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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Sep 27. 2015

영국에서의 결혼(1)

프러포즈는 남자의 것이지만, 결혼식은 여자의 것

영국에서의 결혼(1)

프러포즈는 남자의 것이지만, 결혼식은 여자의 것




딸이 영국에서 대학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예상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애들이 공부를 마치면 귀국할 것으로 예상했다.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들이 외국에서 살게 되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한국사람과 결혼할 것으로 생각했다. 


딸이 영국 남자와 결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강렬한 느낌을 갖게 된 것은 2011년 여름이었다. 우리가 그 해 독일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했는데, 딸이 남자 친구와 함께 독일로 오겠다는 것이었다. 아내가 딸더러 남자 친구 데리고 오지 말고 혼자 오라는 강력한 "엄마의 명"에 따라 우리 셋이서만 여행을 했다.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이 나면 제주로 보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자식들을 보다 더 큰 세계에서 자신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기회를 갖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중학교를 마치고 해외유학을 선택했다. 국내에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집에서 혼자 공부하면서 차라리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잘 적응했다고 보았는데, 중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검정고시 얘기를 하는 바람에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 고등학교 과정을 집에서 홈스쿨링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학원을 보내서 검정고시를 보도록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아들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아보니, 해외유학을 보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심산으로 그런 얘기를 했던 것이었다. 여기서부터는 할 얘기가 많으나, 아들이 결혼할 즈음에 가서 하기로 하고...


아이들은 둘 다 해외유학을 선택했다. 일단 우리와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우리 부부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각자 유학 갈 나라와 학교도 알아서 선택하도록 했다. 그 학교를 찾아가는 것도 각자 알아서 해야 했다. 일일이 그런 뒷바라지를 할 만큼 우리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인들 자식들을 멀리 떠나보내는 마당에 걱정이 왜 없었겠는가?  


아무튼 우리 부부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이 세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방향성과 삶의 철학적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닦달한 적은 거의 없다. 아주 어렸을 때, 피아노, 태권도, 바이올린 등에 노출시켜 보았다. 아이들이 싫어하면 그만두게 했다. 공부든 뭐든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지, 남이 하라고 하는 공부는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선택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가끔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아는 범위 내에서 조언해준다. 


딸은 에든버러에서 경영학과 독문학을 공부하겠다고 했다. 어떤 것을 먼저 중점적으로 공부하는 게 좋겠냐고 묻길래, 회계학의 복식부기 원리를 먼저 익혀두라고 충고해 주었다. 복식부기는 자본주의 세계가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계산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대화가 주로 오갔다. 하지만 딸이 실제로 그렇게 했는지 나중에 물어보니까 그렇게 한 것도 아니었다. 자식들이 나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물어봤지만, 결국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을 알았다. 좋은 일이고 잘하는 일이다. 무엇이든 질문하되 결정은 스스로 내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주체적인 삶을 스스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것이었다.


딸이 대학을 졸업한 후 귀국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곳에 눌러앉기로 했는 모양이었다. 졸업하는 그해 2007년 여름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 베어 스턴스(Bear Stearns), 블룸버그(Bloomberg)에 합격했다고 통지를 받았단다. 셋 중에서 어디를 가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언론계에 별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던 나는 은행을 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가급적이면 유럽계 은행을 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스위스계 금융기관에 취직했다. 기적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다. 2007년 말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발생한 금융위기 사태가 2008년에는 본격적으로 런던 금융가를 강타했으니 말이다. 베어 스턴스는 망했고 JP모건 체이스에 인수되었다. 2008년 졸업생들부터 영국에도 취업난이 심각해지기 시작했고, 외국인이 영국에서 취업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워졌다. 그래서 삶이란 우연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딸이 일을 잘 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얼마 지난 후 회사는 주말과정의 로스쿨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남자 친구를 만난 것이다. 이런 로스쿨 주말과정에는 꼭 법률가가 되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의 업무와 관련하여 법률적인 사안들을 더 공부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다닌다고 한다. 남자 친구는 영국계 컨설팅회사인 앳킨스(Atkins)의 컨설턴트인데, 법률을 더 공부하고 싶어서 주말과정을 다니던 학생이었다. 거기서 서로 눈이 맞은 모양이었다.


