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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동석 Mar 29. 2016

안철수를 생각하며

야권은 반드시 연대해야 한다

안철수를 생각하며     


(페북의 안내문, 2016-03-29 오후 1:57)

안철수를 생각하며...

나는 개인적으로 안철수에게 빚진 게 있다. 그러나 그가 정치판에 들어온 이상 그를 비판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그가 사적 감정과 야욕을 벗어나 대국적으로 야권연대를 이룰 때가 되었다. 

안철수를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안철수는 도구적 능력(instrumental capability)은 많이 가지고 있으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말) 그 능력을 적합한 곳에다 적절히 올바로 쓰는 능력은 낮아서 저 고생을 하고 있다. 이것을 추상화 능력(abstraction capability)이라고 하며 안철수의 추상화 능력은 낮은 편이다. 그는 정치판에는 부합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능력이 어디에 적절한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추상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전혀 엉뚱한 곳에다 쏟아붓는 특성이 있다. 정치판에는 달달한 떡고물(돈과 위세와 명예 등등)이 많기 때문에 정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꼬인다. 이런 사람들이 목적지향적 능력(purpose-oriented capability)을 발휘하면 최악이다.

지금 안철수가 최악의 상황으로 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안철수의 역량프로파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애당초 안철수에게 정치판을 개혁할 것으로 기대했거나 그에게 빌붙어 뭔가를 해보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김종인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안철수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이 꽤 있다. 한심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고...


내가 2006년 기업에서 실무에 몰입하고 있을 때, 브라질 기업가 리카드로 세믈러가 쓴 <The Seven-day Weekend>라는 책을 읽었다. 감동적이었다. 내가 생각하던 경영철학에 부합하는 사례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말 번역판은 제목을 <셈코 스토리>라고 붙였다. 번역·출간하면서 이런 경영사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경영자를 찾아서 한 줄짜리 추천사를 부탁했다. 당시 유한킴벌리의 문국현 사장,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의장에게 부탁해서 추천사를 받았다. 그러니까 나도 두 분에게는 빚을 진 셈이다. 


이 책의 독자들은 알겠지만, 경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경영이라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10년 전에 출간된 이 책은 안타깝게도 절판되었다.


그런데 문국현 사장은 이듬해인 2007년 창조한국당을 만들어서 대선후보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잘 알다시피, 그 후 얼마 있다 정치계를 떠났다. 안철수 의장은 2012년 대선후보로 출마하면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브라질 기업 셈코를 경영했던 리카르도 세믈러와 같이 문국현과 안철수도 그런 경영자가 되었다면 한국사회에 엄청 큰 반향을 주었을 것이다. 안타깝다.


언어와 문법이 다르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이 과연 정치판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그 성공 가능성을 전혀 부정할 수 없겠지만, 매우 낮은 것만은 틀림없다. 왜 그런가? 언어와 문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업가와 경영자는 정치판과는 전혀 다른 문법의 세계에서 일한다.      


내가 2001년 한국은행을 떠나 컨설팅 업계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무척 고생했다. 의사소통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왜 내 말이 사람들에게 안 통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은에서 쓰던 맥락과 문법으로 얘기해서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나의 언행과 의사결정방식을 완전히 바꾸어야 했다. 컨설팅 업계에서 쓰는 말의 맥락은 대부분 고객을 유혹하고 서비스의 내용을 과장하거나 좀 심하게 말하면 서비스를 받지 않으면 회사가 어려워진다고 협박하기도 해야 하는 언어였다. 나쁘게 말하면 베이트앤드스위치(bait & switch) 방식이라고도 한다. 최대한 베이트앤드스위치를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무한 경쟁 시장에서 순수한 마음은 통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과 문법은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내 방식대로 새로운 전략을 썼다. 고객과의 장기간 계약을 맺도록 하자는 것이다. 가급적 30개월 정도의 컨설팅 또는 자문계약을 맺으면 회사가 1년간 컨설팅 또는 자문을 받으면서 컨설턴트가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운영해보고, 그다음 해는 컨설팅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직원들 스스로 운영해보는 방식이다. 그렇게 24개월을 경영해본 후에, 약 6개월간의 피드백을 통해 수정·보완하도록 하자는 것이 내 취지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물론 이렇게 계약하자는 고객사는 하나도 없었다. 아주 순진한 전략이었다. 심지어 나를 미친놈으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전통적으로 하는 히트앤드런(hit & run) 방식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돈을 벌기는 했지만, 마음은 늘 찜찜했다. 컨설팅이 완료된 후에 컨설팅의 취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회사가 운영되는 사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한은이라는 세계에서 컨설팅 업계라는 새로운 세계로 유학을 간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유학중 독일어와 독일 문화를 제대로 익히지 못해, 내 마음을 맘껏 표현하지 못하며 전전긍긍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컨설팅 업계에 있을 때 내내 그런 느낌이었다.    

  

그 후 컨설팅 업계를 떠나 대기업으로 다시 옮겼지만, 그곳에는 또 다른 언어와 문법이 나를 괴롭혔다. 다시 학교로 옮겨 대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여긴 또 다른 세계여서 내가 맡은 프로그램의 행정문제와 인간관계에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학교를 떠나 작은 협동조합에 큰 희망을 걸고 시작했지만 아무리 작아도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었다. 역시 다른 언어와 문법을 써야 하는 새로운 세계였다. 내 정신의 소산인 나의 언어와 문법이 잘 통하지 않는 이상한 세계였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것도 아니라면 둘 다 이상한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새로운 세계는 새로운 언어와 문법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쉽게 극복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그렇게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기업가나 경영자가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은 고래가 육지로 뛰어드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고래가 육지에서 자기 맘대로 뛰어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듯이.      


기업에서는 민심을 읽을 필요가 없다. 자신의 사업 아이템이 시장에서 먹히기만 하면 된다. 직원들에게는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면 통한다. 그러나 정치 아이템은 철저하게 민심에 먹혀야 한다. 화려한 언술로 일시적으로는 먹힐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내공이 다 드러나게 마련이다.      


안철수는 반드시 연대해야 한다


안철수는 지금 기업체를 운영하거나 젊은이들을 상대로 토크콘서트를 하거나 대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게 아니다. 이제 정당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민심을 따라야 한다. 정권교체를 원한다면 야권이 연대하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역시 민심을 거스르는 커다란 헛발질을 했는데, 국민의당 안철수가 끝까지 패착을 고집하면 야권의 승리는 물 건너간다. 그러면 안철수는, 문국현과는 다른 이유로, 서서히 정치판에서 사라져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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