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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Oct 14. 2015

영국에서의 결혼(4)

즐거움과 의미의 조화

영국에서의 결혼(4)

즐거움과 의미의 조화


1.

공식적인 결혼예식은 정원에서 야외 촬영과 함께 끝났다. 이제 실내행사가 시작된 것이다. 폐백, 케익 자르기, 신발게임, 웨딩 브렉퍼스트, 스코틀랜드 전통춤 및 잉글랜드 춤 배우기, 다음날 오전의 산책 등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기획과 총괄 진행은 신랑의 둘째 누이가 맡았다. 자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호텔 매니저를 통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지휘했다. 이벤트 매니저로서도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2.

폐백이 한국에서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면서 먼저 우리 부부가 시범을 보이고 사돈이 따라 하기로 했었는데, 부끄러운지 그대로 따라 하지는 않고 그냥 사진만 찍었다. 아들 딸 많이 낳아 행복하게 잘 살라는 뜻이라는 말에 영국인들이 즐거워했다. 술은 막걸리로 대신했고, 러브샷도 했다. 이 장면은 아들이 사회를 보면서 설명해 주었다.     


3.

케익은 신랑의 친구가 만들었다. 신랑은 중국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했는데, 이때 만났던 중국인 친구가 지금은 스웨덴의 웁살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곳 대학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 중국인 친구가 케익을 만드는데도 아주 뛰어난 솜씨가 있어서, 부탁을 했더니 결혼식 전날 딸네 집에 와서 모든 재료를 사다가 시루떡과 같은 모양의 케익을 만들어왔다. 영국인들이 이 케익의 맛과 모양을 보더니 모두들 감탄했다. 베이커리를 차려도 성공했을 정도의 솜씨였는데 한국식 시루떡 모양의 서양식 케익이었던 것이다.     


4.

신발게임은 신랑과 신부가 서로를 어느 정도로 이해하는지 알아보는 게임이다. 양손에 신발을 왼쪽과 오른쪽을 한 짝씩 나누어 들고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서 사회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신발을 드는 게임이다. 서로 다른 신발을 들 때마다 하객들이 환호성을 내거나 박수를 치고 즐거워했다. 이 게임의 사회는 신랑 신부의 친구인 신혼부부가 맡았다. 남편은 신랑과 같은 대학 친구인 영국인이고 아내는 캐나다 국적인데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학 관련 대학원 공부를 하다가 만나 사이프러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지난달 신혼여행 중 우리 집 아파트 게스트룸에서도 하루 묵었던 인연이 있는 부부다.  그때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남편이 금년 가을부터 유명한 정치인들을 배출한 체임버에 들어가 새롭게 법정 변호사로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이 얘기는 여기를 참조) 작년에 이들의 사이프러스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신발게임을 보고 좋은 아이디어라서 딸이 자신의 결혼식 이벤트에 넣었다고 한다.      


5.

브렉퍼스트(breakfast)라고 불리는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식사를 어느 정도 마치자, 신부의 아버지가 스피치를 하는 순서가 된 것이다. 이때서야 만찬장에 모인 하객들은 신부의 아버지가 어떤 스피치를 하는지에 관심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았다. 둘째 시누이의 사인에 따라 내가 일어서서 얘기를 시작했다. 딸아이가 어려서 어땠는지 그리고 부부간의 사랑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에피소드를 넣어 이야기했다. 나는 우리말로 했고 아들이 통역했다. 필요할 때마다 즉흥적으로 하는 아들의 영어도 훌륭했다. 아들 없는 사람들은 조금 섭섭하겠지만, 이번 결혼식에는 은근히 아들의 역할이 컸다.      


6.