딸의 결혼문제만 해도 그렇다. 아내는 그동안 나와 생각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딸의 신랑감으로 지체 높은 집안의 잘 생긴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기를 속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박근혜 누님의 말씀마따나,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타나서 도와준다고도 하지 않았는가? 아내를 박근혜와 비교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긴 하지만, 아무튼 아내는 꽤 괜찮은 신랑감들을 수배해서 딸에게 들이대기도 했다. 딸은 영 시큰둥했고, 자신이 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금융기관이 한국에는 아직 없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딸이 한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사라졌고, 그곳에서 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남자 친구는 딸에게 프러포즈를 했고 그 둘은 서로 약속을 한 것이었다. 남자 친구는 어느 주말 파리 시내의 근사한 호텔을 예약하고 그곳에서 보내기로 한 모양이었다. 호텔방 화장실이 우리 집 거실보다 컸다는 얘기를 하는 걸로 봐서 얼마나 근사했는지 짐작이 간다. 프러포즈는 파리 시내의 어느 광장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남자 친구가 마련해준 이벤트에 감격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파리 시내 곳곳에서 프러포즈의 쌩쑈를 한 것이었다. 일종의 프러포즈 갈라쇼인 셈이었다.

파리 시내에서 벌인 갈라 쌩쑈의 한 장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2014년 여름휴가를 런던에서 보냈다. 사돈 될 어른들의 초청으로 그 집에서 점심을 같이 하고 오후에는 골프도 같이 쳤다. 시아버지 될 어른은 골프마니아라서 주요한 골프대회에는 반드시 갤러리로 구경 가는 양반이다. 때로는 아들도 데리고 간단다. 우리는 골프를 치면서 자식들끼리 하는 결혼을 우리가 축하해주기로 암묵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중학교 다닐 때부터 심심할 때마다 골프를 가르쳤는데 영국에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남자친구는 거의 프로수준...
시아버지가 될 이 양반은 진짜 골프매니아, 어렸을 때는 유명한 프로선수의 캐디였다는...
나도 젊었을 때는 그래도 좀 쳤고 베스트 스코어가 완오버(73타)였다는 ㅋㅋ.... 골프 끊은지 거의 10년이 다 돼가는데...
알콩달콩 잘 살기를 바란다.


영국식으로 말하자면 프러포즈(약혼식)는 남자의 것이고, 결혼식은 여자의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딸의 결혼식을 위해 <한국의 집>에다 얼른 예약을 했다. 사돈댁의 어른과 친척들 중에 연로한 분들이 많아 한국까지 오기는 어렵다고 해서 최종적으로 영국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어디서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두 젊은이에게 달린 것이다. 한국에서처럼 어른들이 좌지우지하거나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딸은 2014년 여름휴가 때 고성에서 한번 자는 것도 기념이 될 테니 우리 부부를 초대하겠다는 것이었다. 딸 덕분에 고성 호텔에서 하룻밤 자는 호사스러운 경험도 나쁘진 않겠다 싶어 초대에 응했다. 영국 남부 웨스트 서섹스(West Sussex) 아룬델(Arundel) 지방의 앰벌리 캐슬 호텔(Amberley Castle Hotel)이었다. 뭐 좋긴 좋더라마는 너무 비싸서 우리는 다시 그런 곳에서 자지 말자고 했다. 우리가 독일에 살 때는 여행을 해도 항상 캠핑장에서 텐트 치고 자던 사람들 아닌가. 과도한 호사는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이제 생각하니까, 이것들이 이 고성에서 결혼식을 하려고 미리 작전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강력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갤러리

(이 사진은 2014년 8월 2일 앰벌리 캐슬의 오후에 찍은 것과 그날 하룻밤을 자고 그다음 날 3일에 찍은 것들)


앰벌리 캐슬
앰벌리 캐슬
앰벌리 마을
앰벌리 마을
앰벌리 마을
앰벌리 캐슬에서 보는 뒷들판
앰벌리 마을, 주민들의 모임이 있었던 모양인데...
우리가 앰벌리 캐슬 주변을 산책하는 날, 마침 마을의 무슨 합창대회를 하는 것 같더라는....
앰벌리 마을
캐슬에 들어가는 성문
캐슬 정원
캐슬 정원
캐슬 정원
캐슬 정원
캐슬 정원
캐슬 정원
캐슬 정원
캐슬 내부
캐슬 내부
캐슬 내부
캐슬 내부
캐슬 내부
캐슬 정원
캐슬 내부에서 누군가 귀부인 흉내를 내는데...
캐슬 정원
캐슬 정원
캐슬 정원
캐슬 정원
캐슬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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