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산다는 건, 하루만큼 죽는 것
"여보게, 자네는 오늘 하루 죽은 거야."
"예? 어르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오늘 하루를 살았으니 자넨 하루를 죽은 거지 그러니 자네의 내일은 더 잘 살아야 할 이유 충분하지 않은가?"
수많은 길에서 만난 분들의 이야기들 중 지금까지도 가슴에 들어와 박힌 말이다.
'한 번이 시작되면 그 한 번은 이미 끝났다.'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오늘 하루가 시작됨과 동시에 난 죽어간다는 사실, 그러니 어찌 오늘 하루의 시간이 아깝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도
거꾸로 생각을 해 보자면 오늘 하루 죽어가기 위해 아침에 그 기를 쓰고 일어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죽기 위해..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어른들이 (우리나라의 어른이든, 외국의 어른이든) 공통적으로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후회와 회한이 그것이다.
'이렇게 살아볼걸 그랬어..'
'그리 살아보지 못해 참..'
'그때 그 젊었을 때 난 말이야..' 하고 시작하는 후회와 회한
무엇이 그 발목을 잡았을까 하고 듣는 내내 혼자 생각을 하게 되더라 그리곤 혹, 내겐 그런 후회와 회한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한 함께 자리 잡는다.
후회할 짓을 하지 않으면 되지 않나?라고 섣불리 말 하지 마시라.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그대는 후회를 하게 될지 모를 일이기에..
오늘도 살아가기 위해 죽어가는가?
아니면 죽기 위해 살아가는가?
둘 다 죽음이 있기에 이도 저도 싫은가? 그럼 이건 어떨까?
우리의 그 경계는 이미 모호성을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닐까?
끝내 죽기 위해 어머니의 뱃속에서 그 좁디좁은 난도를 따라 힘겹게 나와 이 세상에 첫 빛을 두 눈으로 받아들인 그 성스러움은 시작부터가 모호하지 않느냐는 말이지.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힘겹게 사느니 대차게 살아갈 필요가 그 모호성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 안 해 봤는가?
고민과 번뇌, 할까? 말까? 의 쓸곳 없는 고민.
떠날까? 말까?라는 복잡한 심경의 번뇌.
내가 혼자 갈 수 있을까? 하면서 접고 있지는 않은지? 어차피 우린 죽음을 위해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의 무모함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지,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어차피 그 불나방은 죽을 것이기에...
파랑과 파랑의 경계에는 파랑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어차피 이유는 하나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고민도, 번뇌도 안 하며 살 수는 없긴 하겠지만 해봐야 딱히 속 시원한 삶의 결론은 내려지지 않는다는 것!
그럴 바에야.. 그냥 떠남이 옳다. 그냥 진행함이 옳다.
삶과 생은 곱하기와 나누기 없는 더하기와 빼기 밖에 없기에 복잡하게 계산하며 살아갈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
떠나고 싶으면 떠나고, 떠나기 싫으면 떠나지 않으면 된다는 아주 단순한 법칙 아닌 법칙.
어차피 삶은 죽음이라는 단순한 공식처럼 여행이 고프면 떠나라 그래서 그곳에 발가락을 박아라.
점령지에 깃발 꽂듯이 그곳이 내 마음의 점령지가 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