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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르조 Aug 19. 2022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당신은?

220818

언제로 돌아가겠는가.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해당 시점부터 살아야 한다는 조건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20살이 되겠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입시라는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 도착한 대학교라는 내게 천국이었다. 집이라는 감옥을 벗어나 친구들을 만났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낙서로 사면이 가득한 술집에서 혀가 배배 꼬인 채로 꽤나 자주 왜 사는지를 얘기했다. 돈을 위해 살겠다는 야심가가 있는가 하면 그래도 결국엔 사랑이 아니겠냐는 로맨티시스트도 있었고 무슨 사랑이냐 섹스나 실컷 해야지라는 놈팽이도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욕망들이, 그 무질서가 좋았다. 10대에 봉인되어 있던 자아들이 광야에 풀려나와 자신의 길을 찾고 있었다.


나는 뭐랄까 그냥 예술이 하고 싶었다. 기쁠 일이 크게 없던 삶 가운데 음악과 영화가 내게 선사했던 전율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자습 끝내고 자기 전에 들었던 콜드 플레이, 잉거 마리, 가을방학은 내 영혼의 안식처였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이 나오면 시험 기간과 상관없이 영화관에 쫓아가 그가 만들어낸 세계를 거대한 화면으로 목도했다. 우디 앨런과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영화는 대사를 외울 정도였다. 공부라는 명분으로 동경만 하던 예술을 결과가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시도해보고 싶었다. 


대학에 와서 가장 처음 들어간 동아리는 밴드였다. 보컬로 무대에 두 번 올랐다. 솔직히 노래보다 어려웠던 건 멘트였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아마 담백하기만 했을 거다. 누가 나한테 위트 없는 신사라고 했었는데 그 시절의 내게 꼭 맞는 말이었다. 열심히 연습한 노래들은 나름 반응이 좋았다. 더콜링과 윤도현의 노래를 불렀다. 대학교 동아리들이 으레 그렇듯 친구들이 와서 환호성을 질러주는 재롱잔치였다. 노래를 마치고 30명 남짓되는 관중을 바라볼 때 그 조그만 세계가 고마웠다.


연기도 했다. 원어 연극동아리였다. 처음 하는 연기를 그것도 영어로 하게 되었다. 아서 밀러의 <All My Sons>라는 작품이었다. 2차 세계 대전 참전 후 집에 돌아와 군대를 대상으로 부정 납품을 저지른 아버지와 반목하는 아들 Chris 역할이었다. 대사를 외우고 소리를 내는 법을 배웠다. 이야기를 따라보니 대사는 금방 금방 외워지곤 했는데 발성이 쉽지 않았다. 과거의 배우들이 해석한 Chris도 조금씩 찾아볼 정도로 나름대로 배우가 되어서 캐릭터를 연구해보았다. 그렇게 6개월을 준비해서 4번의 무대에 올랐다. 매번 무대 뒤에서 대기할 때면 심장이 가만있지를 않았는데 커튼을 열고 무대 빛을 받으면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온전히 Chris가 되었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아버지가 의도적으로 군납 비리를 저지른 것을 알고 그로 인해 죽어간 동료들로 인해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이었는데, 내게도 쌓여있던 아버지에 대한 감정에 활활 타올라 대사를 피 튀기듯 뱉어냈다. 그리고는 커튼콜이 있었다. 함께한 친구들과 손을 잡고 객석을 향해 인사할 때 들었던 박수소리와 익숙한 얼굴들 그리고 조명 아래 우아하게 떠다니던 먼지까지 마치 어제처럼 생각이 난다. 무대를 내 손으로 하나씩 허물 때는 공허함에 사무쳐 울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안정감과는 거리가 먼 20살이었다. 허구한 날 술에 취해 기억을 잃었다. 생의 환희에 들떠 캠퍼스를 뛰어다니다가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허무함에 굴복하기도 했다. 생에 의미를 부여할 사람들을 만났고 처음으로 삶이 살만하다고 느껴졌다. 매일을 역동적으로 살았다. 그게 사람이든 문학이든 노래든 연기든 술이든 미친 사람처럼 맘껏 탐닉했다. 그러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좋은 시절이었다. 친구들과 매일 만나서 얘기해도 지겹지 않을 시절이지만, 사실 만약 누군가 내게 그 시절로 돌아갈지 말지 선택권을 준다면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다. 행복했지만 어리석었고 불안했다. 10대를, 20대를 모두 관통해온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는 조금 더 현명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왜 사는지를 스스로에게 좀 덜 물을 수 있게 되었다. 뭔가를 꼭 하지 않아도 괜찮다. 뭔가를 해야 한다면 천천히 해본다. 서두르지 않으면 많은 게 재미있어진다. 뛸듯한 행복도 좋지만 평안을 자주 찾는다. 살랑이는 바람에도 길가에 핀 무궁화에도 쉽게 웃음이 나온다. 타인의 욕망에 쉽게 미혹되지 않는다. 생각을 버리고 마음을 자주 들여다본다. 이쯤되면 여기까지 온 게 신기하다. 그 감정은 앞으로의 생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다. 나는 또 어떻게 변해갈까.


삶을 한 번 살아봐야겠다는 결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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