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동석 Aug 26. 2020

교육을 얘기하고 싶다(2)

교육개혁의 전제

어쩔 수 없이 몰상식하게 긴 글이 됐다. 교육에 관심 없는 사람은 안 읽어도 된다.


1. 이 글을 쓰는 이유


교육에 대해 얘기하려는 이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두 번째를 쓰려다가 이런저런 일 때문에 멈추었다. 이전에 첫 번째로 썼던 시작 글은 아래를 참조하면 된다, 


https://www.facebook.com/dongseok.tschoe/posts/10213478101746723


열린민주당TV에서 주진형 선생이 진행하는 재미있는 인터뷰 시리즈를 보면서 원래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범 선생의 인터뷰 때문에 평소 교육에 관한 내 생각을 적어보기로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t1zqS3aqaA&feature=share


2. 교육이란 무엇인가? 이성의 기능에 대하여


인터뷰 내용의 첫인상부터 말하자면, 이래서 교육개혁이 안 되는구나, 라는 느낌이었다. 이범 선생이 문재인 캠프에서도 일했고, 더구나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의 정책자문관을 했다고 하니 김상곤 선생이 왜 교육개혁과 관련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우물쭈물한 것인지 이해가 됐다. 유은혜 장관에게도 교육개혁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었다. 말하는 걸 들어보면 직감적으로 안다. 안 되겠구나!


이번 인터뷰를 통해 이범이라는 교육평론가가 교육에 관해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이며, 그동안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 교육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안타까웠다. 더구나 사상사에 관심이 많고 철학사상사도 공부를 했다면서, 인터뷰 내용에서는 적어도 교육에 관한 철학적 사유의 틀이 기존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컸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학교 시험성적을 높이는 것인가? 물론 부분적으로 아주 쪼끔은 그런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교육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면 좋은(원하는) 대학 입학? 좋은(원하는) 직장 취업? 이것도 교육의 본질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이란 뭔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물론 좋은 말이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인간답게 만든다는 것인가? 인류 역사를 통해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어떤 방식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방식은 아니었다. 교육을 받아서 인간다워진 경우란 역사적으로 매우 드물고, 오히려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리 조선시대에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교육했다. 성리학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라고 배우고 가르쳤다. 조선왕조 5백 년간 그렇게 살았다. 그것이 그 시대의 매트릭스였다. 여기서 빠져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나라가 스스로 서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부정부패가 심했고 스스로 외세에 무릎을 꿇었다. 


매트릭스 matrix란 인간이 성장·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과 환경조건을 제공하는 기본 토대를 말한다. 특징은 매트릭스에 갇혀 있는 사람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지 불능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오로지 깨달은 소수의 사람만이 그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에서도 그런 의미로 설정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는 현대화된 온갖 교육방식을 도입했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표준화된 교육이고 획일화된 교육방식이다. 이런 교육의 혜택을 듬뿍 받은 사람들이 사회의 상층부와 기득권을 차지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기상천외한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있다. 그것도 합법적으로 말이다. 선진국이자 초강대국인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합법적인 억압과 착취가 만연한 나라다. 그것을 레귤러토리 캡처(regulatory capture)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상층부 기득권층에서 자기들끼리 짜고 고스톱을 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을 얘기하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에 먼저 대답해야 한다. 인간에게만 생물학적인 본능을 넘어선 형이상학적 교육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 사물, 사태, 현상 등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구전 또는 문장으로 가르쳐서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신비로운 행위를 하는 유일한 생명체가 인간이다. 물론 다른 동물들도 자기 새끼들을 훈련시키는 등 생존하는 법을 가르친다. 다만 이들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교육”이란 생물학적인 본능을 넘어서 인간에게만 특유한 어떤 행위를 의미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오늘날 인간만이 이런 문명을 건설한 이유는 그런 본능적 생존법을 넘어서는 독특한 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교육이다. 인간은 어떤 사실(事實, fact)을 분석하여 서사(敍事, narrative)를 붙이고 그 서사를 통해 이 세계에 의미와 가치와 목적을 부여한다. 이 세계를 개념화(conceptualization)한다는 말이다. 인간은 그렇게 종교를 만들어내고 과학을 발전시켰다. 


이 세계를 개념화하는 놀라운 능력이 인간에게 디폴트(default)로 주어져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문명이란 인간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개념체계의 총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명을 발전시키려면 지금까지 활용해왔던 개념체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개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상상력이 필요한데, 새로운 개념체계를 만들어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곧 교육이다.


