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그리고,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by TsomLEE 티솜리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머리 쓰는 것이 싫어서는 아니고. 배신, 오해, 거짓말 등에 정신적 알러지가 있다. 그러하기에 얼마전 종방한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 완전 몰입한 것은 아니지만 극본만큼은 찬탄했다.


극의 핵심 뼈대는 ‘가족’구성원간의 ‘믿음’에 관한 질문이다. 타인의 진실은 믿지 않을 수도 있고, 타인의 거짓은 믿어 줄 수도 있다. 그들은 타인이니까. 그런데 가족이라면?


가족은 늘 예외다. 우리나라 형법은 범죄자를 은닉하거나 도피하게 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지만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 이러한 행위를 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 법이 인륜을 앞서지 못한다.


나는 아내의 어떤 말에도 의심하지 않는다. 믿음이 배신당할지라도 그 결과 마저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 앞선 차원에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는 하다. 이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단 한사람이니까.


아들에게는 조금 다르다. 아들의 말에는 가끔씩 의심을 품기는 한다. 온전히 사랑하지만 사람의 행위는 상황이 만드는 것이니까. 그러함에도 나는 아들의 말을 언제나 절대적으로 믿어야 할까? 이 드라마는 내게 질문한다.


아들의 대학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 늦은 밤, 아내 빼고 집에서 둘이서 술 한잔하며 4시간쯤 대화를 나눴다. 나는 내 아이와 대화하는 것이 행복하다. 아들에게 말했다. 나에게는 내 목숨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70억 인구 중에 딱 2명 있다고(진심이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너라고. 아빠는 네게 결코 강요된 삶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지만, 언제나 너에게 진실된 조언을 건네줄 수 있는 너의 편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는 위험하게 들릴 수 있다. 이 드라마의 또 하나의 주제는 부모의 자식을 향한 무조건적이고 절대적 우선주의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 가 계속 오버랩되었다. 틈 날 때마다 아들에게 당부한다. (그런 일이 평생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늘 전제한 후) 네가 살인을 저질렀더라도 은폐하려하지 말라고. 그리고 아빠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내가 ‘봉준호의 마더’가 되고자 함은 아니다. 이 세상에는 너를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그 믿음을, 그 안정감을 아들에게 심어주고 싶다는 욕심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출처: 나무위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서 배우 한예리는 프로파일러로 출연한다. 한예리가 출연한 또 다른 가족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가 생각났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가족은 오래된(특히 막내는 인생의 처음부터 시작된) 관계이기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2020년 tvN의 드라마는 그래서 솔직하다. 가족 구성원의 물리적 거리는 타인들보다 가깝지만 정신적 이해는 오히려 더 멀기도 하다.


지구(북반구)의 여름은 왜 겨울보다 뜨거울까? 태양과의 거리가 더 가깝기 때문에? 아니다. 겨울의 태양이 오히려 여름보다 지구에서 더 가깝다. 거리가 아니라 각도다. 여름이 겨울보다 뜨거운 이유는 태양빛이 지구와 마주하는 방향(각도)이 직각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더 똑바로 정면을 향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물리적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의 방향 문제이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이 가족은 바로 그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해야 하는데 그것을 극복한다. 안다는 착각에서 시작하는 대화의 부재는 결국 믿음의 붕괴로 이어진다. 대화,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인정. 그것이 극복의 힘이다. 비단 가족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출처: 나무위키)


선택이 애당초 불가능한 유일한 경우가 가족이다. 태어나는 순간 결정되어 있다. 내 가족에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 것은 아니다(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이 가족이다. 아마 당신도 그러할 것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무척이나 '가족'에 관한 영화에 후한 점수를 주어 왔다. 고려장을 연상시키는 이마무라 쇼헤이의 <나라야마 부시코> 는 한동안 내게 최고의 영화였고, 탕웨이의 남편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은 내가 꼽는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였다. 혈연이라고 전혀 얽힘이 없는 <어느 가족>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나의 최애 감독이 되어있다.


미국 영화를 보면 아빠가(엄마가) 아들에게(딸에게) "I'm proud of you(네가 자랑스러워)." 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남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다. 사랑이다.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이다. 사람은 관심어린 사랑과 그 믿음으로 생존한다. 다음 주말에는 아들이 우리집에 (잠시) 온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계속 응원해 줄 것이다.


아들은 대학 기숙사에 있고, 우리 부부는 늘 그래왔듯이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도 함께 손잡고 대화하며 즐겼다. 우리는 이토록 친밀한 가족이니까. 아는 게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가족이니까.


KakaoTalk_20241202_131203833.jpg 우리 가족(출처: 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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