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기본적인 삶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핀란드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했다.(기사는 여기를 참조)
기사 내용만 보면, 핀란드에서 기본소득 제도를 운영하려는 이유가 매우 합리적이다.
첫째, 최근 들어 파트타임과 프리랜스로 일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이들은 적은 수입임에도 불구하고 실업수당을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점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노동시장의 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둘째, 그러다 보니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오히려 실업수당이 노동의욕을 감소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을 "인센티브의 함정" incentive trap이라는 아주 끝내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앞으로 나도 이 용어를 써먹어야겠다.) 그러니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들도 더 많은 노동을 통한 추가적인 수입이 발생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시민들의 수입과 재산의 정도는 늘 변하는 데 공적 보조금 지급을 위해 공무원들은 이런저런 서류를 심사하느라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관료화의 비효율이 생겼다.
그래서 핀란드 정부는 그냥 퉁쳐서 모든 성인(17~65세)에게 기본소득으로 매월 800유로(대략 100만 원)를 지급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핀란드 성인 10만명을 대상으로 우선 2년간 실험해보는 것이고, 이 실험 연구 결과가 좋으면 그대로 실행한다는 얘기다.
실험연구의 결과를 판단하는 기준도 매우 합리적이다.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더 일하려는 의욕을 갖는지, 웰빙과 행복감은 어느 수준인지, 병의원과 같은 공공서비스를 어느 정도 이용하는지 등등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기본소득(basic income)이란 직업이나 수입의 여부에 상관없이 성인이 된 시민에게는 조건 없이 지급되는 소득을 말한다. 이 얘기는 요즘 하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다 아는 것이라서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유럽 사회에서 일정 기간 살아본 사람이라면, 기본소득 개념이 왜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몸으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 개개인에 대한 국가적 배려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도 대략 10년 전부터 민간뿐만 아니라 의회차원에서 기본소득을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시행되리라 본다.
스위스는 아예 한 발 더 나아가, 이미 국민청원(Volksinitiative)의 형식으로 연방정부에 청원했다. 연방정부는 재정부담을 이유로 거절했고, 이것이 연방의회에서까지 부결되자, 금년 내년(2016년) 중에 국민투표에 붙이기로 되어있다. 국민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으면 국민청원이 가결되어 기본소득이 실행된다. 현재까지는 시기상조가 아닌가 하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투표 결과가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으로 매월 2,500 스위스 프랑(대략 300만 원)을 지급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생산성과 창의성은 나날이 향상되고 있지만, 오히려 노동 기회와 직업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영국 옥스포드대학과 일본 노무라연구소에 연구에 의하면 2035년까지 현재 직업(job)과 노동력의 40~50%가 사라진다고 한다. 게다가 생산성과 창의성을 통해 얻어지는 이득의 대부분은 극히 소수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있다. 자본주의 질서는 생산성 향상에 따른 사회적 잉여의 배분에서 실패한 것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가 이제는 거의 작동하지 못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러니 기본소득(basic income) 이슈가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우리 정치인들도 이런 수준으로 성숙해지기를 기대한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을 한다고 열을 올리고 있는데, 진정으로 노동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이런 기본소득 제도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쉬운 해고가 가능해지려면 최소한 생존은 보장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기본소득 개념 없이, 노동자들을 생존의 절벽으로 내모는 노동개혁은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한 사태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