칸트는 교육을 이성(理性, reason, Vernunft)의 기능을 활성화시킴으로써 가능하다고 규정했다. 인간은 내재된 이성의 기능을 작동시켜 문명을 발전시킨다. 이성의 기능, 즉 생각하는 힘(사고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말이다. 교육이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여기엔 합리적 사고, 비판적 사고, 추론적 사고가 핵심을 이룬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사고력을 발현시키는 방식은 인구수만큼 다양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표준화된 교육은 존재할 수 없으며 획일화된 교육방식은 인간을 억압하는 행위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교육은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전혀 길러주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억압하고 있다. 시험점수 좋은 애들이 일류대학을 졸업한 후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보라. 그들은 대부분 이성의 기능이 파괴되어 있다.


3. 우리 교육의 현실에 대하여


자, 이제 이범 선생이 나열한 우리 교육의 현실을 보자.


① 교권이 후진적이다.

② 입시제도가 개판이다.

③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다.

④ 대학의 재정이 형편없다.


다 맞는 얘기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인터뷰에서는 해결책이 불충분하다. 아마도 인터뷰 시간의 제약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래에 쓴 글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여러분도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https://firenzedt.com/?p=9013


일부 맞는 얘기는 있다. 그러나 상상력이 부족하다. 이범 선생의 지적을 보면, 타이타닉호가 갑판 위의 어질러진 의자들과 지저분한 쓰레기를 잘 정리하면 침몰하지 않고 괜찮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것은 갑판 위의 의자가 삐뚤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타이타닉호 침몰의 원인은 선박의 설계가 잘못되었고, 선박의 진행방향을 잘못 잡았고, 북대서양에 떠도는 거대한 유빙을 조심하라는 신호를 무시했고, 게다가 칠흑 같은 밤에 최고속력으로 달렸다는 것이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있는 유럽 최대의 조선소에서 건조한 세계 최고의 타이타닉호가 유빙에 깨지지 않는다는 믿음의 매트릭스에 갇혀 있었다. 적어도 선장은 그랬다. 


독일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김누리 교수가 방송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이 있다. 그것을 다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으로 편찬했다. 다양한 이슈들을 독일 사회와 비교하면서 아주 쉽게 설명하고 있다. 대학제도와 관련해서는 1. 국립대학의 등록금 폐지(무상교육), 2. 국립대학의 네트워크화(서열화 폐지), 3. 대학입시제도 폐지, 4. 대학운영의 민주화 등이다. 이범 선생이 곤란하다고 반론을 편 것은 주로 2번과 3번이다. 


이범 선생은 독일에도 입시제도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오해한 것이다. 독일 대학은 입시제도가 없다.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졸업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학의 원하는 학과에 원하는 때에 입학해서 공부할 수 있다. 무슨 말이냐? 고등학교 졸업시험인 아비투어를 치고 합격하면 되기 때문이다. 고교 졸업시험이지 입학시험이 아니다. 


아비투어도 전국 일제고사가 아니고 주별로 시험을 치르거나 일정 지역별로 시험을 치르기도 한다. 심지어 고교별로 시험을 치기도 한다. 그러면 지역별 학교별 학력편차를 어떻게 보정하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교육당국은 그런 무식한 질문을 한마디로 무시한다. 모든 학교교육의 환경조건을 비슷하게 조정하기 때문이다. 아비투어라는 졸업시험은 각 주의 교육당국과 개별 학교의 성적처리를 신뢰한다. 정상적인 졸업생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누구든 입학할 수 있다. 


뒤늦게 공부에 대한 열정이 생기는 학생들도 인문계 고교로 전학해서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고 아비투어를 치면 된다. 아비투어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합격한다. 떨어졌더라도 다음에 다시 치면 된다. 학생들에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기회가 늘 열려있다. 서열화, 계급화, 차별화, 경쟁화가 교육계에 끼어들 틈이 없다. 독일은 학생들이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목숨 걸고 경쟁해야 하는 병목현상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다.


1980년대만 해도 젊은이들의 대학진학률이 25% 내외였다. 많은 독일 학생들이 대학을 가지 않으며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차별받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운영에서 고급인재의 필요성은 앞으로 더욱 증대할 것이기 때문에 당시 정치인들은 고민이 많았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도록 유도했다. 해서 지금은 대략 35~40%까지 올라간 것으로 안다. 


예를 들어, 고교 졸업생이 꼭 가서 공부하고 싶은 전공이 의대, 법대, 상대 등과 같은 입학제한 학과라고 치자. 이런 경우에는 1~3년 정도 기다리면 입학할 수 있다. 그런데 무슨 입학시험이 있다는 말인가? 독일에서는 우리와 같은 지옥 수준의 경쟁적 입시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입학해도 중도에 탈락하는 경우는 아주 많다. 특히 입학제한 학과에는 더 심하다. 1980년대 내가 다니던 대학의 경제경영학과는 매년 입학생은 500명 정도였는데, 졸업생은 130~150명 수준이었다. 나머지는 늘 중도에 탈락한 것이다. 탈락한 학생들은 대학공부가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는다. 오늘날 실업률은 거의 완전고용에 가깝다.


