로 했다. 저 사악한 기득권 집단을 붕괴시키는 것은 이제 시민들의 몫이다. 조국 장관을 끝까지 응원할 것이고 앞날에 행운을 빈다.” —     


분노의 마음으로 이 짧은 글을 쓸 때, 르네 지라르(Rene Girard)가 말했던 희생양 메커니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조국이 죄 많은 우리 민족을 대신해 희생양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원시부족들은 자신들의 죄과를 떠넘기는 희생제의(犧牲祭儀)를 통해 공동체의 안녕을 유지했다. 대한민국이 언제까지 저 미개한 문화를 답습해야 하는지 참담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을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이었다. 17살의 전태일은 평화시장 피복 노동자 시다로 들어갔다. 12살에서 15살 정도 되는 여공들은 하루 16시간씩 환기시설도 없는 좁은 작업실에서 노동하고 있었다. 물론 본인도 그렇게 일했다. 이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자 했다. 근로기준법을 배워 사업주들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근로기준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노동청장에게 진정서를 수없이 보냈다. 효험이 없자 근로감독관들에게도 보냈고, 심지어 대통령에게도 보냈다.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업주들은 자신에게 더 큰 횡포를 가했고 불이익을 주었다.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을 개혁하려는 것이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여공들이 편안히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운영하는 꿈도 꿨다. 노동청 공무원들은 그럴수록 전태일을 더욱 멸시했고 탄압했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는 공권력에 의해 짓밟혔다. 전태일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1970년 22살의 나이에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치르면서 자신도 분신하고 말았다. 『전태일 평전』은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전태일은 우리 민족이 저지른 죄과를 짊어지고 간 희생제물이었다.     


이 충격적인 사건 이후, 소위 지식인들은 당시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한국이 낳은 위대한 신학자 안병무(1922~1996) 선생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일찍이 독일 대학에서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여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학생들을 가르치는 와중에 전태일 사건을 접한 것이다. 그는 전태일이 바로 이 시대의 예수라고 생각했다. 독일 교회의 재정 지원을 받아 1973년 <한국신학연구소>를 세워 민중들의 삶을 신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의 신학을 “민중신학”이라 부른다. 지금까지 좋은 문헌들이 쏟아져 나왔고 나도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요즘 페북에서 유명한 신학자 김근수 선생이 연구하고 가르치는 남미의 “해방신학”과 같은 부류의 한국 신학이 탄생한 것이다.     


전광훈 일당과 개신교 목사들이 "예배가 곧 생명"이라고 떠드는 저 광란은 윤석열과 그 똘마니들의 행태와 그 속성상 동일하다. 조국의 희생이 없이는 온 국민이 윤석열과 검찰조직의 민낯을, 나아가 언론사 종업원들의 민낯을 이렇게 확연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두고 보라. 전광훈 일당은 자신들의 죄과를 씻기 위해 언젠가 누군가의 희생제물을 요구할 것이다. 전광훈을 포함한 저 미개한 종족들에게는 그런 푸닥거리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3.

검찰조직이 얼마나 썩었는지 아무리 글을 써봐야 소용이 없었다. 검찰개혁을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이 없었다. 전태일이 진정서를 아무리 많이 보내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과 같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이뤄내도록 지시를 해도 일부 깨어있는 지식인들 몇몇 이외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오히려 지식인을 자처하는 많은 이들이 조국을 빈정거리고 있었다. 공수처 법안이 이인영 원내대표의 노력으로 통과되었지만, 그 전에는 대부분은 반신반의했다.      


이런 틈을 타 윤석열은 검찰개혁에 정면으로 저항했다. 박상기 전임 법무장관은 거의 투명인간처럼 취급당했다. 윤석열은 조국이 장관이 되어 검찰개혁을 실제로 해낼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조국을 낙마시키기 위해 온갖 꼼수를 다 부렸다. 검찰의 모든 능력과 자원을 동원해서 조국네를 수사했다. 표적수사, 별건수사, 별별건수사, 별별별건수사, 강제수사, 목적수사, 기우제수사도 모자라 불법적인 언론플레이를 해왔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윤석열은 국회에서 조국네의 범죄증거는 차고도 넘친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엄청난 수사력을 동원했음에도 나온 것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다.     


검찰조직의 불법성과 부패상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오히려 지난 역사에서 검사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사지로 몰아넣었는지 알게 된 것이다.     


4.

