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1.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 나는 멘붕에 빠졌다. 만약 정동영이 선출되었더라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곤 했다. 소용없는 짓이지만 너무나 아쉬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정동영은 MBC 뉴스데스크의 명성을 등에 업고 1996년 정치판에 뛰어들어 자신의 입지를 굳힌 정치인이다. 그는 지금까지 부정부패나 스캔들에 연루된 적이 한 번도 없이 깨끗한 정치를 했다. 특히 2000년 6.15 공동선언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2004년 통일부 장관이 되더니 온갖 난관을 뚫고 개성공단을 만들어냈다. 그의 성취는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 후 대통령 후보가 되었으나 이명박이라는 희대의 사기꾼에게 밀려 낙선했다. 한번 실패한 후, 정치적 행보에 삑사리를 내는 바람에 21대 국회에 진입하지 못했다. 그는 다시 정치판에서 일어서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니고, 이명박이나 박근혜에게 표를 주는 대다수 국민의 마음 상태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성공했으니까 아버지에 대한 국민적 향수가 있으니까 대통령이 되면 잘하겠지 하는 안이한 마음으로 선거에 임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시 내 일도 바빠서 정치권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바람결에 들어도 이명박은 이미 사기꾼이었고, 정동영은 언론인과 정치인으로서의 삶에서 도덕적으로도 사회적 성취로 비교해서 이명박보다는 월등한 사람이었다. 인사조직전문가로서 대충 평가해도 그랬다. 그럼에도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하지 않았고, 결과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국정운영이 사기꾼에게 넘어갔고, 다시 더 심한 무당에게 나라를 통째로 넘겨주는 불상사가 생겨난 것이다. 나는 사회적으로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런저런 일을 해왔다.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기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2.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의사협회는 의사들의 이익집단이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어찌 자신들의 대표를 저런 망나니처럼 보이는 사람을 뽑아 놓았을까? 그러고는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의협회장이라는 사람이 말하거나 구호를 외치는 걸 보고는 매우 놀랐다.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의 나쁜 점만 뒤섞어 놓은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꼭 저런 식으로 해야만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저 사람이 진짜 의사 맞나? 어떻게 저렇게 멍청할 수가 있지? 의사들이 저 사람을 자신들의 대표라고 진짜 뽑았나? 의사들은 의사협회장의 직무가 무엇인지 아무 관심도 없나? 그렇다면 의사협회는 뭘 하는 곳인가? 저 단체는 도대체 누구를 대변하고 홍보하고 협상하는 곳인가? 의사들이 국민에게서 신뢰 얻기를 포기한 것인가?
국민이 꼼꼼히 따져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진실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분별하지 못할 경우, 이명박과 박근혜를 뽑음으로써 막대한 국민적 손실과 국가적 내상을 입었다. 엄청난 피해를 보고 나서야 시민들이 촛불을 든 것이다. 국민들 개개인이 정신 차리지 못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그제야 안 것이다.
그래서 독일은 학교에서부터 정치교육을 시작하고, 사회에 나오면 또다시 정치교육을 받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주어져 있다. 정치야말로 국민 개개인의 삶에 너무나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산별노조위원장이나 이익단체의 대표가 되면 자연스럽게 존경을 받는다. 꼭 그 자리에 갈만한 인물이 그 자리에 가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엔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정치를 혐오하면 그 폐해는 반드시 소속된 구성원들에게 돌아간다.
의사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진정으로 국가의 보건의료를 위해 어떻게 국민에게 홍보할 것인지, 공공의료서비스가 어떤 상황인지, 의료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진료과목별로 의사들이 얼마나 부족한지, 병원을 지하철이나 길거리에다 광고해야 하는지, 병원 의사들에게 적용되는 인센티브제도가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 현재의 의료수가는 적정한지, 1,2,3차 병원의 의료서비스 전달체계를 정상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염병 방역과 관련해서 보완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의료인으로서의 간호사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이 이슈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의사와 간호사의 상호작용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옳은지 등을 국민에게 소상히 홍보하여 국민적 지지를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바뀔 가능성이 높아진다. 공무원들이 잘못한다고 의사들이 백날 욕하고 있어 봐야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줄 국민은 없다.
3.
의사협회는 의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다. 그런 단체가 국민에게 선전·선동으로 막 나가면 어떻게 될까? 의사들을 대표하는 망나니를 쳐다보는 국민의 마음은 어떨까? 나는 그 사람 얼굴만 보고 있어도 목소리만 들어도 섬뜩하고 살기를 느낀다. 그래서 영상을 얼른 돌린다.
오래전, 내가 국소마취로 간단한 수술을 받고 있을 때였다. 물론 대학병원이니까 의대 교수가 직접 수술을 하면서 수련의들을 혼내고 있었다. “똑바로 해라”, “너는 이것도 못하냐” 수준의 말은 아주 고운 말이었다. 욕지거리를 하면서 나무라거나 수술도구를 집어던지는 소리도 들렸다. 내가 외래진료를 받을 때도 수련의가 옆에 있었는데, 환자인 내가 보는 앞에서 수련의를 심하게 혼냈던 바로 그 교수였다. 실밥을 뽑은 후 다시는 그 병원을 찾지 않았다. 우리나라 의료인 양성체계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들었지만, 내가 뭘 안다고 떠들겠는가?
이런 경험을 한 후, 한국의 의료서비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80년대 독일 의사들의 의료서비스를 받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아마 더 그랬을 것이다. 초등학교 다니던 아이들 또한 아프면 독일 의사들의 도움을 받았다. 나는 허우대만 멀쩡하지 생각보다 약골이라서 독일에서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한국의 의사들과 비교하면서, 의사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윤리의식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독일 의료서비스를 생각하면서 나름대로의 정리하고 있을 때, 마침 서울대 의대와 병원에서 교수들과 의사들에게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몇 차례 강의를 한 후, 분당서울대병원에서도 의뢰가 와서 그곳에서도 여러 차례 강의를 했다. (이때의 기록은 이곳을 참조하면 된다. https://mindprogram.tistory.com/340)
강의 후 교수들과 함께 식사를 하곤 했다. 교육·연구·진료의 세 분야를 골고루 잘하는 훌륭한 의사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망나니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재용에게 프로포폴을 불법으로 주사한 의사들만 기억한다. 물어봐도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던 불친절한 의사들, 비리를 저지른 의사들만 기억한다. 언론은 의사들의 잘못된 행태만 보도한다. 그것은 의사들에게만 손해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건강에 큰 손실이다.
4.
끝으로 나는 의사들에게 이렇게 권하고 싶다. 자신의 분야에만 매달리지 말고, 조금은 괜찮은 의사협회장을 뽑으라고. 나아가 좋은 정치가를 뽑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