독일 교수들은 일반적으로 학생들의 학업에 관한 한 매우 엄격하고 심지어 잔인하기까지 하다. 수준이 안 되는 학생들은 가차 없이 탈락된다. 왜냐?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빚진 게 없기 때문이다. 비싼 등록금에 의존하는 영미식 대학의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친절하고 관대할 수밖에 없다. 교수들이 학생 등록금에 신세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립대학을 축소하고 네트워크화된 국립대학 체계로 전환하되 무상교육을 실시해야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해진다.


4. 교육개혁의 전제에 대하여


나는 우리 사회를 서계차경(序階差競) 사회라 부른다. 어느 영역에서나 우리의 일상은 서열화, 계급화, 차별화, 경쟁화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다. 매트릭스인 셈이다. 태초부터 그렇게 설계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이범 선생은 국립대학을 수평적 네트워크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사립대학들이 치고 올라와서 국립대학을 능가하는 일류대학으로 진화할 것으로 믿는다. 이런 엉뚱한 믿음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낡은 매트릭스에 갇혀있다.


우리 사회 전체의 모든 분야를 분권화하여 수평적 네트워크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상상하고 점차 서계차경을 없애면서 연대(solidarity)와 보충(subsidiarity), 협력(cooperation)과 합의(consensus)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상상하고 그렇게 노력하면 우리를 옥죄고 있는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범 선생은 김누리 교수가 제안하는 내용의 핵심을 오해한 것 같다. 김누리 교수는 인간과 교육에 관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범 선생은 그렇게 하면 이것저것들이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곤란하니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교육전문가들이 맨날 주야장천 주장하는 내용이다. 


지옥과 같은 경쟁구조를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구조로 바꾸어 우리의 문명을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게 하자는 것인데 교육전문가들은 그런 상상을 하지 못한다. 사립대학들도 살려서 대학들에게 돈을 퍼부으면 학생 1인당 교육비가 늘어나서 교육의 질적 수준이 좋아지게 될 것으로 믿는다. 이것 또한 믿음의 세계이자 낡은 매트릭스다.


우리는 이미 예전부터 사립대학 경영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알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커녕 서계차경으로 학생들의 영혼을 죽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최근 연세대의 교육부 감사에서 지적된 것만 봐도 수사기관에 수갑 차고 끌려가야 할 교직원들이 한 둘이 아니다. 연세대가 저 꼴인데 이렇게 많은 사립대학들을 어찌할 것인가? 지옥과 같은 경쟁구조를 해체하지 않고는 부정과 부패, 나아가 억압과 착취를 막을 길이 없다. 우리 사회의 모든 경쟁구조와 계급적 피라미드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오래전에 한국장학재단에서 운영하는 지도자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연락을 받고 사회봉사차원에서 승낙했다. 한국장학재단의 혜택을 받는 학생들 중 10여 명 정도를 배정받아 1년간 멘토로서 지도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멘토들이 양재동에 있는 어느 호텔에 모여 특강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당시 강사가 연세대 정갑영 총장이었을 텐데, 이 양반이 연세대의 재정상황을 보여주면서 세계적인 대학들과 비교하고 있었다. 세계 일류대학으로 발돋움하려면 얼마를 더 투자해야 한다는 둥 한 시간 내내 돈돈돈 얘기만 하다가 끝났다. 나는 미쳤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교육문제를 얘기할 때, 자꾸 돈 문제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접근이다. 독일은 패전 후, 아무것도 없는 폐허 속에서도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교육은 돈이 아니라 개념체계의 문제이고 상상력의 문제다. 상상력에 의해 “교육에 관한 완전히 새로운 개념체계”가 만들어지고 온 국민이 그 개념체계를 공유하고 있으면 교육개혁은 이룩된다. 돈 얘기부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돈은 국민이 형편 되는 대로 십시일반으로 모으면 된다. 국가의 재정형편에 따르면 된다는 말이다.


