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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르조 Aug 15. 2022

만나던 사람에게 남자친구가 있었다: 뒷이야기

220814

이 글은 지난번 썼던 <만나던 사람에게 남자친구가 있었다.>에 대한 뒷이야기다.


며칠 전 그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른 뜻은 없고 진정으로 다시 한 번 사과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시간을 내서 사과를 들어달라는 요청이었고 나는 응했다.


글은 담백했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봤다는 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느껴졌던 감정의 변화가 담담히 적혀있었다. 온전히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려고 애쓴 티가 났다. 읽으면서 남아있던 그 사람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씻겨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그 사람이 글을 쓴 이유가 자신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서였다면, 글은 목적을 이뤘다. 단순히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얄팍한 마음은 없었다. 자신을 내려놓고 그와 나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본 듯했다.


고마웠다. 애초에 사과할 일이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녀는 자신이 초래한 상황에 대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했다. 슬펐다. 짧지만 함께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이젠 추억 하나하나가 아픔이었다. 마치 자석의 극이 반대로 변해버린 것처럼 따뜻했던 순간들이 모두 파래져버렸다. 나는 왜 그토록 진심이었던건가. 마음을 대충 좀 줄 순 없었나. 이 나이 먹도록 그 정도 방어체계도 구축하지 못한 나 자신이 다시 한심했다.


답변을 간결하게 남겼다. 내가 느꼈던 감정을 썼다. 이젠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고 썼다. 진심이었다. 상대방이 보다 더 충만한 삶을 살길 바란다고 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든 사람 마음을 조심히 다뤄달라고 했다. 그 사람으로부터 미안하고 고맙다는 내용의 답변이 왔다. 그렇게 끝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일련의 사건을 이야기했다. 찬찬히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너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었던 적이 있냐고 물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본인은 믿는다면서.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봤다.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였던 적이 없었나.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이 선을 넘지 않았던가. 어쩌면 내가 누군가에게 남긴 상흔들이 차곡차곡 모여 이 사건으로 내게 돌아온 것은 아닐까. 카르마다. 그 사람에게 했던 "사람 마음을 조심히 다뤄달라"는 요청은 과거에 나 스스로에게 했던 말이었다. 부끄럽게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는 건 그만큼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조심스러워진다 모든 게.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말을 나누고 서로를 알아가는 게 망설여진다. MBTI에서 외향성이 96%까지 나왔던 나인데. 마음은 닫혔다 열렸다하는 거라지만 갈수록 조리개가 작아지는 게 느껴진다. 비단 이 사건뿐만이 아니다. 여태껏 쌓아온 경험이 나를 그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글에서는 그럼에도 용기를 잃지 않을 것을 스스로에게 주문했다. 갈수록 더 많은 용기들이 만용으로 다가오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영혼이 늙어가는건가.


경제에도 사이클이 있듯이 마음도 주기가 있다. 다시 열릴 날이 오겠지. 지금은 좀 내려놓고 쉬고 싶다.


* 앞이야기 링크: https://brunch.co.kr/@tserabroz/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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