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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르조 Aug 07. 2022

혼자 클럽 가기

220806

예전부터 혼자 클럽을 가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혼자였던 건 아니다. 대학교 친구들과 함께 소나기를 뚫고 강남에서 이태원으로 넘어갔다. 오랜만에 한국에 휴가 온 K를 만난 우리는 다들 흥분을 감추질 못했다. 매번 독일로 떠난 한 놈이 비어서 옆구리가 허전했는데 일 년 반만에 다섯 명이서 다 모인거다. 우리 모임 이름은 부끄럽게도 알코올 라이언즈인데, 그 이름이 무색하게 최근에는 우리 사이에서 절주가 트렌드였다. 잘못된 음주 습관으로 인한 필름 끊김과 반복되는 소지품 분실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K는 돌아오고 말았고,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봉인을 해제했다.


시작부터 곱창전골에 소주를 들이켰다. 만난지 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 이미 초록색 병이 일곱 개 째였다. 이대로 가다간 막차 전에 집에 가게 될 것 같아서 베라로 한 템포 쉬어갔다.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데 킬킬거리는 친구들이 사랑스러웠다. 벌써 알게 된 지 10년이다. 징한 놈들. 아이스크림을 밥 먹듯이 순식간에 클리어하고서는 3차는 포장마차로 갔다. 속도를 낮춘다고 낮췄지만 신이 나버린 우리는 어느새 다섯 병을 더 마시고 말았다. 무슨 얘기를 해도 상관 없이 행복했다. 결국 이미 꽤 취해버린 채로 우리는 택시에 몸을 실어 강북으로 넘어갔다.


친구들과 향한 곳은 쉘터와 페이퍼라는 클럽이었다. 쉘터는 테크노, 페이퍼는 하우스를 틀고 무엇보다 페이퍼는 이태원 유일의 루프탑 클럽으로 야경이 아름답다. 흡연실도 따로 있고 가장 중요한 음악이 아주 좋다. 페이퍼는 조금 chill하다면, 쉘터는 춤 추지 않고는 못 배기는 매력이다. 나를 제외하고는 친구들 모두 처음이었는데, 다들 마음에 들어했다. 리듬에 몸을 맡겨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하는 춤들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미 인당 소주 두 병 이상을 마신 상태였다는 거다. 맥주까지는 괜찮았는데 아마 데낄라 샷이 결정타였던 것 같다. 한두 명씩 술을 흘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시작할 때쯤 우리는 클럽을 나와서 바람도 쐬고 이야기하다 각자 집으로 가기로했다. 택시 잡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곳인데 이상하게 이날따라 나를 빼고는 친구들이 잘 잡혔다. 친구들은 차례로 사라졌고 버스를 타고 간다는 놈을 보내고서 나는 혼자 남겨졌다. 


집에 갈까 했는데 손목에 새겨진 문양이 눈에 띄었다. 그래 오늘이다. 혼자 간다고 막상 생각하니 긴장되기도 했는데 못할 거 뭐가 있나 싶었다. 까짓거 해보면 되지라는 심정으로 클럽으로 향했다. 친구들과 함께 올랐던 계단을 혼자 올라 5층에 도착했다. 시간이 이미 꽤 늦어서 페이퍼는 닫았다. 두터운 커튼을 열고 쉘터로 들어갔다. 초록색 조명과 안개가 공간을 가득채우고 있었다. 인공 연기의 화학적인 향과 텁텁한 공기가 느껴졌다.


점묘화 같다.