인터뷰에서 사립대학 문제와 관련해서는 주진형 선생이 나와 비슷한 견해를 잠시 피력하다가 그냥 넘어가고 말았는데, 사립대학은 문자 그대로 사립대학이다. 국고를 사립대학에 집어넣을 필요가 없다. 등록금을 2~3배 더 받아서 운영하든 말든 그것은 사립대학 스스로 해결할 문제기 때문이다. 재정형편상 운영이 어려운 사립대학들은 국립으로 전환해서 점차 국립대학의 비중을 높이고 사립대학은 대폭 줄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0조의 정신에 부합한다. 빈부의 차이가 교육의 차별로 나타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교육에 관한 한, 우리 사회는 위헌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5. 링크된 신문 칼럼에 대하여


나는 김종영 교수를 그의 책을 읽고 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신문 칼럼을 보고 반가웠다. 그는 나와 유사한 견해를 가진 사회학자로 김누리 교수의 견해에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 나는 김종영 교수의 두 권의 책 『지배받는 지배자』와 『지민의 탄생』을 읽었다. 전자는 미국에 유학하는 동안 지배받고 살던 사람들이 한국에 돌아와 지배자 노릇을 하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연구한 책이고, 후자는 지식으로 무장한 깨어있는 시민들이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여 기득권층의 거짓을 무너뜨리는 사례들, 예를 들어 삼성 백혈병 사태, 광우병 사태, 황우석 사태, 4대 강 사업 등을 연구한 책이다. 그의 연구는 언제나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사실을 기술할 뿐이다. 그런 서술이 오히려 민주시민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에게도 좋은 시사점을 주었다. 그의 연구 활동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와 그 해결책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성취라 할 수 있다. 이런 사회현상에 대한 질적 연구로서 매우 값진 성과다. 앞으로도 사회사상가로서도 대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기 반론을 제기한 최성수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왜냐? 최 교수에겐 우리 사회의 많은 지식인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과 그 제도에 대한 잘못된 현실인식과 안이한 역사의식, 나아가 그 해결책에 대한 결핍된 상상력은 여전히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상상력의 결핍. 이것은 우리의 잘못된 교육과 교육제도가 낳은 아주 고질적인 병폐다. 이것을 고치기 위해 타고난 이성의 기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이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6. 인간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매트릭스를 위하여


앞서 말했지만, 인간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나아가 그런 인간에게 나타난 교육이라는 현상을 어떻게 개념화할 것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사유가 필요하다. 이런 논의를 할 때마다 나는 늘 아쉬워한다. 이범 선생이나 최성수 교수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에게서 근본부터 사유하려는 고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온 뼈저린 고난의 역사를 깊이 반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인은, 아마도 우리의 (교육) 현실을 옥죄고 있는 매트릭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매트릭스를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레짐작을 하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1980년대, 그러니까 전두환의 군홧발이 전국을 짓밟고 있을 때, 독재타도 호헌철폐의 구호가 끊이질 않았다. 한국은행 주변의 남대문과 소공동 일대는 늘 최루가스와 깨진 보도블록 조각이 거리에 즐비했다. 나는 한은 직원 신분으로 서독연방은행 연수를 몇 달간 갔었다. 내 생애 처음 해외여행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리자 완전히 다른 세상이 보였다. 일주일쯤 지나자 연수담당 직원이 나에게 독일어 연수를 받으면 어떻게냐고 제안했고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연수담당자가 마련해준 두둑한 연수비를 챙겨 넣고, 바이에른 주에서 가장 큰 킴제 호숫가의 휴양도시 프린암킴제(Prien am Chiemsee)에 도착했다. 괴테 인스티투트가 정해 준 숙소에 짐을 푼 후, 마을을 둘러보면서 여기는 분명 천국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인간이 이런 세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 눈 앞에는 분명 천국이 펼쳐지고 있었다. 내가 경험하던 참혹한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인간적인 나라를 만들었는지 이걸 연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독일 속으로 빠져들었다.


유학기간 내내 경영학자가 되는 훈련을 받았다. 인간, 조직, 직무, 경영, 리더십, 직무설계와 조직설계, 보상체계 등 온갖 새로운 개념체계들을 익히고 그 응용방법을 배웠다. 낡은 패러다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된 것이다. 기득권자들이 맘껏 억압하고 착취할 수 있도록 설계된 후진 매트릭스에서 현실의 인간적이고 아름답게 설계된 매트릭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의 삶과 상상력은 여기서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나 같은 사람이 교육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나는 이 교육 얘기를 기회가 닿는 대로 계속 이어가려고 한다.


(후기) 


앞으로는 대충 이런 문제의식을 다룰 것이다.


- 인간이란 무엇인가?

- 교육이란 무엇인가?

- 인간과 교육을 가능케 하는 환경조건은 어떤 것인가?

- 조직의 분권화는 어떻게 할 것인가?

- 개인의 자율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

- 조직 간, 개인 간의 네트워크는 어떻게 형성할 수 있는가? 


등등을 얘기할 것이다.


이렇게 교육개혁과 사회개혁을 추진해 나아가는 데는 돈이 이슈가 될 수 없다. 돈은 재정형편에 맞게 쓰면 될 뿐이다. 돈 때문에 어렵다는 것은 저 빌어먹을 매트릭스 안에서 그냥 살자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명심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의사들의 파업사태를 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