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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르조 Jul 08. 2024

마지막으로 도서관을 간 게 언제였던가

240708

퇴근하고 도서관에 갔다.


한창 경제적 자유를 이야기하고 다닐 때는 일을 마치고 저녁을 간단히 해치운 후 도서관에 오는 게 꿈이었는데. 막상 그래본 적이 없었다. 사람마다 성향이 있다면, 나는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 도무지 행동할 수 없는 류의 인간이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야 나는 움직인다.


두 달 가까이 길러온 머리를 자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미용실을 예약했다. 그러고 보니 도서관에 책을 반납해야 하는 기한이 내일이다. 내일은 저녁에 약속이 있다. 책을 챙기는 김에 노트와 펜도 가방 안에 넣었다. 거울 앞에서 눈이 반쯤 감겨왔는데 밖에 나오니 비 내음이 온 세상이었다. 마침 비도 그쳐서 촉촉이 젖은 도로를 걸어 도서관에 도착했다.


이번에 빌린 책은 세 권이었다. <괜찮은 결혼>,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앞의 두 권은 완독했고 마지막 책은 첫 장과 마지막 장만 읽었다. 현실감 있게 잘 쓰인 투자 마인드에 대한 책이라 들었는데, 두 장의 내용은 별다를 것이 없게 느껴졌다. 매일 4시 반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대기업 직장인 송 과장의 시각에서 회사 내의 다양한 군상을 그려내면서 우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다. 그려진 인물들이 평면적이라는 점이 아쉬웠으나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난이도가 이 책의 인기의 비결이구나 싶었다.




<괜찮은 결혼>은 엘리 J. 핀켈이라는 학자가 쓴 책으로, 미국 결혼 제도의 역사에서 시작해서 성공적인 결혼을 위한 방법론까지 다룬다. 몇 가지 인상적인 구절이 있어 소개한다.


"배우자와 연인 모두 사랑을 나누는 파트너로서,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를 진정한 자아에 가까워지도록 조각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비유에서 현실의 자아는 가공되지 않은 돌덩어리고, 진정한 자아는 그 안에 묻혀 있는 조각품이며, 파트너는 조각가이다."    - '미켈란젤로 효과'의 정의, 40pg

 -> "어떤 사람이 이상적인 배우자인가?"라는 질문에 단골로 등장하는 답변이다. 바로 본인이 최선의 모습이 되도록 돕는 사람이 배우자 가치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사람들은 대부분 최선의 자아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진정한 혹은 최고의 자아를 이끌어낼 배우자를 찾는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현실을 보면 진정한 자아실현의 목표를 모두 달성하는 데에 딱 들어맞는 배우자는 거의 없다."    - 48pg

 -> 테니스 치기, 명상 배우기,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기, 글쓰기, 책 읽기, 철인삼종 대회 참가하기.. 내가 하고 싶은 모든 행위를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적절한 타협과 아웃소싱이 필요하다.


"나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이 되기 위해 밤낮으로 몸부림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다른 모든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 되는 것. 이는 어떠한 인간이라도 가장 힘든, 그리고 결코 멈출 수 없는 싸움이다."    - 시인 E.E. Cumming의 구절을 인용, 123pg

 -> 어느 철학자가 꼬집은 바와 같이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여성성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정당화가 필요하지 않은 반면, 남성성은 반복적인 증명과 사회적 증거를 필요로 한다. 그런 이유로 남성성은 여성성에 비해 더 취약하다."    - 160pg

 -> 미국에서 남성들이 운동과 근육에 집착하고 옷을 잘 입는 남성을 게이로 오해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전쟁도 남성성 증명의 수단이 아닐까.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는 철학 콩트다. 이름만 들어보면 어려운데, 사건 위주로 되어 있고 전개가 속도감이 있어 쉽게 읽힌다. 프랑스의 국민 작가 볼테르의 작품이다. 5월에 있었던 파리 출장을 기념해서 빌린 책인데, 상무님을 모시고 가는 바람에 이제야 읽어냈다. 두 번이나 대출을 연장해서 말이다.


본인이 직접 말한 적이 없지만, 제삼자가 볼테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라며 말했던 다음 문장은 그의 명언으로 기억된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사실 이 말이 위고가 아닌 볼테르를 선택했던 이유기도 했다.


읽고 쓰는 게 즐겁다. 뭐가 되었든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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