이 과정에서 나는 고위공직자들의 행태를 보았다. 내가 여기서 누구라고 밝히지는 않겠지만, 윤석열의 광란을 뻔히 보면서 일언반구도 못하는 자들을 알고 있다. 비겁한 자들이다. 국회의원에서부터 고위임명직들까지 대부분 조국을 멀리했다. 혹시 범죄혐의라도 나오는 날에는 자신의 처지가 곤란해지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행정직들이 함부로 입을 열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얼마든지 이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면서 윤석열과 검찰의 불법적인 행태에 대해 철저히 감사하고 꾸짖어야 할 국회의원들까지 찍소리도 못하고 있었다. 조국을 빨리 사임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한 의원들도 있었다. 전태일이 그렇게 많은 진정서를 넣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공무원들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전태일을 억압했고 멀리했다. 똑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달랐다. 윤석열의 행태를 정면으로 비판했고 대결했다. 설사 조국네에서 자그마한 범죄혐의가 나오더라도 같이 비를 맞겠다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이것이 진정한 지식인의 태도라고 본다. 왜냐? 조국네의 범죄혐의를 밝히기 이전에 이미 수사과정에서 윤석열의 행태가 법의 정신에서 크게 벗어났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언론사 종업원들과도 대결했다. 특히 KBS의 김귀수 법조팀장과 성재호 사회부장은 김경록 PB의 인터뷰를 완전히 조작왜곡하여 방송했다는 사실을 폭로하기까지 했다. 보편적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유시민처럼 그렇게 행동했어야 했다.      


검찰조직은 거대한 사회악이다. 거악은 너무 커서 눈에 띄지 않고 오직 표창장만 눈에 들어온다면, 그런 자를 어떻게 지식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전태일이 살던 시대가 아니지 않는가? 나는 이 사태에 침묵하거나 오히려 조국을 나무라는 교수들, 국회의원을 포함하는 고위공직자들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 나는 이들에게서 세상을 보는 비열한 눈을 보게 된 것이다. 이들은 자기 앞가림만 하려고 할 뿐 국가라는 공동체와 이 공동체의 건강함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적 윤리와 사회정의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무엇을 하려고 배웠나? 그동안 쌓아온 경륜을 어디에 써먹으려고 그렇게 높은 자리에까지 올랐는가? 이런 위기의 순간에 쓰려고 배우고 경험했던 것 아닌가?     


5.

나는 특히 이낙연 총리의 행태에 크게 실망했다. 도대체 총리로서 성취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말은 누구나 멋지게 할 수 있다. 고위공직자는 언제나 위기의 순간에 능력이 드러나는 법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그랬고, 조선의 이순신 장군이 그랬다. 프로이센의 헬무트 폰 몰트케 장군이 그랬고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그랬다.


국무위원이란 헌법 상 국가운영의 모든 영역을 책임지는 최후의 보루(the last resort)다. 최남단 마라도와 이어도, 그리고 최동단 독도와 최서단 백령도에서 일어난 일들도 궁극적으로는 어느 국무위원의 책임으로 귀속된다. 그래서 국무위원이라는 직무가 중요하다. 윤석열은 국무위원이 아니다. 그러므로 검찰청의 모든 업무처리와 그 행태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국무위원인 법무장관에게 귀속된다. 그런데 조국이 법무장관 취임 후 가족의 수사상황을 보고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국무위원 중 누가 보고를 받아야 하는가? 당연히 국무총리가 받아야 한다.     


국무위원을 총괄하는 국무위원인 국무총리가 직접 윤석열 검찰총장을 불러서 법무장관의 가족 수사 건에 대해선 총리에게 직접 보고하라고 지시했어야 한다. 국무총리라는 직무는 그러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내 눈에는 오히려 윤석열 앞에서 이낙연은 벌벌 떠는 것처럼 보였다. 그 많던 총리의 권한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참으로 괴이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엄중히 지켜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고위공직자는 자신이 맡은 직무에 자신의 삶 전체를 걸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겠으면 공직에 나서면 안 된다.     


대통령이 장관을 겸무할 수 없으니 장관들을 직접 통솔하는 총리가 조국 장관이 보고받지 않겠다고 천명한 특정사안에 대해서만큼은 임시로 겸무했어야 하는데, 이낙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 나도 모르겠다. 막 나가는 윤석열에게 쫄았다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수가 없다. 이낙연은 윤석열을 불러다 엄하게 꾸짖었어야 했다. 지금 추미애가 윤석열을 꾸짖듯이. 만약 이낙연이 총리의 직무를 엄정히 수행함으로써 추미애만큼이라도 윤석열의 광란을 제압했더라면 굳이 조국 장관이 사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인사조직 전공자로서 분명히 말하겠다. 건강한 조직이 되려면 어떤 곳에서도 구멍이 나지 않도록 백업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조국 가족의 수사 건은 어떤 국무위원도 책임질 수 없는 사태를 방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이낙연의 국무총리로서의 직무수행은 낙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 설명하겠다.)     


6.

아무튼 이 책은 나에게 하나의 역사이기도 하고 역사기록이기도 하다. 내 후손들에게 이 시대에 벌어진 검찰조직의 광란에 대해 내가 어떤 생각을 했던 사람이었는지 보여줄 수 있는 정확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 기록은 내 생각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상의 업무에서 벗어나 은퇴 후,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경험했던 사건기록이다. 다시 한번 이런 책을 만드는데 수고한 모든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의 말씀을 전한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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