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그 감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처럼, 혹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이유 모를 불안감이 가슴을 짓누르고, 사소한 일에도 울컥 화가 치밀며, 남들의 행복한 모습에 이유 없는 질투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전 브런치 북에서 우리는 비교로 인한 자존감 하락에 대해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런데 자존감이 낮아지면,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는 이런 복잡한 감정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지기 일쑤십니다. 슬픔, 분노, 질투, 불안, 그리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깊은 무기력함까지. 이 모든 감정들은 우리가 외면하거나 억누를수록 더 큰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우리는 흔히 '부정적인 감정'이라 불리는 것들을 외면하거나 억누르려고 합니다. 슬프면 슬픈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화가 나면 "내가 왜 이러지?"라며 스스로를 다그치죠. 하지만 감정은 우리에게 보내는 중요한 신호등과 같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끝이 저려오는 신체적 반응부터, 머릿속을 맴도는 걱정스러운 생각들, 불쑥 치밀어 오르는 짜증까지.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지금 나에게 이런 감정이 찾아왔어!"라고 외치는 소리입니다.
예를 들어, 불안감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우리 뇌의 경고일 수 있고, 분노는 우리의 경계선이 침범당했음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질투는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단서가 될 수도 있죠. 이처럼 감정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입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억압된 감정이 결국 신체화되거나 더 큰 심리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감정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자기 치유의 첫걸음인 이유입니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는 바로 '감정 라벨링'입니다. 모호하고 덩어리처럼 느껴지는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죠. "그냥 짜증 나" 대신 "나는 지금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까 봐 불안하고, 동시에 누군가에게 화가 나는구나"라고 구체적으로 말해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SNS에서 친구의 화려한 여행 사진을 보고 마음이 불편해진다고 가정해 봅시다. 단순히 "배 아파"라고 생각하는 대신, 이렇게 이름을 붙여볼 수 있습니다. "아, 친구의 즐거워 보이는 모습에 나는 지금 상대적 박탈감과 동시에 나의 상황에 대한 이쉬움, 그리고 약간의 질투심을 느끼는구나." 이렇게 이름을 붙이는 순간, 감정은 더 이상 모호한 덩어리가 아니라, 하나의 이해 가능한 정보가 됩니다. 뇌과학적으로도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의 활동을 줄여 이성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을 활성화시킨다고 합니다.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서 감정을 관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감정 라벨링을 꾸준히 연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는 바로 감정 일기입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혹은 잠시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에 10분만 투자하여 그날 느꼈던 감정들을 기록해 보세요.
-언제 : 감정을 강하게 느꼈던 순간
-무엇을 :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는지(분노, 슬픔, 기쁨, 짜증, 불안 등 구체적인 이름으로)
-왜 : 그 감정을 왜 느꼈다고 생각하는지, 내 안의 어떤 욕구나 생각이 관련되어 있는지
-어떻게 반응했는지 : 그 감정 때문에 내가 어떤 행동이나 생각을 했는지
이렇게 기록하다 보면, 특정 상황에서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피곤할 때 짜증이 더 심해지는구나', '칭찬을 들을 때면 늘 불안감이 따라오는구나' 같은 식이죠. 이 패턴을 아는 것은 앞으로 감정을 더 효과적으로 다루는데 귀중한 지도가 됩니다. 감정 일기는 단순히 감정을 배출하는 것을 넘어, 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기 통찰의 과정입니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당신이 느끼는 어떤 감정이든,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불안,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들도 우리의 인간적인 경험의 일부이며, 이를 회피하거나 억누르려고 할수록 내면은 더 지쳐갑니다.
감정은 마치 흘러가는 강물과 같습니다. 강물에 돌을 던져 막으려 하면 물이 넘치고, 댐을 쌓아 가두려 하면 결국 무너져 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물이 흐르도록 내버려 두면, 언젠가는 그 물줄기가 바다에 닿듯 감정 또한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