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을 넘어 절망에 가깝다
중앙일보에 실린 <연세대와 고려대 총장의 대담>을 꼼꼼히 읽고 동영상도 보았다.
내 의견은 아래와 같다.
지성사, 문명사를 얘기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나라가 전체적으로 처한 현실의 근본 문제는 연세대 총장(김용학)이나 고려대(염재호) 총장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대담을 읽어보고 한심하다는 느낌을 넘어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런 수준의 사람들이 국가정책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헬조선이 되었으며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생각한다.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렇다.
첫째, 이들은 우리나라를 이렇게 만들어온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로 대학을 운영하는 바람에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진정한 문제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무한경쟁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논리가 소위 ‘엘리트층’이라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엄청난 기득권을 가지고 있어서 그 기득권을 유지·보전하는 차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이런 관점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진정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지고 정직하게 다시 생각하고 대화하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경쟁력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미국 사회처럼 무한경쟁을 통해 나올 수 있을까? 국가경쟁력은 과연 경쟁을 통해 나올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미 밝혀졌다. 조직의 경쟁력은 구성원 간의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생성된다. 다시 반복한다. 경쟁력은 협력을 통해 나오며 경쟁을 통해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대학의 사명은 무엇인가? 19세기 초반 유럽의 변방에서 후진국으로 찌그러져 있던 프로이센을 혁명적으로 바꾼 계기는 농노해방과 교육혁명이었다. 농노해방은 생산성 향상을 이룩했고, 대학의 설립은 지성사의 변혁을 가져왔다. 특히 대학은 학생들에게 사회변혁을 위한 이상과 비전을 심어주고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주었다. 오늘날 우리 대학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둘째, 총장들이 문제 해결력(problem solving) 같은 멋진 개념을 말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같은 소위 일류대에서 과연 문제해결력을 키울 수 있는가? 공부 잘하는 학생은 어떤 특성을 보이는지 알고 있는가? (이혜정,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참조) 대학은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없도록 일방적으로 주입식 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대학은 사회의 부정부패를 철저하게 비판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지 못하고 있다. 문제해결력은커녕 사고력 자체를 말살하고 있는 교육 현실에서 창의성과 대변혁을 운운하는 자체가 웃기는 것이다. 2012년 대선후보였던 박근혜에 대해 연세대 심리학과의 황상민 교수는 “생식기만 여자일 뿐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한 게 없다”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기분 나쁘다고 대학에서 황 교수를 해직시켰다. 대학이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그런 수준의 대학에서 학생들이 무슨 비판적 사고와 문제해결력을 키울 수 있겠는가?
셋째,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말을 누구나 알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기득권층이 절대적인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전통적인 수단은 피지배층을 서로 경쟁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무엇을 위해 서열화, 계급화, 차별화, 경쟁화를 추구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학생들 개개인마저 서열화하고 계급화하여 차별하는가?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교육되어야 하는가? 능력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는 시민들에게 주어진 헌법적 가치인데, 과연 이것이 실현되고 있는가? 경제적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문명사와 지성사를 얘기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시민들은 스스로 자신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시민들은 집단지성을 통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산출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어버렸다. 이등 삼등 국민으로 취급되고 있다. 보편적인 평등한 교육시스템을 허물고 지금까지 엘리트 교육을 추구해왔던 교육이 바로 이런 황당한 사회를 만들었다. 몇몇 엘리트교육을 추구하는 대학에 수백억 원을 지원하면 우리 사회는 헬조선을 벗어나 좋은 사회로 변화될 수 있을까?
넷째, 이런 무한경쟁시스템, 승자독식 시스템은 자본주의가 실현되는 기본원리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양극화로 사회의 존립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권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만, 경제적으로 생산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모델이나 게르만 모델과 비교해보자. 등록금을 받지 않고 평준화교육을 실시하는 나라에서 오히려 교육의 질적 수준이 더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영미식 앵글로색슨 모형을 추구해오면서 기득권층의 지배력만 확대시켜왔음이 분명해졌다. 기득권층은 자본주의 이념에 따라 거의 절대 권력을 확보했다. 그래서 이 두 대학총장들의 얘기는 대학의 문제점에 대해 부분적으로 맞는 얘기를 하면서 화려한 언변을 늘어놓아 그럴듯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기득권층의 지배력을 보다 더 강고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21세기에는 무너뜨려야 할 피라미드형 계층구조의 문제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 문제를 은근슬쩍 피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사회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부분적으로 자신들이 맡고 있는 대학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큰 조직을 운영해본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부분적인 최적화는 항상 전체를 왜곡한다는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