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 위에 서서
길 위에서 만나는 삶들에겐 하나 같이 굴곡진 무언가가 속 깊이 녹아 있었다.
한 여름, 한낮의 한적한 시골의 뚝방을 걷고 있을 때, 강둑에 멀거니 앉아 건너편의 먼산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청년에게도
한 겨울, 엄동설한의 산길을 오르고 있을 때 깎아지른 낭떠러지 찬 바위 위에 앉아 하염없이 건너편 봉우리를 바라보는 산님의 눈빛 속에도
이 세상의 모든 찌든 삶의 고민과 상념을 느낄 수 있던 때가 있었다.
여수의 이름 모를 섬에 들어가는 배 꽁지에 걸터앉아 젊은 대학생과 나눈 얘기가 기억이 난다.
"학생은 혼자 여행 한지 오래됐어요?"
"아뇨. 이번이 처음이에요."
"아.. 그렇구나. 어때요? 혼자 여행 떠나와 보니?"
"이제 시작이라 모르겠지만, 뭔지 모를 두근거림이 있는 것 같아요. 작은 기대도 생기고요. 그런 형님은 어떤 마음이 드세요?"
"음... 그렇죠. 처음 혼자 떠나는 여행이 주는 백미라고나 할까.. 하하하."
"근데, 나는 어떠하냐? 난, 여행할 때 아무런 마음도, 생각도 없이 해요. 그런 것 갖고 여행하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멀게 느껴지거든요."
"......"
"그게 그래요. 이런 마음을 갖고 여행을 하면 , 저런 마음을 갖고 돌아가게 되고, 그러면 여행 이후의 나의 삶에 기대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 내 자신에게 실망을 하기도 하고... 그래서, 난 그냥 "여행"이라는 시간에 날 맡겨요."
뭔지 알겠다는 듯이 희미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는 학생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날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