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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르조 Aug 08. 2022

무대에서 재즈 부르기

220807

<Cry Me A River>를 무대에서 불렀다.


요즘 매주 일요일 서울의 한 재즈 클럽에서 친구와 함께 재즈 싱잉을 배우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있던 내게 친구가 어느 날 뭔가를 등록하자고 문자를 보내왔고, "나는 너랑 함께인데 재즈라고? 무조건 하지!"라며 뭘 가르치는지도 모르고 수업을 듣게 되었다. 강의 계획서를 받았는데, 한 주차에 한 개의 노래만 있는 거다. 한 노래에 대해서 뭘 이렇게 오랫동안 배우지. 그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재즈의 역사, 여러 가지 곡의 의의에 대해서 다루는 강의인 줄로 알았다. 첫날 도착하자마자 그 착각은 깨졌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생각해보니까 재즈도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하니까 재즈 싱잉? 까짓거 해보지 뭐 싶었다.


수업은 재즈 사에서 굵직한 곡을 위주로 커버한다. <Beautiful Love>와 <Agua de Beber>를 거쳐 오늘은 <Cry Me A River>이다. 선생님께서 곡의 배경으로 시작해서 가사의 의미를 풀이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어떤 감정을 실어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곡을 해석해주시면, 수강생들은 따라 부르는 식이다.


선생님이 경상도 분이신데 매우 유쾌하시다. 본인 말로는 흥분하면 사투리가 나오신다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때는 항상 사투리를 쓰신다. 매번 흥분하신 걸지도 모른다. 스스로도 화산 같다고 표현하실 만큼 감정에 충실하고 그만큼 표현력도 상상을 초월한다. 무대로 보던 분을 선생님으로 모시게 되어서 처음에는 연예인이, 그것도 침 튀기면 닿는 거리에서 온몸으로 열정적으로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젠 그것도 익숙해졌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


마디 순으로 배우는 노래를 끝까지 한 번 커버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20명 남짓한 수강생이 돌아가면서 두 마디 정도씩을 부른다. 한 명당 짧게는 5초, 길게는 10초까지도 그 공간을 자신의 목소리로 온전히 채워야 한다는 뜻이다. 선생님께서는 한 명 한 명 앞에 가서 노래를 듣고 각자에게 맞는 피드백을 준다. 나나 친구는 공통적으로 힘을 빼라는 피드백을 자주 듣는 편이다. 특히 오늘은 발라드라 복식 호흡이 중요했는데, 어깨에 힘을 주면 배로 소리를 내기가 어렵다는 의견을 주셨다. 친구는 색소폰도 배우고 있는데, 색소폰 선생님에게도 같은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중고등학생 때 공부해서 대학을 가고 직장을 다니고 있는 한국인 중에 어깨에 힘이 안 들어가는 사람이 있을까. 학창 시절 열심히 해왔고 본인 앞에 놓인 어떤 과제든 열심히 하려는 자세는 삶에 분명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으나 예외는 존재한다. 예술의 영역에서 해보려는 강한 의지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의 걸림돌이 되기 일수다.


누가 뭐래도 이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수강생의 공연이다. 곡 강연과 돌아가면서 부르는 세션이 끝나고 나면 마지막에 선생님은 선착순으로 4명 정도의 사람을 무대로 초대한다. 손을 든 용기 있는 자는 선생님과 수강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를 얻는다. 선생님의 진심 어린 피드백은 덤이다. 다들 떨리는 마음에 무대에 오르고 자기의 노래를 하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멋있다. 전문 가수가 아니어서 더 빛이 난다고 느낄 때가 있다. 본인이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것에 무모하게 도전해보는 모습이 눈부시다.


사실 나도 <Agua de Beber>를 배울 때 손을 들고 싶었는데, 끝내 망설이다 기회를 놓친 기억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회를 잡겠노라 다짐을 했다. 마치 그날의 아쉬움이 오늘의 의지를 위해 먼저 있어왔던 것 같았다. 비록 전날 클러빙의 여파로 잠도 적게 자고 감기로 목소리도 잠겼지만 말이다. 오늘은 꽤 지원자가 많아서 가위바위보를 하고 나서야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첫 번째 순서인 분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면서 마음을 최대한 가다듬으려 했다. 마침내 내 차례였다.


악보를 악보대에 놓고 마이크를 오른손에 잡았다. 반주가 들려왔다.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가 끝이 났다. 긴장이 풀려서 온 몸에서 힘이 빠졌다. 살면서 무대에서 그렇게 떨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다리가 통제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사회생활하면서 무대에 오를 일이 많아서 다시는 무대에서 떨리는 없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주 큰 오산이었다.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복식호흡은 온데간데없이 목으로 어깨로 부르고 말았다. 결과는 아쉬웠다. 친구 말에 따르면 자기는 좋았다고 촬영된 것보다 실제로 들은 게 훨씬 좋다 했지만 노래하는 내가 부르면서도 감정에 집중은 커녕 긴장감만 느껴졌다. 그게 관객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선생님의 피드백은 요약하자면 힘과 감정을 빼라, 조금 더 정제해서 불러라,였다. 과욕 덩어리라고 나를 놀리셨다.


선생님이 하셨던 어떤 말보다 기억에 남는 건 노래를 끝냈을 때 내게 오시면서 지으신 환한 웃음이었다. 눈과 입이 하회탈 마냥 그윽한 곡선을 그리고 주름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그 표정이 무대 조명 아래서 유난히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엄정한 피드백보다 찰나에 느껴졌던 선생님의 마음이 감사했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자식을 안아주는 어머니 같은 포근함이라 해야 할까. 선생님은 감정에 솔직한 분이시라 본인이 느끼는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적어도 우리 수업 시간에는 살면서 가면이라는 걸 써본 적이 없는 사람 같다. 그런 사람으로부터 순간이나마 온전한 마음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아주 멋진 일이었다. 다시 돌아가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아쉬움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소백산처럼 크지만, 이런 아쉬움이 있기에 다음엔 더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나 자신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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