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9_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글은 (사)마포공동체라디오(마포FM)에서 진행하는 “사회적기업(협동조합)을 위한 새로운 경영론 - 게르만 모델의 경쟁력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주제의 5회 시리즈강연 중에서 2015-11-19에 있었던 제1강을 듣고 수강자들이 사후에 서면으로 질문(소감 포함)한 내용에 대한 답변의 일부입니다. 함께 나눌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이곳에 공유합니다.
1. 합의의 중요성(을 잘 이해했다). 경쟁은 어떠한 유형으로도 좋지 않은가?
- 합의(合意, Vereinbarung, agreement)를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대화하고 토론해야 합니다. 토론이 가능하려면 당사자 사이에 계급적 우열이 없는 수평상태여야 합니다. 강의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변증법(dialectic)적인 원리에 따라 토론하는 방법을 익혀서 토론할 수 있다면 창조적 합집합의 대안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런 합의된 합리적 대안들이 모여서 지역사회와 조직과 국가가 발전할 수 있게 됩니다.
- 경쟁은 인간에게 본능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도 경쟁은 모든 생물에게 유전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쟁적인 상태를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아직 경쟁이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주어진 것인지 아닌지 생물학적으로 또는 뇌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아직은 잘 모른다는 말입니다.
- 그러나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약육강식의 먹이사슬로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것에 대해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아울러 이 주제는 이번 교육과정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어느 정도는 해명되어야 할 이슈이기도 합니다.
-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의 세계는 어떤가? 여기서도 경쟁과 협력에 관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인간의 세계는 다른 동물의 세계와 확연히 구분되는 뭔가가 있습니다. 인간세계가 다른 동물의 세계처럼 되지 않고 문명을 이루게 되는 이유는 경쟁이 아닌 협력의 메커니즘 또는 경쟁하려는 성향을 억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경쟁이 인류문명에 좋지 않은 이유는, 경쟁이 인간의 고결한 정신을 훼손하고 인간의 정신능력을 다른 동물들처럼 본능적 수준으로 황폐화시켜버리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보면 경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가급적 경쟁을 제한하거나 경쟁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가야 훌륭한 인류문명을 이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작게는 우리가 속한 조직과 지역사회에서부터 경쟁적 환경을 협력적 환경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 우리의 논의를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권의 참고문헌을 소개합니다.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알피 콘, 『경쟁에 반대한다』, 이영노 옮김, 산눈 2009
로버트 프랭크, 『경쟁의 종말』, 안세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2
요아힘 바우어, 『협력하는 유전자』, 이미옥 옮김, 생각의 나무 2010
2. 아이들과 토론 수업을 진행하는데 노력하거나 공부를 열심히 하면 부자가 되거나 또는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이들은 이미 금수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조금 더 먼저 인간존중을 경험했다면 멋진 코멘트를 해줄 수 있었을 것 같네요.
- 앞으로 역량 개념을 통해 배우겠지만(제4강과 제5강), 능력은 타고나는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노력을 지속하는 것 또한 타고난 재능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결과보다 노력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과 그런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은 교사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입니다.
- 아이들이 이미 수저 계급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 현실은 우리 기성세대들을 매우 슬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아무리 맘껏 발휘한다고 해도 아이들은 부모의 경제력 수준에 부합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미 예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우 불공정한 사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 부모의 경제력과 상속재산 등으로 출발선이 다르게 되었습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는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하지만, 현재는 그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함께 공부를 하면서 토론해보고자 합니다.
- 이와 관련된 다음의 참고문헌을 소개합니다.
스티븐 맥나미/로버트 밀러 주니어, 『능력주의는 허구다』, 김현정 옮김, 사이 2015
3. Macro-Level의 중요성, 토론, 합의, 연대, 보충, 인간존중, 집단지성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갑니다. 현상(문제)을 풀어가는 방법에만 열중했는데, 근본을 생각해보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 앞으로 함께 대화와 토론으로 우리 앞에 닥친 문제들을 헤쳐 나아가도록 합시다. 다 함께 협력하고 연대하면 풀지 못할 문제들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4. 오늘은 '교육'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런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 아이들을 생각하면 고민이 많이 됩니다. 유학이라도 가야 할까요?...^^
-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환경조건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영어권의 영미 교육체계는 기본적으로 엘리트 교육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많은 수업료를 부담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기에 유학한 아이들이 올바른 세계관에 기초하여 제대로 된 학습을 할 확률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 어느 사회나 그 사회를 건강하게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가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네 가지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회를 지켜주는 4대 천왕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육, 사법, 언론, 종교입니다. 우리 사회는 이 네 가지 요소들이 모두 썩었습니다. 아주 심하게 썩었죠. 이 네 영역이 자신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바로잡으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그것도 깨어있는 시민들의 시민적 저항운동과 대안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그나마 가능할 것입니다.
- 지금부터라도 정부에 기대하지 않고 시민사회에서 깨어있는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서로 협력하여 아이들을 제대로 기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주 작게라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마포의 성미산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5. 경쟁의 영역에서 윈윈(win-win) 또는 코피티션(copetition)이 가능한 것이라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이 또한 경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하시는지?
- 자본주의의 시장경제에서는 어차피 조직 간의 경쟁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이런 세상을 떠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개 윈-윈이나 코피티션이라는 개념은 구조적으로 경쟁을 수용하거나 장려하는 일종의 연막전술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서로 선의의 경쟁을 위한 합리적인 토론과 협의를 통해 상호 자유로운 상태에서 합의에 이르렀다면 윈-윈이나 코피티션도 나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경쟁하지 않고 협력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질문 1의 답변을 참조하세요.
- 세계적으로 높은 생산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기업들은 한결같이 누구와도 경쟁한 적이 없으며 경쟁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초기의 창업자들이 스스로 이 세계에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여 최선의 노력으로 공급했을 뿐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현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인간은 경쟁하면 할수록 세계를 보는 눈이 협소해지며, 상상력이 줄어듭니다.
- 그러므로 시민사회는 가급적 조직 간에도 경쟁하지 않고 협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넣어야 합니다. 강의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우리는 기업(조직)이 주주의 이익, 말하자면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직에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의 효용 또는 이익을 최대한 높여줄 수 있는 방식의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정부가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6. 결국 또다시 'how-to'의 문제가 아닐까요? '서·계·차·경'의 문화와 제도의 고착화 상태에서 '대·토·협·합'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가 아닌 '현명한 노력'은 무엇일까요? -> 청년? 교육? 훈련? 협동조합 붐업? 원론으로 돌아가라?
- 좋은 질문입니다. how-to를 논의하거나 how-to로 나아가려면, 그 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인간관·조직관 등과 같은 매크로 레벨(Macro-Level)에 대한 검토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런 근본적인 철학적 검토 없이 그저 메조 레벨(Meso-Level)의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고 어떻게 행동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정치인들을 뽑을 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매크로 레벨에 대한 어떠한 점검도 없이 그냥 ‘우리를 잘 살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메시아 신드롬(구원자에 대한 갈망 현상)에 걸린 사람들처럼 행동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 부족했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라도 우리를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 매크로 레벨에 대한 검토는, 우리가 지금 어디서 와서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게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제2강(2015.11.26)에서 이런 이슈에 대해 우리가 함께 토론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