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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르조 May 20. 2022

[팔 골절 일기] 몽글몽글한 꿈

220218

시기마다 꽂혀있는 표현이 있다.


요즘엔 "몽글몽글하다."라는 말이 좋다. 사전적인 의미는 "덩이진 물건이 말랑말랑하고 몹시 매끄러운 느낌"이란다. 사전은 명확한 의미 전달에는 꽤 그럴싸한 역할을 할 지 몰라도 말의 맛을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단 말이지. 이 단어를 떠올리면 떠오르는 지극히 주관적인 장면이 있다.


새파란 하늘에 떠다니는 킹 사이즈 베드만한 구름에 누워 뽀송뽀송한 이불을 팔과 다리 사이로 휘감고,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이빨은 보이지 않는 그윽한 미소를 짓는다. 해는 이제 막 지려하고 있어서 딱 적당한 온기를 내 몸 곳곳에 전한다. 그러다 옆에 지나가는 뭉게구름에 손을 뻗어 주먹만한 구름을 입 안에 넣으면 청명한 잔향이 느껴지는 것이다.


몽글몽글한 꿈을 꾸었다. 10시간을 자고도 모자라 점심 전에 빠져든 이른 낮잠 속에서. 유독 가혹했던 손목 가동범위 운동 탓이었을까. 환란을 어루만져주듯 그 꿈은 내게 다가왔다.


우리는 땅을 보며 걸었다.

나는 되도 않은 말을 했다.

그녀는 호탕하게 웃었다.


다시 땅을 보며 걸었다.

그녀의 손은 내가 오래 전에 잃어버린 나의 일부였다.

되찾고 싶었다. 


새끼 손가락의 세 번째 마디가 그녀의 검지에 닿았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서야 손바닥과 손바닥이 마주했다.

그녀의 미소는 호탕하지 않았다.


문득 그녀를 업고 싶었다.

나는 하체를 구부렸다.

곧이어 그녀의 온기와 무게가 함께 전해져왔다.


그녀도 나를 업겠다고 한다.

나를 들쳐맨 그녀는 무려 두 걸음에 성공했다.

숨이 가빠진 채로 우리는 동네가 떠나가도록 웃었다.


그녀는 나를 안겠다고 한다.

두 팔을 벌렸다.

그녀는 반바퀴를 돌아 뒤에서 나를 안는다.


나는 몸을 돌리고 그녀는 나를 빤히 본다.

따뜻한 활기가 깊은 곳에서부터 용솟음 친다.

결계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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