서양인들의 결혼식에는 춤이 빠질 수 없다. 예식이 끝나고 저녁식사를 마치면 춤은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서양인들 중에는 춤추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라서 이번 결혼식에는 춤을 강제로 추도록 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의 전통춤인 케일리(ceilidh)를 다 함께 배워보자는 이벤트로 시작했다. 춤을 억지로 추자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배워보자는 것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주 쉽고도 간단한 방법으로 케일리를 배웠다. 춤 배우기가 끝나고 나서 영국인들도 결혼식에서 춤을 배우기는 처음이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돈어른도 춤추는 것은 나만큼이나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춤 배우는 시간 도중에 빠져나왔다. 우리는 응접실에서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아이들이 자랄 때 얘기를 하면서 즐거워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태어나 독일계 화학회사의 영국 현지법인에서 평생 동안 일했다고 한다. 딸 둘, 아들 하나를 낳았고 퇴직한 후에는 소규모 자기 사업을 해 왔는데, 지금은 직원들에게 사업을 거의 맡기다시피 하고 반쯤 은퇴상태에 있다고 한다. 골프마니아라서 브리티시오픈이 열리면 스코틀랜드까지 날아가서 참관하곤 한다. 이때는 아들을 데리고 간단다.      


작년 여름휴가 때 함께 라운딩 하면서 노구에도 불구하고 좋은 스윙을 한다고 칭찬을 했더니 아주 천진하게 좋아하는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우리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춤 배우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런 후에 잉글랜드 춤을 조금 배우는 척하고는 새벽 1시쯤 호텔방으로 들어갔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7.

다음날 늦은 아침 9시경에 아침식사가 시작되었다. 오전 마지막 행사로 산책이 예정되어 있었다. 다들 차에다 짐을 싣고 우비와 우산을 준비해서 호텔을 떠났다. Kithurst Hill이라는 곳에서 산행이 아닌 산책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떠날 때 내리던 부슬비가 생각보다 심상치 않았다. 우비와 우산이 전혀 필요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점점 세차게 내리는 비와 바람을 뚫고 언덕의 정상에 올라 봐야 보이는 것도 없을 것 같아 우리는 중도에 그만 철수했다. 


영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은, 이게 전형적인 영국 날씨라는 것이었다. 어제의 결혼식 날씨는 예외였다고. 우리는, 정상에 오르는 동안 결혼식을 했던 고성이 보이는 아름다운 산책길을 조망할 수 있는 경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동네 조그마한 펍에 들려 각자 간단한 요기를 한 후에 헤어졌다. 초대된 결혼식의 모든 일정이 이렇게 끝났다.



갤러리

신랑의 둘째 누이, 결혼식 진행을 총괄했다. 전쟁을 지휘하는 야전사령관의 풍모...
아들도 이번 결혼식에서 큰 몫을 했다.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아들의 여자친구는 또 어떤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우리 부부가 먼저 폐백 시범을 보이고... 서양사람들의 특징은 책상다리를 못한다는 것이다.
사돈 어른들이 우리 부부의 시범을 따라하기로 했었는데, 영 부끄러워 하면서 사양했다. 그냥 사진만 찍겠다고... '시월드'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막걸리로 건배를 하고... 우리 부부는 러브샷도 시범을 보였는데...
신랑의 중국인 친구가 만든 케익이다. 케익을 자르면 단면에는 시루떡같은 모양이 나온다... 대단한 실력과 정성이다.
신발게임을 하객들이 아주 좋아했다. 서로 다른 신발을 들 때마다 환호성이 터졌다.
신부의 아버지로서 한 말씀을 했고 통역은 아들이 했다. 이어서 사돈 어른도 간단한 인사말을 했고...
저녁이 무르익어 이제 춤을 춰야 하는 시간, 신랑신부가 먼저 시작하고...
이어서 스코틀랜드의 전통춤 케일리를 배우고...
배운 다음에 한 번 더 연습해보고...
춤추는 것을 싫어하는 사돈 어른이랑 응접실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잉글랜드인들의 춤을 배우고... 몇몇 영국인들은 한복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 호텔에서 묵은 이들 중 젊은이들을 중심이 되어 Kithurst Hill이라는 곳으로 산책을 떠났다. 우비와 우산을 준비하고...
우리는 영국날씨가 참 좋다고 말하곤 했다. 신은 우리에게 영국날씨의 참맛을 보려주려는 듯... 산책을 중도에 포기하고... 조그만 펍에 들러 마지막 요기를 한 후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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