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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비 Apr 07. 2022

에너지의 차이

소개팅이 잘 안 되는 이유

소개팅을 했다. 편하다면 편할 수도 있는 자리고, 어렵다면 어려운 자리이기도 하다. 사람을 만나는 일엔 어쩔 수 없는 큰 에너지가 들어간다. 뭐가 없어도, 일단 몸집을 부풀리고 본다. 당신과 이 많은 것들을 할 것은 아니지만,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더 그렇게 행동한다. 우리가 연인 사이로 발전했을 때 실망할 일이 더 많아질 것이란 걸 알고 있고, 이 정도의 배려심도 받지 못한다면 이 관계가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겠다. 일단 상대의 의중은 잘 모르겠고 대체로 나는 그런 편이다.


처음 만나는 일에 가급적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밥 대신 차를 마시는 편을 택했고, 이 사람이 괜찮으면 그때 저녁식사를 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면 그때 하곤 한다.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는 경우도 있고, 서로 그 편이 좋겠다는 말을 사전에 해주기도 한다. 이제 알만큼 다 아는 나이이고, 이 사람과 어떻게 될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마음이 큰 상태로 나오다 보니 더 그렇다. 그러니 소개팅이 끝나고 나면 지나치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해서 슬프기도 했다가, 짜증이 나기도 했다. 왜 이렇게까지 우리는 만나는 일에 에너지적인 소모를 해야 하는가.


사실상 만나고 나면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곱씹다 보면, 아까 그 이야기는 하지 말았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어쩐지 이 자리에서 나만 신나게 또 떠들고 만 건가 싶다. 하는 일이야 안정적이니 별 할 말이 없는데, 취미생활이 지나치게 많기도 하고, 나 스스로 시작하는 일에는 열정과 최선을 다하는 사람인지라 즐거웠던 일들 위주로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나 혼자 이야기하고 있다. 즐거웠으니 상대방에게 권유하기도 하고, 괜찮다면 다음에 만나 같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마음을 내비치는데, 선뜻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건 늘 상대방 쪽이었다. 신나게 웃고 떠들고 나면 돌아오는 건, "은비 씨는 하시는 게 참 많네요. 바쁘시겠다."라는 우회적인 답변들이었다. 이 바쁜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주길 바라는 것은 내 욕심일까.





나는 어떤 일을 함께하는 것을 참 즐거워한다. 공통의 관심사가 존재하고, 우리가 각자 혹은 함께 해낼 수 있는 공적인 취미라던가 업무가 있는 편을 좋아한다. 상대방의 매력에 빠지는 건 상대방이 어떤 분야에서 전문성을 보일 때니까. 같이 놀다 보니 마음이 더 갔고, 같이 재밌게 웃으면서 이 사람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열정을 가지고 한 분야에 대해 토론을 할 때 서로의 에너지를 느끼며 아드레날린이, 도파민이, 엔도르핀이 샘솟는다. 그것이 마치 사랑인가 하고 착각할 정도로 아주 많이 분출되는 편이다. 아마 이것은 나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연인이란 게 함께 공유하게 되는 소중한 추억들이 켜켜이 쌓여가며 돈독해지는 사이일 테니까.


그래서 하나씩 두 개씩 같이하자는 말에 서서히 물들어서, 어느샌가 이런저런 것들을 같이 하고 있는 일상적인 사람이라면 연인이 되기 충분하다. 결국 이 말은, 바쁜 일상의 틀을 깨서 틈을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지금은 나의 일상에 널 초대할 만큼은 아니지만, 썸이라 규정하는 시간 동안 내가 다가서지 못하더라도 네가 와줬으면 좋겠고, 나의 어리숙함을 귀엽고 예쁘게 봐주길 바라며 마음을 부풀린다. 커진 마음 앞에선 아무것도 없는 커다란 몸집이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 자연스럽게 용기도 낼 수 있다. 저 사람이 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서툴고 어색해도 용기를 내고 속도를 맞추어 함께 걷기 시작한다. 어느덧 일상이 되고 연인으로의 발전하고 나면 첫 만남에서는 알 수 없던 면모에 빠져 더 큰 마음들이 생기기도 하겠다. 


누군가의 일상이 되기까지 서로의 에너지와 열정이 맞는 일에 더 마음을 쏟고, 너는 너로서 나는 나로서 서로를 응원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면 한다. 상황과 환경이 그럴 수가 없다는 핑곗거리가 아니라,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갭 차이가 너무 크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가 아니라, 속도의 차이를 인정하고 너의 일터와 나의 일터를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친구이자 동역자이자 애인이라면 충분히 서로에게 귀감이 되는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저 이런 편안하고 즐거운 관계라면 연애가 참 쉬웠겠다. 서로를 믿고 서로를 이해해야만 가능한 일일 테니까. 



우린 지금 서로가 서로에게

그 신뢰를 쌓을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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