취기가 남아있어서인지, 한 시간만 전에도 친구들과 함께 있던 곳이라 그런지 어색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맥주를 하나 들고 디제이 앞에서 몸을 휘적이는 사제들 옆에 섰다. 무대 맨 앞에서 비트에 몸을 맡기며 가끔씩 이것저것에 손을 대는 디제이와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현대판 제사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우리의 영혼을 잠시 음악에 위탁하는 의식 같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무대를 보고 사람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기이하고 으스스하다. 그로테스크해지려는 기분을 피해 눈을 감았다. 시야가 제한되면서 다른 감각이 고개를 들었다. 고막의 한계를 시험이라도 하듯 울려 퍼지는 소리, 콘크리트를 지그시 누르고 있는 발바닥, 허공에 떠있는 손들. 한 발자국씩 움직였다. 왼발, 오른발. 군대도 아니고 무슨. 피식했다. 움직임에 강도를 조금씩 더해갔다. 모든 생각이 사라져 갈 때쯤, 나는 스피커 앞으로 자리를 옮겨 남은 맥주를 털어넣고 맥주병을 바닥 구석에 내려놓았다. 그때부터가 진짜였다. 눈을 감은 채로 나는 완전히 소실되는 것만 같았다. 내 몸은 이미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누구한테 내 불완전한 춤이 어떻게 보일지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간신히 형체만 드러나는 조명과 초록색 안개가 모두를 휘감았다. 눈을 감고 계속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필요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혼자였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몸을 흔들고 있었던 거였다. 자각이 돌아와서 나는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바로 출구로 향했다. 빈 맥주병을 챙길 겨를도 없었다. 왜 이토록 서둘러 나왔을까. 계단을 내려가면서 생각했다. '저분들도 퇴근을 하셔야 하니까', 라는 합리화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부끄러웠던 거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을 것만 같았던 거지. 그들은 매주 마감 때쯤 마주하는 풍경이겠거니 하니 크게 생각이 없어졌다. 집에 이젠 가야지, 하면서 계단을 서둘러 내려오는데 3층에서 꽤 괜찮은 비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고민도 없었다. 또 다른 두꺼운 장막을 열어젖혔다. 새빨간 조명에 좀 더 밝은 느낌의 클럽 겸 술집이었다. 벽 한쪽 면에는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고 다른 쪽 면에는 디제이와 댄스 플로어가 있는 구조였다. 곧장 스피커 앞으로 향했다. 사실 여기는 아는 사람들끼리 술을 마시다 흥이 오르면 춤을 추는 분위기였는데, 이젠 그런 것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새 더 뻔뻔해진건가. 그게 가능이나 한거였나. 맘껏 흔들다 지쳤을 때쯤 바에서 생수를 하나 시켰다.


생수를 얼음컵에 따라 마시면서 클럽을 보다 문득 뭔가 쓰고 싶어졌다. 핸드폰에서 펜을 꺼내 기분 내키는 대로 썼다. 그 순간 그 공간을 유영하는 이미지들을 크게 고민 없는 언어들로 붙잡았다. 지금 와서 봤을 때는 큰 가치가 없는 끄적임인데, 그 순간의 나에게는 꼭 필요한 행위였다. 나는 그래야만 했다. 쓰고 나서 고개를 들어 다시 주변을 봤을 때는 이 모든 게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겨우 이 정도의 공간에 대해 혼자 올 용기를 여지껏 내지 못했던 거였나. 그런데 또 음악이 괜찮네. 다시 스피커 앞으로 갔다. 얼마 안 있다 디제이가 바뀌고는 영 분위기가 루즈해졌는데, 벽에 기대 그런 클럽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조명도 음악도 웃고 있는 사람들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복잡해지기 전에 새빨간 공간을 빠져나왔다.


택시는 여전히 잡히질 않았다. 하늘은 이미 거무튀튀한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한강이 보고 싶었다. 이왕 춤으로 온몸이 폭 젖어버린 거 끝까지 가보자 싶었다. 따릉이를 빌려 한강으로 향했다.


부지런한 사람만 볼 수 있는 아침 한강


6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불을 끄고 찬물로 샤워했다. 귀에 여전히 음악이 울려 퍼지는 듯했다. 누웠을 때는 귀에 처음 느껴보는 통증이 있었다. 귀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주변 소리를 감각하려는 의지로 인한 통증처럼 느껴졌다. 귀도 나 자신도 어딘가 모르게 확장한 기분이었다. 아주 긴 하루가 끝이 났다.


다음에는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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