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청이 주관하는 결혼식과 혼인신고
딸은 앰벌리 캐슬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목사가 헬리콥터 결혼식을 운운하면서 예식을 세일즈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식으로 예식 이벤트를 팔면 교회 재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영국에도 썩어빠진 목사가 있었다는 얘기는 앞에서 했다.
그래서 관청이 주도하는 결혼식을 따로 해야 했다. 앰벌리 캐슬에 초대된 결혼식은 관청이 허락하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번거로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증인만 참석하면 되는 결혼식이지만 양쪽 부모가 모두 참석하기로 했다.
서울의 구단위에 해당하는 런던의 그리니치 버러(Royal Borough of Greenwich)에 살기 때문에 구청의 예식장에서 공무원이 진행하는 결혼식을 다시 한 번 더 치러야 했다. 이걸 통해서도 그동안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다소 해소되는 계기가 되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런던 시내의 먼지를 휩쓸고 다니는 신부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를 말이다.
구청의 결혼식이 끝나고 집 근처 레스토랑에서 양쪽 집안의 식구들끼리 함께 저녁을 먹었다. 다시 집에 돌아오는 길에 뉴질랜드에 사는 둘째 시누이의 딸이 어찌나 면사포를 쓰고 싶어 하는지 레스토랑에서부터 집까지 내내 면사포를 쓰고 왔다. 초등학교 1년생인 이 꼬맹이는 몇 달 전부터 런던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것이다. 아들들은 둘이서 여전히 총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런 차이는 DNA로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 결혼식을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물론 결혼식을 세일즈 하는 헬리콥터 목사가 있긴 했지만, 영국 사회가 우리 사회보다 훨씬 더 이치에 맞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생떼 부리는 사람이 없고 불합리한 주장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명령하는 사람도 없다. 시집살이라는 것이 전혀 없고 시댁과의 관계는 그저 정상적이고도 인간적인 관계다. 오히려 더 친밀한 관계일 뿐이다. 다른 견해와 습속을 존중하면서 서로 대화하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문화가 생활의 곳곳에서 묻어난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이 시리즈에 올린 사진들은 그냥 아마추어들이 찍은 사진일 뿐이다. 신랑과 신부를 각각 따라 다니면서 찍은 프로 사진작가들의 작품이 나올 텐데,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잘 아는 전문적인 사진작가들일 것이다. 그 작품들이 나올 즈음에는 아마도 결혼식의 감동이 조금은 사라진 후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